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후 7번째 총리 맞는 영국
지방선거 참패 스타머… 지난달 사임 발표
1990년대 英 총리 임기 평균 3028일… 2020년대 들어선 500일 미만
극우 영국개혁당 급부상에… 보수·노동당 양당제도 균열
새 총리 유력 버넘, 지방분권 승부수… 트럼프와 불화 가속화 전망
“트럼프가 영국 총리실에 ‘큰 모멸감(huge embarrassment)’을 안겼다.”(영국 일간 가디언)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1일(현지 시간) 트루스소셜에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곧 물러날 것”이라고 썼다. 실제 스타머 총리는 하루 뒤 “9월 전까지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2024년 7월 집권한 스타머 총리는 올 5월 8일 지방선거에서 집권 노동당이 참패한 후 줄곧 사퇴 가능성이 제기된 상태였다. 이 사실은 새롭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나라 대통령이 먼저 사임을 거론하는 것은 일종의 내정간섭이자 외교 결례다. 가디언이 ‘모멸감’을 언급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트럼프가 스타머에게 해고를 통보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영국은 과거 전 세계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운영했다. 17세기 명예혁명 등을 통해 세계 의회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도 얻었다. 하지만 2016년 6월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를 국민투표로 가결한 후 잦은 총리 교체에 따른 사회 혼란에 시달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영국의 위상과 영향력 또한 추락했다. 스타머 총리의 거취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그 단적인 예다.● 스타머, ‘어설픈 우클릭’에 좌초
스타머 총리는 집권 초부터 고물가, 저성장 등으로 핵심 지지층인 중도 좌파와 보수층 모두로부터 비판받았다. 특히 미국 월가의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어울리며 엡스타인에게 국가 기밀까지 누설한 의혹을 받고 있는 당 동료 피터 맨덜슨을 지난해 2월 주미 영국대사로 발탁해 논란을 일으켰다.
각계의 사퇴 요구가 잇따랐지만 맨덜슨 전 대사는 같은 해 9월에야 물러났다. 7개월간 인사 실패 논란이 이어지면서 스타머 총리는 지지 기반을 대부분 상실했다.급부상한 극우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무리하게 외연 확장을 꾀한 것도 악수로 꼽힌다. 그는 불법 이민자 대응 강화, 복지 혜택 축소 시도 등 이른바 ‘우클릭’ 행보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녹색당 등 강경 진보 정당에 뺏기고, 보수 진영으로부터도 별다른 지지는 얻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말 그대로, 양쪽에서 모두 외면당한 것.5월 지방선거에서 극우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영국개혁당은 노동당, 중도 우파 성향의 제1야당 보수당을 모두 물리치고 압승했다. 싱크탱크 유럽정책센터(EPC)는 “스타머의 몰락은 극우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세력의 부상을 막겠다고 그들의 정책을 어설프게 흉내냈기 때문”이라며 “유권자들은 ‘싱거운 복제품(스타머)’ 대신 ‘오리지널 극우(패라지)를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핵심 동맹인 미국과의 갈등도 문제였다. 스타머 총리는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 편입을 시도할 때 강하게 반대했다. 올 2월 28일 이란 전쟁 발발 뒤에는 영국군의 파견도 거부했고, 미군의 인도양 차고스 제도의 디에고가르시아 기지 사용도 마지못해 허용하는 등 소극적인 대응을 보였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까지 거론하며 “스타머는 처칠이 아니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현재 노동당은 하원 650석 중 403석을 보유하고 있다. 차기 노동당 대표가 의원내각제 국가인 영국의 새 총리에 오른다. 현재 버넘 의원을 지지하는 노동당 의원이 300여 명에 육박하고, 뚜렷한 경쟁자 또한 보이지 않는다. 노동당 대표 경선을 실시한다면 버넘 의원이 언제든 차기 총리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WSJ “英, 유럽의 새로운 이탈리아”
버넘 의원이 새 총리에 오르면 브렉시트 후 7번째 총리가 된다. 브렉시트를 국민투표에 부친 보수당 소속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를 필두로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리시 수낵, 스타머까지 6명의 총리가 거쳐 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1990년대 영국 총리의 평균 재임 기간은 3028일이었지만 2020년대 들어 500일 미만으로 급감했다. 특히 스타머 총리는 취임 717일 만에 사임을 발표해 노동당이 배출한 역대 최단기 총리라는 오명을 안았다.
