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지각생’ 애플의 왕좌 탈환? 최고의 AI 아닌 돈버는 AI로 승부수[최중혁의 월가를 흔드는 기업들]

9 hours ago 8

‘아이폰 같은 AI’ 노리는 애플

미국 뉴욕 5번가에 위치한 애플 매장의 유리 입구 위에 애플 로고가 걸린 모습. 뉴욕=AP/뉴시스

미국 뉴욕 5번가에 위치한 애플 매장의 유리 입구 위에 애플 로고가 걸린 모습. 뉴욕=AP/뉴시스
《“왕이 돌아왔다.” 애플은 이달 17일(현지 시간) 장중 시가총액 약 4조9000억 달러(약 7200조 원)를 기록하며 엔비디아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의 자리를 되찾았다. 엔비디아에 내준 왕좌를 약 1년 3개월 만에 탈환한 것이다. 다만 장 막판 엔비디아가 낙폭을 줄이면서 종가 기준으로는 약 60억 달러, 애플 시가총액의 0.1% 남짓한 차이로 다시 앞섰다.》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
20일에는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오면서 애플 주가가 2% 넘게 하락했다. 그럼에도 엔비디아와의 시가총액 격차는 애플 시가총액의 3% 남짓이다. 불과 한두 번의 주가 등락으로 순위가 뒤바뀔 수 있을 만큼 세계 최대 기업의 자리를 둘러싼 경쟁은 팽팽하다.

최근 3년간 월가를 지배한 인공지능(AI) 투자 공식은 명확했다. 더 큰 AI 모델을 만들려면 더 많은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필요했고, 엔비디아는 그 GPU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며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돌파했다. 반면 애플의 지난 2년은 굴욕의 연속이었다. 2024년 6월 엔비디아에 처음 선두를 내준 뒤 두 회사는 1위 자리를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그러나 2025년 4월을 끝으로 애플은 왕좌에서 멀어졌고, 올 1월에는 구글 모회사 알파벳에 추월당해 3위로 밀려났다. 자체 AI 모델 ‘제미나이’를 앞세운 알파벳이 지난해 65% 넘게 급등하는 동안 애플의 주가 상승률은 9%에 그쳤다. 차세대 ‘시리(Siri)’의 출시는 계속 미뤄졌고, 월가에서 “애플은 AI 시대에 한물간 기업”이라는 냉소가 흘러나왔다.

그랬던 애플이 다시 엔비디아를 따라잡았다. 이는 월가가 AI의 승자를 고르는 기준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AI 모델을 가장 잘 만들거나 AI 칩을 가장 많이 파는 기업만이 아니라, AI를 수십억 명의 소비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판매하는 기업도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애플의 반격은 ‘AI를 직접 만드는 경쟁’보다 ‘AI로 돈을 버는 경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엔비디아가 AI 공장을 건설한다면, 애플은 그 공장에서 생산된 지능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유통망을 장악하려 한다.

디지털 통행세 기업으로 변화

애플은 19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등이 창업했다. 개인용 컴퓨터(PC) 애플Ⅱ와 매킨토시를 선보였지만,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밀려 파산 위기까지 갔다. 1997년 회사에 복귀한 잡스는 복잡한 제품군을 정리하고 아이맥과 아이팟을 잇달아 성공시켰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07년 아이폰 출시였다. 애플은 휴대전화에 음악 플레이어와 인터넷, 카메라, 소프트웨어 장터를 결합했다. 기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기기 성능을 놓고 경쟁할 때 애플은 하드웨어와 운영체제, 애플리케이션, 결제를 하나의 생태계로 묶었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잡스가 이룬 제품 혁신을 거대한 사업 시스템으로 확장했다. 아이폰과 맥, 아이패드, 애플워치, 에어팟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앱스토어, 아이클라우드, 애플뮤직, 애플케어, 결제 사업을 키웠다. 애플 생태계에서 아이폰은 입장권이다. 맥과 아이패드, 애플워치는 소비자를 생태계 안에 머물게 하는 건물이다. 또 앱스토어와 아이클라우드 등의 서비스는 월세와 통행료다. 한번 애플 생태계에 들어오면 사진과 연락처, 메시지, 결제 정보가 여러 기기에 연결돼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 애플의 최근 실적은 이 구조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이폰 판매는 회복됐고 서비스 매출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비스 사업의 이익률도 제품보다 훨씬 높다. 아이폰을 산 사용자는 이후에도 여러 해 동안 저장 공간과 음악, 영상, 앱, 수리 서비스에 돈을 지불한다. 애플을 단순한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본다면 실체의 절반만 보는 셈이다. 아이폰은 수익의 종착점이 아니라 반복적인 서비스 매출을 발생시키는 출발점이다.

