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포비아(Leader Phobia)’ 현상이 커져가는 추세다. 승진으로 인한 업무적 성취감보다 현재 ‘개인적인 삶과 업무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 더 손해라는 인식이다. 승진을 해 리더급이 되어도 책임은 증가하지만 이에 준하는 권한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도 있다. 자신이 맡고 있는 팀 전체의 성적, 팀원 개개인의 성과 관리 등을 모두 책임져야 하지만 팀을 통솔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권한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1 한국 CXO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의 임원 비율은 2025년 기준 0.82명이다.직장인에게 ‘별의 순간’인 임원 승진은 그야말로 ‘바늘구멍보다 좁다.’ 그럼에도 기업 부장들 사이에서는 ‘임원 승진’이 ‘기피 대상’이라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과 책임은 많아지고 연봉도 생각보다 많이 오르지 않는 반면 언제든 해고가 가능한 임시직’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직장인들의 의식이 변화하고 있다. ‘가늘고 길게 가자’로.
#2 지난 2026년 1월 감사원이 발표한 ‘공공기관 인력운용 실태’ 감사 결과에서 ‘초급간부 승진 기피 현상이 발생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3,122명이 즉 응답자의 57.1%가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한전케이피에스의 경우 2024년엔 승진 시험에서 응시 가능 인원 1,110명 중 0.7%인 8명만 응시했다. 승진시험 경쟁률이 0.2 대 1로, 이유는 업무 책임은 커지고 하급자 통제 권한은 약하고, 금전적 보상은 미흡하며 지방 공공기관 초급간부는 거주지도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원 승진의 경우도 비슷하다. 35개 기관에 재직 중인 상임이사와 1급 직원 447명의 설문 조사 결과 한국마사회 등 31개 기관 응답자의 44.1%는 임원 승진을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경영평가 성과 등으로 보수가 낮아지는 ‘임금 역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151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보장되지 않는 정년, 업무량 급증이었다. 2015~2022년 재직한 1급과 이사 보수를 비교하니 약 29%가 승진 뒤 연봉이 감소했고, 일부는 최대 5,700만 원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3 지난해 거점국립대 10곳(강원·경북·경상국립·부산·서울·전북·제주·충북대, 자료 미제출한 충남·전남대 제외)에 최근 5년간 정·부교수 승진 대상자이지만 심사를 신청하지 않은 비율을 보면, 8곳의 정교수 승진 미신청자 비율은 평균 36.9%이고 특히 서울대는 2023년 74.6%로 무척 높았다(2025년 9월, 국민의힘 서지영 의원실 자료). 정년이 보장되는 정교수도 마다하고 ‘만년 조교수, 부교수’로 남겠다는 교수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는 정교수로 승진하면 부교수 때는 없는 ‘학생 상담을 비롯한 각종 행정 업무’를 하며, 정교수로 승진해도 연구 환경이나 급여가 파격적으로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대학의 정책이 교수 재계약 기준을 횟수 제한 없이 재임용할 수 있도록 된 2018년 이후부터 많아졌다. 또 지난 5년간 부교수 승진을 보류한 조교수 비율도 약 58%였다.
승진=업무 과중, 책임 증대, 성과 압박 그리고 조기 퇴진
모 중견기업의 사례를 보자. 영업부 차장인 홍길동 차장은 능력도 있고 성과도 항상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노조의 핵심 브레인이었던 홍 차장은 해마다 노사협상 때 막후에서 노조집행부에게 ‘회사의 아픈 곳’을 알렸고, 늘 노조 측이 승리했다. 오너는 회사 임원들과 ‘홍 차장 제거 작전’을 세운다. 그리고 홍 차장은 그해 부장으로 승진했다.
부장으로 1년 6개월을 근무한 뒤 이사가 된다. 이 회사는 부장급 이상은 노조에서 자동 탈퇴하는 조항이 있다. 회사가 이 제도를 이용한 것이다. 이사가 되고 딱 1년 뒤 홍 이사는 재임용 탈락으로 결국 회사를 떠났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경우일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의 사례를 보자. HD현대중공업 노조는 2024년, 2025년 임단협에서 승진 거부권 인정을 요구했다. 조합원 범위를 벗어나는 승진을 하게 될 경우 당사자에게 이를 거부할 권리를 달라는 것. HD현대중공업에서 생산직은 차장급인 기감 이상, 사무직은 책임 매니저 이상으로 승진하면 노조에서 자동 탈퇴된다.
이에 대해 “노조 규모를 지키면서 임단협에서 계속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목적이다. HD현대중공업은 조합원 수에 비해 승진 대상자 비중이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승진 자체를 꺼리는 조합원이 많아진 현 세태도 반영된 것”이라고 관계자는 분석했다.
