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디지털 픽셀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숏폼에 지친 사람들, 다시 롱폼 아날로그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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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디지털 픽셀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숏폼에 지친 사람들, 다시 롱폼 아날로그를 찾다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외부기고자)

입력 : 2026.06.07 00:02

콘텐츠의 홍수는 요약본을 소비하는 새로운 국면을 생산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는 되려 밀도 있는 경험을 갈망하게 되었다. 당신은 어떤 경험을 통해 휴식을 취할 것인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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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의 ‘콘텐츠 요약 소비’

요즘 세대는 TV, 영화, 드라마, 유튜브, OTT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콘텐츠 과잉의 시대를 살아간다. 주어진 시간에 넘쳐나는 것들 중 보고 싶은 것만을 다 소화해내기에도 벅차다. 이런 선택이 많아지면서 소비자들은 (콘텐츠를) 자연스레 빠르게 훑고, 걸러내는 방식을 택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대의 소비자들에게 ‘요약 소비’라 일컬을 수 있는 콘텐츠 소비 방식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반화로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한 소비자는 평소 즐겨보는 영화 유튜버의 채널을 통해 한 편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그 채널은 러닝 타임 100분 이상인 한 편의 영화를 ‘결말 포함, 10분’으로 요약해준다. 이런 콘텐츠를 수없이 소비한다고 생각해보자. 이제 혼선이 오기 시작한다. 솔직히 말해 영화를 소개하는 일종의 긴 예고편을 본 것뿐인데, 소비자는 그것으로 자신이 한 편의 영화를 온전히 감상했다고 인식할 수 있다.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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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시리즈의 경우는 매 에피소드를 다 보는 것 자체가 긴 시간의 할애를 요한다. 그러니 하이라이트 클립만 시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12부작, 약 12시간의 내러티브는 한 줄 요약으로 정리되어 버린다. 그 속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서사의 충돌, 갈등은 증발해버리는 셈이다. 독서의 형태도 이런 식으로 변했다. 서평, 요약 영상으로 대체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단순한 게으름으로 치부하는 것은 세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오류를 범하는 선입견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환경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제 새로운 세대의 소비자들에게 러닝타임이 긴 영화 또 소비물가 심리에서 아주 비싸진 티켓 값은 영화 감상을 정기적인 게 아닌 일회적 소비 콘텐츠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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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할애=사치스런 콘텐츠

구독 형태로 제공되는 OTT 플랫폼조차도 어떤 이에게는 사치스러운 콘텐츠가 된다.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세대에게는 일종의 사치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약으로 전체를 받아들이는’ 소비 형태는 이제 ‘전략’이 되었다. 효율적인 정보 필터링 전략으로 말이다. 그래서 한때 ‘콘텐츠는 무조건 짧아야만 한다’라는 관습이 생겨나기도 했다. ‘숏폼’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세로형 화면에서 길어도 몇 분 안에 결말을 내는, 서사를 가진 콘텐츠들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건 기존 내러티브의 축약으로 만들어진 콘텐츠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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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숏폼 유행의 본질을 읽어낼 수 있다. 새로운 세대의 소비자들 중 릴스, 틱톡, 쇼츠 중 하나라도 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숏폼의 핵심은 단순히 짧다는 것에 있지 않다. 이 콘텐츠들을 쭉 훑다 보면, 이상하게 도파민이 솟는 경우들이 있다. 맥락이 전혀 없는데도 이해가 가능한 콘텐츠일 경우가 많다. 심지어 그 수십 초가 다른 것들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몇 시간을 소비하는 경우도 많다.

시쳇말로 아무 생각 없이 소비가 가능해진 콘텐츠들이 숏폼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알고리즘 탓에 한번 기웃거린 소재가 있으면 알고리즘이 그쪽 세계로 소비자를 인도한다. 이 탓에 점점 더 길고 복잡한 내러티브를 가진 영화나 드라마를 끝까지 보기 위해선, 좀 웃긴 표현이지만 ‘노력’이 필요하게 되어버렸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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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 알고리즘이 유발하는 ‘디지털 피로감Digital Fatigue’

나는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영화 주간지에서 기자로도 일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영화는 내 삶의 일부였다. 영화제를 취재하면서는 하루에 영화를 기본 3편, 많게는 5편까지도 봤다. 그 이후에도 개봉작들 대부분을 극장에서 섭렵하는 편이었다. 또한 그때만 하더라도 영화는 당시 젊은 세대에게 가장 주요한 문화였고, 소비 품목이었다.

그리고 최근 10년간 팬데믹이 왔고, 아이도 태어났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영화관과 거리를 두게 했다. 아이가 있는 삶 속에 ‘뽀로로’ 시리즈, 또는 디즈니나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극장에 갈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나는 극장과 멀어졌다. 그 간극 속을 비집고 들어온 건 OTT였다. 아이가 잠들면 아내와 함께 영화, 시리즈, 예능 등을 OTT를 통해 보았다. 그 와중에 요약본으로 콘텐츠를 소비하진 않았다.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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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다. 어느 순간 그조차도 멀리하게 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문득 왼쪽 손목이 시큰거림을 느꼈다. 엄지 손가락 쪽과 연결된 손목이었다. 정형외과 진료를 봤더니 큰 문제는 없고, 근육 쪽의 염증이라고 했다. 이유가 뭘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단 하나였다. 바로 릴스였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확인한 후 자연스럽게 릴스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휴대폰을 왼손에 들고, 왼쪽 엄지 손가락으로 계속 화면을 밀어 올리고 있는 나를 보았다고 해야 할까?

