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텍사스를 대표하는 강타자였던 아드리안 벨트레(46)는 14일 열린 전 텍사스 동료 추신수 SSG 랜더스 구단주 보좌역의 은퇴식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벨트레는 11일 SSG퓨처스필드를 찾아 2군 선수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는데 이때 뜻밖의 이름이 나왔다. ‘한국형 핵잠수함’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병현(46)이었다.
벨트레는 “가장 까다로웠던 투수”를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김병현이라고 답했다. 그는 “김병현을 상대한 날에는 꿈에 나올 정도였다. 김병현의 구속이 떨어졌을 때 겨우 안타를 치고 세리머니를 했다”고 말했다.
벨트레는 리그 최고 타자에게 주는 실버슬러거를 4번이나 수상한 손꼽히는 강타자였다. 올스타에 4번 뽑혔고, 골드글러브도 5번 받았다. 1998년 LA 다저스에서 데뷔해 2018년 은퇴할 때까지 타율 0.286, 3166안타, 477홈런, 1707타점을 올렸다.통산 3166개의 안타 중 김병현을 상대로 친 안타는 단 1개다. 16타수 1안타로 타율은 0.063밖에 되지 않는다.
벨트레 뿐 아니었다. 전성기 시절 김병현이 언더핸드로 던지는 힘 있는 패스트볼과 춤추는 변화구에 MLB 타자들은 연신 헛방망이질을 하기 일쑤였다.
김병현이 2002년 5월 11일 필라델피아전에서 기록한 ‘9구 3탈삼진’은 요즘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하지만 정작 이에 대한 김병현의 반응은 쿨~하다. 김병현은 “사실 그날 공이 별로 좋지 않아 변칙적으로 던진 거였다. 구위로 이겼다기보다는 전략적으로 던졌는데 운 좋게 9구 3삼진이 나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당시 김병현이 MLB에 남긴 임팩트는 여전하다. 성적 뿐 아니라 돈에서도 마찬가지다. 김병현은 성균관대 재학 중이던 1999년 애리조나와 계약금 225만 달러(약 30억 원)에 계약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중 하나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한 채가 10억도 안 하던 때였다. 26년이 흘렀지만 한국 아마추어 선수 중 그보다 많은 돈을 받고 미국에 간 선수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애리조나 시절 최고의 마무리로 각광 받았던 김병현은 2003년 보스턴으로 이적하면서는 2년 1000만 달러(약 136억 원)를 받았다.김병현은 또 한국 선수 중에서 유일하게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낀 선수이기도 하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닌 두 개다. 2001년 애리조나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김병현은 2004년 보스턴에서 두 번째 반지의 주인이 됐다.
야구로 부와 명예를 모두 얻는 김병현은 은퇴 후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방송 일이었다. 선수 시절 내성적인 성격에 독특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던 그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김병현은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사회에 나왔을 때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동안 내가 가장 어려워하고 힘들어했던 일을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바로 사람들 앞에 서는 거였다”고 했다. ‘방송인’ 김병현이 탄생한 배경이다.
김병현은 “어릴 때부터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었다. 결혼식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했을 정도”라며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있는 그대로의 ‘인간 김병현’을 좋아해 주셨다. 정말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요식업이다. 그가 음식 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 계기는 은퇴 후 시구를 위해 친정팀 애리조나를 찾았을 때다. 당시 외야석 한편에는 ‘곤조 그릴’이라는 식당이 성업 중이었는데 그곳을 애리조나 시절 동료였던 루이스 곤살레스가 운영하고 있었다. 김병현은 “딱 느낌이 왔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장에서 먹거리를 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며 “이후 내 모교인 광주제일고의 이름을 딴 햄버거집을 열었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전부터 그는 먹는 거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미국 샌디에이고에 스시집을 열었고, 태국 음식점와 일본식 라멘집 등을 운영한 적도 있다.
김병현은 “먹는 건 본능적인 욕구이자 즐거움이다. 지인들이 미국에 찾아왔을 때 맛집을 데려가면 너무들 좋아하셨다. 특히 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해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요식업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고 했다.
그는 설립한 수제 햄버거집은 창원NC파크와 고척스카이돔에 입점도 했다. 최근에는 야구와 잘 어울리는 핫도그를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했다. 얼마 전 서울 양재동에 ‘BK’s 버거 앤 핫도그‘라는 이름의 수제 핫도그 집을 오픈했다.
핫도그와 햄버거는 패스트푸드다. 심지어는 ’정크 푸드(쓰레기 음식)‘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김병현의 생각은 다르다. “건강한 재료로 만들면 맛있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핫도그의 재료인 햄과 소시지에 푹 빠진 그는 국내 육가공기술학교 ‘훔메마이스터슐레’에서 관련 과정을 수료했다. 지난달엔 독일에서 열린 국제식육전문박람회(이하 IFFA)에 출전해 금메달 6개와 은메달 1개를 획득했다. IFFA는 1949년부터 3년마다 개최되는 육류 관련 국제 무역 박람회다.
김병현은 “가장 호평받은 건 부대찌개였다. 햄이나 소시지를 국물에 넣어 먹지 않는 독일 심사위원들에게 독특하고 맛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김병현은 소시지에 첨가물을 거의 넣지 않은 100%의 고기로 만든다고 했다. 여기에 고급 향신료를 써 풍미를 더한다.
한국에서 자영업은 쉽지 않다.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말도 있다. 본격적으로 자영업을 한 디 5년이 된 김병현은 “가끔 같은 자영업자 사장님들끼리 만나면 ‘죽겠으니까 사장이다’라는 말을 나누곤 한다”고 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유행했던 몇 년간은 정말 힘들었다”며 “하지만 자영업이라는 게 원래 힘든 거다. 직원들과의 관계, 건물주와의 관계 등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야구를 할 때는 나 혼자 잘하고 열심히 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었지만 자영업은 전혀 다른 세계”라고 말했다.
야구 선수 시절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톱스타였다. 가장 비싼 차를 몰았고, 원하면 비싼 음식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와 비교하면 힘든 지금이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했다. 김병현은 “돈은 그때 훨씬 많이 벌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엔 혼자 나만의 세계에 갇혀 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지금은 7000~8000원 짜리 핫도그를 만들어 팔고 있지만 많이 여유로워졌다. 여러 사람들과 소소히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게 나름 재미있고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야구 선수 시절 그는 치열하게 야구를 하는 선수였다. 그는 “드러난 모습만 보고 ‘천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릴 때 연습이 끝나고 집에 와서도 야구 생각을 했다. 뭔가 떠오르면 ‘내일은 이렇게 해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곤 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야구를 잘하게 됐고, 미국에도 가게 됐다”고 했다.
요즘 핫도그를 대하는 모습이 당시와 비슷하다. 자나 깨나 오직 핫도그 생각이다. 김병현은 “자영업이라는 게 정말 신경 쓸 게 많고 힘들 때도 많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뭔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제대로 만든 핫도그, 햄버거는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이라는 걸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이 분야에서 확실히 자리 잡은 뒤 ‘마음의 고향’인 야구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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