‘의도적 언보싱(Conscious Unbossing)’이 늘고 있는 건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한때는 회사에 청춘을 갈아 넣으면서 달고 싶었던 ‘직장인의 별’인 임원 승진을 마다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 19~36세 직장인 850명 대상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직장에서 리더 역할을 맡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다’가 47.3%로 ‘불안하다’의 22.1%보다 많았다.
대기업의 경우 ‘실제 업무량이 더 많아질 것 같아서’가 47.1%, 중견-중소기업은 ‘팀, 조직의 성과를 책임지는 게 부담돼서’가 각각 48.1%와 42.8%, 공기업은 ‘팀원의 성장을 책임지는 게 부담돼서’가 48.6%였다. 즉 ‘업무량 증가’, ‘팀 성과의 책임 증대’가 주요인이었다.
‘워라밸의 중요성’도 있다. 승진으로 인한 업무적 성취감보다 현재 ‘개인적인 삶과 업무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 더 손해라는 인식이다. 또 승진을 해 리더급이 되어도 증가한 책임에 준하는 권한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인식도 있다. 즉 리더가 되면서 개인적인 성과는 물론 자신이 맡고 있는 팀 전체의 성적, 팀원 개개인의 성과 관리 등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현실에 반해 팀을 통솔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은 거의 없다는 것이 이유다.
모 회사의 부장급 리더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명색이 팀장인데 팀원에 대한 인사고과에 실제적 권한이 없다. 성과 좋은 팀원에 대한 승진, 성과급 지급 등도 회사가 정한 규칙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해서 팀원들도 처음에는 나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만 점차 ‘내 월급 10만 원도 못 올려주는 허수아비 부장’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이때부터 ‘내 체면이 서지 않아’ 무척 힘들다.”
40대에 임원 승진해 40대 후반에 은퇴?
물론 임원이 되면 급여는 많이 오른다. 특히 국내 대기업의 경우 상무급 임원의 연봉은 부장급에 비해 최소 2~3배 오른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단순한 연봉 상승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긴다. 임원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계약서 작성’이다. 그 순간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그때부터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받는 만큼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이 기업의 구조다.
임원 1년 차를 보내면서 임원들은 알게 된다. ‘내 성과만 관리하고 목표를 채우라면 할 수 있겠는데…’라고. 하지만 임원에게는 그가 맡은 조직의 전체 성과를 관리하고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따른다. 그 과정에서 임원들은 위아래에서 모두 치인다. 리더는 그 두 가지 목소리를 서로에게 전달하는 ‘능숙한 통역사’가 되어야 한다. 조직의 목표를 조직원에게는 능동적 행동을 유발하는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오로지 ‘수치’로만 평가를 한다.
이젠 평가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그저 연봉을 올려줬다고 리더 대우를 다했다고 여기는 조직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책임과 권한의 동등한 균형, 지속적인 인센티브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리더십’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 즉 리더십 발현, 눈에 보이지 않는 세세한 부분을 살피는 기준이 필요하다.
승진 기피의 주요 원인은 ‘정년 연장’이다. 현재 60세까지 보장되는 정년을 65세로 연장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지만, 청년 취업 등 여러가지를 보완해야 하고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40~50대 초 직장인들은 기다린다. 그들에게는 정년 연장이 이루어지면 굳이 임원으로 승진해 굵고 짧게 회사 생활하는 것보다 만년 부장, 차장 소리 들어도 정년을 채우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리더급 임원으로 승진하면 2~3년의 첫 임용계약 기간을 보낸다. 이 기간에 성과를 내면 계약은 연장된다. 과연 그렇게 몇 번의 재계약을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요즘 기업들은 40대 임원, 심지어 30대 임원도 배출하고 있다. SK그룹은 신규 임원 85명 중 64%인 54명이 40대이고, 현대차그룹도 첫 상무 승진자의 40대 비율이 49%대로 높아졌다.
그러나 40대에 임원이 되어서 40대 후반에 회사를 나가는 임원들 역시 늘고 있다. 즉 50세가 되지도 않아 직장생활이 끝나는 것이다. 이를 눈으로 본 직장인들에게 ‘올해 부장, 임원으로 승진해야지?’라는 상사의 말은 ‘너도 몇 년 더하고 이제 나가야지’라는 말로 들리는 것이다.
