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화풍의 모방은 저작권 침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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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명 디지털정책연구소장김윤명 디지털정책연구소장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과 함께,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의 독특한 화풍을 모방한 이미지 생성 콘텐츠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특정 작가의 화풍이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이 과연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논점은 저작권법의 핵심 원칙인 '아이디어·표현 이분법'(idea-expression dichotomy)과 '합체이론'(merger doctrine)을 통해 분석될 수 있다.

저작권법은 표현(expression)을 보호하지만, 아이디어(idea) 자체는 보호하지 않는다. 이는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고, 공공영역(public domain)을 유지함으로써 문화와 지식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저작권법의 기본 철학이다. 우리 저작권법 제2조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한다. 여기서 사상 또는 감정은 아이디어에 해당하며, 표현은 이를 외부로 드러낸 구체적 형식을 의미한다.

화풍(style)은 작가 특유의 미적 감각, 색채 구성, 선의 흐름, 장면 배치 방식 등을 포괄하는 일종의 표현 양식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추상적이고 반복가능한 형식으로, 개별 저작물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아이디어적 성격이 강하다. 특히, 화풍처럼 창작자가 일관되게 사용하는 시각적 방식은 창작 방법이나 경향에 가까우며, 특정 표현으로 보호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합체이론(merger doctrine)은 중요한 판단 기준을 제공한다. 이 이론은 아이디어와 표현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분리할 수 없을 경우, 그 표현에 대해 저작권 보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즉 어떤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오직 하나 또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면 그 표현까지 보호할 경우 결과적으로 아이디어 자체를 독점하게 되므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표현의 창작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그 표현이 아이디어의 필수적 수단일 경우 보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예를 들어 소설이나 영화에서 특정한 주제를 다루는 데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인물 유형, 전형적인 배경 설정, 사건 전개 방식 등은 아이디어와 분리되기 어려운 요소로 간주되어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화풍 또한 특정 정서를 전달하기 위해 제한된 시각적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개별 요소가 창의적이라 하더라도 그 전체가 저작권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는 논리가 적용된다.

실제로 '지브리풍'이나 '고흐풍'을 따르는 이미지나 영상 콘텐츠는 특정 저작물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는 이상 기존 저작권법상 침해로 보기 어렵다. 스타일이나 분위기의 유사성은 창작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뿐 저작권 보호의 경계를 넘어서는 요소는 아니다. 최근 챗GPT(ChatGPT)와 기타 생성형 AI를 활용해 지브리 스타일의 이미지를 생성하는 열풍은 표현물의 모방이 아닌 스타일의 차용에 가까우며 현행 저작권법의 허용 범위 안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생성물에 대해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화풍 유사성에 머무르지 않고 특정 저작물의 실질적인 표현 요소(캐릭터 디자인, 장면 구도, 색채 배치 등)의 구체적 복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AI가 생성하는 이미지의 대부분은 수많은 데이터의 패턴을 기반으로 독립적이고 변형된 결과물로 산출되므로 이 기준을 충족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생성형 AI가 기존 작가의 스타일을 학습하여 유사한 표현을 만들어내는 것을 문제 삼고자 한다면 이는 단순히 기존 저작권법의 해석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AI에 특화된 저작권 및 데이터 이용 관련 법제의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즉 창작 주체의 지시명령에 따라 알고리즘이 콘텐츠를 생성하는 시대에 인간 저작권자 보호와 창작 자유의 균형을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기계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것이 향유인지, 저작권 침해인지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2009년과 2018년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Text and Data Mining, TDM)을 위한 저작물 이용을 폭넓게 허용하였고 상업적 목적의 활용도 가능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는 표현물의 일부로서의 화풍이 AI 학습에 활용되는 것을 법적으로 차단하지 않으며 해당 스타일을 모방한 결과물이 기존 저작물의 구체적 표현을 실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한 저작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는 정책 방향을 보여준다. 2025년, 미국 저작권청도 인간의 기본적인 스케치를 생성형 AI를 통해 구체화하는 것은 인간의 저작물이라는 가이드를 제시했다.

결론적으로 특정 작가의 화풍을 모방한 결과물이 기존 저작물의 표현을 실질적으로 복제한 것이 아니라면 이는 저작권 침해로 평가되기 어렵다. 저작권법은 단순한 보호 장치를 넘어 창작의 자유를 제약하지 않기 위한 법적 틀로서 기능해야 한다. 예술은 늘 이전의 표현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진화하며 창작자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그 스타일이 후속 창작의 자원으로 활용되는 일도 빈번하다. AI 시대의 창작 현실을 반영한 법제도의 조화로운 정비가 창작자 보호와 표현의 자유라는 두 가치를 균형 있게 구현하는 해법이 될 것이다.

김윤명 디지털정책연구소장 digitalla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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