‘제3의 길’을 주창한 노동당 소속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1997∼2007년 10년간 장기 집권했다. 영국 싱크탱크 ‘변화하는 유럽 속의 영국(UKICE)’은 블레어 전 총리처럼 대중적 팬덤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라면 이제 영국 총리직은 ‘2년짜리 소모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잦은 총리 교체는 브렉시트 후 영국의 불안한 정치경제 지형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잦은 지도자 교체를 겪어 온 이탈리아를 빗대 “영국이 유럽의 새로운 이탈리아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영국개혁당의 급부상으로 보수당과 노동당이 양분해 오던 안정적인 양당 체제가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실제 영국개혁당은 최근 1년 동안 영국의 주요 여론조사에서 독보적인 지지율 1위 정당으로 군림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더타임스 조사에서도 영국개혁당의 지지율은 25%로 보수당(20%), 노동당(18%)을 모두 눌렀다. 이런 상황이라면 영국 최초의 극우 총리가 탄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립은행(LBBW) 또한 최근 보고서에서 “영국은 유럽 대륙의 국가들을 은근히 내려다보는 우월감을 갖고 있었지만, 브렉시트라는 파멸적 선택으로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넜다”고 지적했다.
● 버넘 집권 시 트럼프와 마찰 심할 듯
버넘 의원은 수도 런던에 집중된 주택, 교통, 교육 등의 공공 인프라를 맨체스터 등 각 지역으로 대폭 이관해 지방 중심의 경제발전을 이루자는 ‘맨체스터리즘(Manchesterism)’을 외친다. 특히 그는 지난달 29일 런던의 다우닝가 10번지에 있는 총리 관저의 일부 기능을 경제적 사회적으로 낙후된 북부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정치적 고향 맨체스터에 ‘북부 총리실’을 설치하겠다며 “이제껏 보지 못한 규모의 권력 재균형을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로 각 지방에 주택을 건설하고, 각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한 세제 개편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영국의 모든 지역에서 동등한 삶의 조건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방 분권을 위한 재원 마련 계획도 공개했다. 현재 세수(稅收)의 90%를 중앙정부가 독식하는데 이를 지방정부와 나눠 갖겠다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과도한 좌클릭’이란 지적도 나온다.
버넘 의원 또한 스타머 총리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패배에 분노한 지지층이 2021년 1월 6일 미국 워싱턴 의회에 난입했을 때 X에 “트럼프에게 눈길을 줬던 영국 정치인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썼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최근 하원의원 보궐선거 유세 때도 “미국 정치는 양극화됐다. 독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버넘 의원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24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취재진이 버넘 의원에 관해 질문하자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극도로 진보적(extremely liberal)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버넘 의원이 영국 총리가 되면 빨리 만나겠느냐’는 질문에도 “아니다. 우린 신념이 다른 것 같다”고 답했다.
화석에너지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노동당이 환경 보호를 이유로 재생에너지 발전에 주력한다는 점을 비판해 왔다. 영국 정부가 미국 대형 에너지 기업들이 추진하는 북해 신규 석유 개발 사업의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점에도 불만을 표했다. 버넘 의원이 총리가 된다면 이 사업의 추진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

3 hours ago
2

![5000년을 버틴 분쟁해결 방식의 비밀 [피터앤김 국제분쟁리포트]](https://pimg.mk.co.kr/news/cms/202607/02/news-p.v1.20260629.f0589ea039fc4aacaa661f4a36b049ce_R.png)








![[속보] 北, 韓·EU성명에 “체제존중 위장 내던져…韓 적대 원칙 불변”](https://pimg.mk.co.kr/news/cms/202606/13/news-p.v1.20260613.89255ddca2b0487c98e7f979e85a8a39_R.jp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