“MZ세대의 직장, 승진에 대한 인식 변화가 빠르게 정착된 것의 밑바닥에는 사실 ‘조직이 개인의 삶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라는 경험치가 쌓여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존재한다. 이제 ‘평생 직장’, ‘회사를 내 회사처럼’ 등등의 구호는 후진적인 개발시대의 논리가 되어버렸다. 또한 지금의 직장인들에게 회사 외의 돈을 버는 기회 이른바 ‘재테크의 수단’이 많아진 것도 승진 기피의 한 이유이다. 월급 타서 열심히 적금 들고 월세-전세-자가로 이어지는 과거 십수 년간의 재테크 공식은 이제 고전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코인, 주식, 경매, 부동산 등 다양한 재테크의 수단이 존재한다.”
승진 < 일과 삶의 균형, 자기 계발과 성장, 그리고 커리어 완성
딜로이트가 2024년에 발간한 ‘MZ세대 리포트’에 따르면 MZ세대 응답자 중에서 74%는 ‘관리자 승진보다 기술력과 자유를 기반으로 한 커리어 개발을 더 중요시한다’고 밝혔다. 또 플랫폼 ‘잡코리아’ 조사 결과 MZ세대 직장인 54.8%가 ‘임원까지 승진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으며, 가장 큰 이유는 ‘책임져야 하는 위치가 부담스럽다’가 43.6%였다. 글로벌 채용 컨설팅 기업 ‘로버트 월터스Robert Walters’가 Z세대 대상 조사에서 응답자의 52%가 ‘중간관리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스트레스는 높고 보상은 낮다’고 답했지만, Z세대 직장인 절반은 ‘애초에 관리직 자체에 흥미가 없다’고 답했다. 이는 MZ세대의 직장에 대한 인식 변화가 기성 세대에 비해 빠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MZ세대는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이사로 이어지는 직장 내 승진 법칙보다 현재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직장에서의 승진, 인정보다 일과 삶의 균형, 자기 계발과 성장, 그리고 하나의 스토리처럼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이다.
MZ세대의 직장, 승진에 대한 인식 변화가 빠르게 정착된 것의 밑바닥에는 사실 ‘조직이 개인의 삶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라는 경험치가 쌓였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평생 직장’, ‘회사를 내 회사처럼’ 등등의 구호는 개발시대의 논리가 되어버렸다. 또한 MZ세대를 비롯한 지금의 직장인들에게는 회사 외의 돈을 버는 기회 이른바 ‘재테크의 수단’이 많아진 것도 승진 기피의 한 이유이다. 과거 월급 타서 열심히 적금 들고 월세-전세-자가로 이어지는 십수 년간의 재테크 공식은 이제 고전이 됐고, 지금은 코인, 주식, 경매, 부동산 등 다양한 재테크의 수단이 존재한다.
직장인들이 부러워한 억대 성과급이 쏟아진 동판, 판교 등지의 세태도 많이 변했다. 과거 빵빵한 성과급이 지급되면 수입차도 사고, 한우고기집, 일식집에서 매일 잔치가 벌어졌는데 올해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고 한다. 성과급은 분명 지급되었지만 주변 상권의 매출은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스마트하고 영민한 젊은 직장인들이 억대의 성과급을 다시 주식, 코인, 부동산 등에 재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들 중 누군가는 짧은 시간에 몇 년치 연봉을 손에 쥘 것이다. 이는 직장에 내 뼈를 갈아 넣어 충성을 다하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위 회사 중 한 곳을 다니는 필자의 후배는 내게 귓속말로 자신의 또 다른 계획을 말해준다.
“선배, 앞으로 10년 동안 이렇게 성과급 한 5번 정도 더 받으면 서울 강남은 아니지만 동판, 판교, 수원쯤에 아파트 하나 장만할 수 있어요. 기업, 금융, IT 등 다양한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 모임에 가면 ‘우리에겐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았다’고 얘기해요. 뭔지 아세요? 바로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에 희망 퇴직하는 거예요. 그럼 한 번 더 뭉칫돈이 생기지요. 그게 훨씬 낫지 뭐하러 부장 달고, 임원 돼서 새벽에 회사 나갈 일 있어요. 안 그래요?” 필자는 생각했다. “그래 너희들은 다 계획이 있구나!”
기성 세대나 선배들은 왜 그렇게 승진이 목매고, 회사에 매달렸을까. 위에서 내려오는 불 같은 호통, 아래서 올라오는 불만을 다 받으면서 ‘중간에 낀 자’, 임원은 ‘임시 직원’ 불리며 열심이었을까. 지금은 부장님, 이사님보다 ‘만년 과장’, ‘웰빙 대리’가 더 부러운 세상이 되었다.
[글 권이현(칼럼니스트) 일러스트 프리픽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32호(26.06.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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