릴스 등의 쇼츠를 계속 보고 있으면서 멍해지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잦아졌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사무실 동료 및 후배들도 그렇다고 답했다. 이걸 전문가들은 ‘디지털 피로감(Digital Fatigue)’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아무튼 쇼츠를 계속 보다 보면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대부분 그렇다. 감정의 깊이도 얕다. 또 하나를 보면 유사 콘텐츠가 알고리즘을 통해 계속 추천되면서 금세 질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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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소비자는 콘텐츠 홍수 속에서 요약 소비와 숏폼을 통해 빠른 정보 필터링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기억의 오류와 디지털 피로감을 유발하며, 깊은 경험을 놓치게 만들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책 읽기, 바이닐, 필름 카메라 같은 텍스트 힙과 아날로그 감성이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핵심은 경험의 밀도에 있다. 빠른 소비와 깊은 소비가 양극화된 시대, 각자가 자신만의 휴식과 경험을 찾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숏폼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픽셀 라이프 트렌드’는 여전하다. 입장권 가격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들로 인해 한국 영화 산업과 극장 산업은 휘청거리고 있다. 드라마나 시리즈도 사정이 호황은 아니다. 어쩌면 이런 콘텐츠 소비 저울의 기울어짐 현상은 산업적 불황 탓도 있지만, 소비자의 소비 형태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기에 그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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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픽셀 라이프의 등장 속에서도 약간의 반작용이 생겨났다. 앞서 말한 대로 숏폼 콘텐츠 자체가 서사의 형태로 뇌리에 각인되지 않자, 일부 소비자들은 그 반대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텍스트 힙’과 ‘아날로그’ 트렌드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콘텐츠가 되다

텍스트 힙이라는 트렌드는 익히 잘 알려진 트렌드다. 왜 새로운 세대가 책이라는 고전적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냐고? 대부분이 책을 읽지 않으니, 책을 읽은 몇몇의 이미지가 꽤나 세련되게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이 지점이다. 독서 행위 자체가 취향이 되고, 정체성이 되는 시대가 됐다. 또 모든 콘텐츠가 짧아진 가운데 한 권의 책에 담긴 어려운 글과 긴 글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콘텐츠가 되었고, 독보적으로 돋보이는 차별화 요소를 만들어낸다.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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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현 시대의 텍스트 힙은 디지털 콘텐츠에의 반작용으로 도출되었지만, 여전히 디지털 콘텐츠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바이닐 레코드, 필름 카메라, 다이어리 등의 아날로그 라이프스타일 역시 계속해서 대두되고 있다. 새로운 세대는 이런 경험들을 느리고 불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진짜 경험’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디지털은 인류에게 편리함을 안겨주었지만 모든 것이 너무 편리하다 보니 되려 불편한 어떤 것이 가치를 가지는 시대의 도래를 맞았다. 텍스트 힙, 아날로그 감성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얼마 전까지 우리 집에서도 각자의 모바일이 손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릴스를 계속 밀어 올리고 아내 역시 장보기, 쇼핑 등을 위해 끊임없이 모바일을 터치한다. 아이 역시 패드를 통해 숙제를 하고, 또 허락된 시간에 유튜브 등을 시청한다. 평일 우리 집 저녁의 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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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이런 행위들 자체가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 변화를 꾀해보기로 했다. 내일을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친 시간부터, 식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책을 보기로 한 것이다. 나조차도 정말 오랜 만에 책을 들었다.

일단 필자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두터운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며칠 만에 완독했다. 아내 역시 사두고 보지 못한 책을 읽어내려 간다. 아이 역시 책을 본다. 며칠 만에 몇 년간 쌓여 있던 풍경이 확 달라졌다. 나는 이 변화가 굉장히 좋은 쪽이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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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존과 양극화

요약 영상, 숏폼, 하이라이트 등은 빠른 소비를 위해 필수적인 형태다. 또 책, 일기, 아날로그적 취미는 깊은 소비를 위한 또 다른 움직임이다. 그래서 이 모든 행위의 차이는 경험의 밀도에서 판가름이 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것이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요약 소비가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 자체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기도 하기에 그렇다.

텍스트 힙과 아날로그는 나를 누군가에게 드러내어 어필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다. 작금의 픽셀 라이프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의 대중화된 형태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의 밀도 있는 경험을 스스로 찾아나간다. 그렇게 발견된 것들이 텍스트 힙일 수도,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취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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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집단 선택은 책이었고, 나의 개인적 선택은 사진과 음악이다. 가끔은 모바일 카메라가 아닌 36장짜리 필름을 장착한 카메라로 일상을 기록한다. 그 자체가 픽셀 라이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찰나의 여유이자 휴식이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경험을 발견해나가고 있는가.

[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일러스트·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32호(26.06.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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