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의 개인 부채 탕감에 나선다. 내년부터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가동해 113만여 명의 빚 16조4000억원을 완전 소각하거나 원금의 최대 80%를 감면하겠다는 구상이다. 중위소득 60% 이하 소상공인은 새출발기금을 통해 연체 원금의 최대 90%를 탕감해 준다. 장기간 빚의 늪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취약계층을 구제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상환능력 상실한 채권은 소각
19일 금융위원회는 이런 내용이 담긴 2025년도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채무 탕감에 속도를 내기 위한 조치다. 정치권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열린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2차 회의에서 장기 연체 부채를 ‘썩은 부채’라고 표현하며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신설되는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출자한 채무조정 기구가 금융회사로부터 장기 연체채권을 일괄 매입한 뒤 없애는 구조다.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 무담보채권이 매입 대상이다. 신용정보원 연체 정보 등록 기간(7년)과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 신청자의 평균 채무액(4456만원) 등을 고려했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채무조정 기구는 채권 매입 후 소득 및 재산 심사를 거쳐 소각 혹은 채무조정을 결정한다. 중위소득 60% 이하에 처분할 재산이 없는 경우 상환능력을 상실했다고 보고 채권을 소각한다. 채무 대비 상환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땐 원금의 최대 80%를 감면하고 나머지는 10년간 분할상환하도록 할 방침이다.
차주 약 113만4000명의 장기 연체채권 총 16조4000억원에 대한 채무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추산된다. 채무조정 기구가 연체채권을 평균 5% 가격에 매입한다고 했을 때 8000억원 규모의 재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2차 추경으로 이 중 40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실제 채무 탕감은 내년께 이뤄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3분기 세부 조건 및 절차를 발표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사와 채권 매각 협약을 맺고 매입 진행, 개별 심사 등을 하는 데 1년가량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새출발기금 지원 대상 확대
지난 정부에서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도 확대한다. 총채무 1억원 이하면서 중위소득 60% 이하인 저소득 소상공인의 무담보채무를 대상으로 원금의 90%를 감면해 줄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상환능력에 따라 원금의 60~80%를 감면했다. 나머지 채무의 분할상환 기간도 기존 최대 10년에서 20년으로 늘릴 방침이다.
최근 새로 창업한 차주까지 신청할 수 있다. 새출발기금 지원 대상은 확대 개편을 통해 지난해 12월부터 이달까지 영업한 소상공인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총 10만1000명의 채무 6조2000억원이 지원 범위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추경 반영 예산은 7000억원이다.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논란은 숙제다. 빚을 성실하게 갚아 온 차주에 대한 역차별 문제와 ‘버티면 정부가 빚을 없애준다’는 인식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 피해와 관련이 없는 최근 신규 창업자의 부채까지 탕감해 주는 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추경 브리핑에서 “상환능력을 상실한 차주는 국내 금융 시스템에서 1~2% 정도”라며 “이들의 재기를 지원해 다시 경제 활동에 나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취지의 일회성 지원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신연수/정영효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