애플이 보유한 활성기기는 약 25억 대로 추정된다. 애플은 막대한 광고비를 들이지 않고도 새로운 서비스와 AI 기능을 배포할 수 있는 거대한 판매 창구다. 엔비디아가 GPU를 판매하려면 대규모 데이터센터 고객을 찾아야 하지만, 애플은 운영체제 업데이트만으로 수억 명에게 새 기능을 선보일 수 있다.

가장 뛰어난 AI보다 가장 가까운 AI

애플은 생성형 AI 경쟁의 초기 단계에서 분명히 뒤처졌다. 그러나 반드시 세계에서 가장 큰 AI 모델을 직접 개발할 필요는 없다. 소비자가 어느 회사의 AI를 이용하더라도 그것이 아이폰과 맥, 아이패드 안에서 작동한다면 고객과의 접점을 통제하는 기업은 애플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간단하고 개인적인 작업은 기기 내부에서 처리하고, 복잡한 연산은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한 클라우드에서 수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자체 기술이 부족한 영역에서는 구글이나 오픈AI 같은 외부 업체의 AI 모델을 연결할 수도 있다. 모든 AI를 직접 만드는 대신 어떤 작업을 어느 모델에 맡길지 결정하는 지휘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애플은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로 기존 기기와 소비자 기반을 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 시대에도 통신망을 직접 만들지 않았다. 대신 통신망 위에서 작동하는 가장 매력적인 기기와 운영체제를 장악했다.

애플이 가진 가장 강력한 AI 자산은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사용자와의 관계다. 아이폰에는 연락처와 일정, 사진, 메시지, 이메일, 결제 정보가 담겨 있다. 개인정보 보호는 양날의 검이지만, 애플은 가능한 한 작업을 기기 내부에서 처리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AI 모델의 성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비슷해진다면, 소비자는 가장 똑똑한 AI보다 자신의 정보를 가장 안전하게 다루는 AI를 선택할 수도 있다.

최근 애플 주가 상승의 주요 배경 중 하나는 중국 시장이다. 중국은 애플의 핵심 생산기지이자 주요 소비시장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외국산 AI 모델의 사용을 제한하면서 현지 아이폰에는 애플의 핵심 AI 기능을 탑재하기 어려웠다. 최근 중국은 애플의 AI 서비스 제공을 가로막던 규제 장벽을 낮췄다. 이달 15일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애플의 AI 서비스를 승인 목록에 올렸다. 애플은 알리바바와 바이두 등 현지 기업의 AI 모델을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직접 모든 AI를 개발하지 않고도 현지 협력사의 기술을 자사 기기에 넣어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왕좌 앞의 위험들, 그리고 가능성

물론 애플에 꽃길만 펼쳐져 있진 않다. 당장의 복병은 AI 데이터센터발(發)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등이다. 애플은 최근 맥과 아이패드 가격을 이례적으로 올리면서 “메모리 비용의 영향이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외부 AI 모델에 의존하는 전략 역시 양날의 검이다. 구글 AI가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에서 모두 작동한다면 아이폰의 차별성은 약화될 수 있다.

높아진 몸값도 부담이다. 현재 주가에는 AI 성장과 아이폰 교체 수요, 중국 시장 회복, 서비스 매출 확대에 대한 기대가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 시장 눈높이를 계속 뛰어넘어야 지금의 기업 가치를 정당화할 수 있다. 또 각국 정부는 앱 유통과 결제를 지나치게 통제한다고 애플을 비판해 왔다. 애플이 AI 시대의 새 관문까지 장악하면 규제 당국의 감시는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애플은 최초의 PC 회사도, 음악 플레이어 회사도, 스마트폰 회사도 아니었다. 대신 복잡한 기술을 소비자가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싶어 하는 제품으로 바꿨다. AI에서도 같은 마법을 재현할 수 있을까. 왕좌를 되찾은 애플 앞에 놓인 질문은 ‘가장 뛰어난 AI를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다. ‘AI도 아이폰처럼 만들 수 있는가’다. 월가는 그 가능성에 다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매기고 있다.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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