국립중앙박물관 ‘우리들의 밥상’
684점으로 K푸드 뿌리 조명
청동기시대 볍씨·1700년 전 메주
허균의 음식 품평서 ‘도문대작’ 첫선
정조 수라상 기록, 김홍도 풍속화도
“나의 외가는 강릉인데 그곳에는 방풍이 많이 난다. 곱게 찧은 쌀로 죽을 끓이는데, 반쯤 익었을 때 방풍 싹을 넣는다. 그것이 끓기를 기다려 차가운 사기 주발에 옮겨 담았다가 반쯤 식으면 그것을 먹는다. 달콤한 향기가 입에 가득해 사흘이 지나도 스러지지 않는다.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다.”
조선의 미식가 허균은 방풍죽을 이렇게 기억했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1611년 유배지 함열(지금의 익산)에서 ‘도문대작’을 작성했다. ‘푸줏간 앞에서 먹지 못하고 크게 입맛만 다신다’는 뜻의 이 책에 그는 117개의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품평, 한양 지역 계절 음식 등 총 178종 먹거리를 기록했다. 조선의 맛 지도라 할 만한 이 품평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처음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7월 1일부터 특별전시실2에서 한국의 식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을 연다. 국내 최초의 식문화 종합 전시로 청동기 시대에 발견된 불탄 볍씨와 들깨부터 조선 왕실의 의궤, 회화에 담긴 밥상 풍경까지 보물 5점, 국보 1점 등 총 684점의 유물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에는 고고학 유물 비중이 크다. 3000여 년 전 청동기시대에 불탄 볍씨가 관람객을 맞는다. 여주 흔암리 유적 집자리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함께 전시되는 불탄 들깨는 전남 함평 외치리에서 발굴된 것으로,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이미 들깨를 재배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메주나 청국장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불탄 콩 덩어리도 눈길을 끈다. 광주 용산동 유적에서 출토된 3~5세기 유물로 한국 발효 음식의 기원을 보여주는 실물 자료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조류 알이 담긴 장군’도 소개된다. 6세기 천마총에서 발견된 장군(액체를 담는 데 쓰는 그릇) 두 점에는 조류 알이 10여 개씩 담겨 있었는데, 박물관 관계자는 “크기, 색깔 등으로 보아 꿩알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조선 왕실의 밥상도 살펴볼 수 있다. 정조가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 행궁에 행차했을 때의 식사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보물)가 공개된다. 8일간의 행차 동안 정조와 혜경궁에게 올린 잔칫상과 수라, 다과상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정조는 당시 먼 지방의 진귀한 식재료를 구하지 말고 사치스러운 맛을 내지 말라고 명했다. 또 혜경궁의 잔칫상은 풍성히 차리되, 자신의 수라상은 10여 그릇을 넘기지 않도록 했다. 실제로 정조의 수라상은 쌀밥과 꿩 두붓국, 전복만두탕 등 일곱 그릇만 올랐다.
식기와 조리도구는 밥상을 차리는 기술의 역사도 보여준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3~4세기 부산 기장군 고촌리 출토 도마가 공개된다. 그 옆에는 박수근의 회화 ‘도마 위의 굴비’와 ‘도마 위의 감자’가 나란히 걸린다. 6세기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왕과 왕비의 식기도 볼 수 있다. 청동 숟가락과 젓가락, 청동 바리, 청동 잔, 청동 접시 등은 망자를 위한 제사가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꿀을 담았던 청자 매병(보물), 조선 왕실의 청화백자, 분청사기 조화 물고기무늬 편병(국보)도 만날 수 있다.
회화 작품들은 음식을 먹고 나누는 풍경을 생생하게 전한다. 김홍도 ‘주막’과 ‘새참’, 김득신의 ‘강가에 모여 먹고 마시다’ 등 보물 세 점이 나란히 전시된다. 주막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 웃통을 벗어 던지고 밥을 먹는 농부들, 강가에서 술과 음식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겼다.
성협의 ‘고기 굽기’도 흥미롭다. 겨울날 사람들이 둘러앉아 고기를 굽는 장면을 담았다. 화로에 손을 녹이고 젓가락으로 집은 고기를 입김으로 식혀 먹는 모습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닭을 잘 그려 이른바 ‘변닭’으로 불렸던 변상벽의 ‘닭과 병아리’도 전시된다. 그림에 적힌 ‘인삼, 백출과 함께 해야 기이한 공훈을 세우겠지’ 글귀는 삼계탕을 연상시킨다. 과일과 채소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여러 동물들이 뛰노는 신사임당의 ‘초충도’도 공개된다.
농사를 짓거나 식재료를 구하는 장면도 조명한다. 김홍도의 ‘논갈이’는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박수근의 ‘봄’은 여인이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봄나물을 뜯는 모습을 담았다. 윤용의 ‘나물 캐기’는 두건을 두른 여인이 호미를 들고 먼 곳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통해 봄날의 정취와 노동의 고단함을 함께 전한다. 이밖에도 옹기 옆에 선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변월룡의 ‘어머니’, 옹기 앞에 까치를 그려 넣은 장욱진의 ‘독’도 소개된다.
수천 년 밥상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는 음식에 한 사회의 역사와 문화, 삶의 방식이 녹아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