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은 “끊임없이 달려야만 제자리에 머물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유래한 '붉은 여왕의 가설(Red Queen Hypothesis)'은 기술 환경이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멈추는 순간 뒤처질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등 혁신 기술이 사회 전반을 바꾸고 있는 '디지털 혁명'의 한가운데에 있다. 교통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혁신 기술은 이미 세계 교통 인프라의 새로운 기준이 됐고 국가성장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실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주니퍼 리서치(Juniper Research)에 따르면 올해까지 스마트 교통 관리 시스템을 통한 글로벌 비용 절감액은 277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디지털 전환(DX:Digital Transformation)'이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성장과 생존의 문제임을 잘 보여준다.
더욱이 해외 사례는 이러한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미국 피츠버그는 AI 기반 교통 신호시스템 도입을 통해 통행 시간을 25% 단축하고, 차량 배출가스를 21% 줄였다. 영국 M42 고속도로에 적용된 스마트 시스템은 사고 건수를 월평균 5건에서 1.5건으로 감소시켰다.
일본은 DX의 경제적 필연성을 방증하는 대표적 사례다. 일본은 도로 노후화와 인구 감소에 직면해 통행료 징수 기간을 2115년까지 연장했으며, 앞으로 30년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인 280조엔이 유지관리에 투입될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과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도 향후 급증할 유지관리 수요와 재정 부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은 고속도로 인프라 노후화에 더해,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빈번해지며 시설 피해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국내의 도로 파임(포트홀) 발생 건수는 2019년 3717건에서 지난해 4992건으로 늘었고, 피해 보상액도 같은 기간 6억4600만원에서 41억원으로 6배 넘게 증가했다. 이는 기존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늘어나는 재난과 유지관리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건설 산업 전반의 구조적 한계도 DX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그동안 국내 건설 산업은 GDP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경제 성장을 견인했지만 노동 생산성은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며 지난 10년간 하락했다. 실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건설 산업의 노동 생산성 지수는 104.1에서 94.5로 감소했고 이는 디지털화 지연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DX의 속도를 한층 더 높여야 한다. 이에 정부는 제7차 건설기술진흥기본계획을 통해 DX를 국가적 과제로 명확히 설정했으며 한국도로공사도 2023년 디지털본부를 신설해 기반을 만들고, 이달 18일에는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길, 디지털 EX'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디지털 전환 거버넌스 강화 △일하는 방식 혁신 △디지털 신기술 도입 기반 마련 △국민 공감 도로교통 DX 서비스 제공 등 4대 전략목표를 제시했다.
이 전략 아래 도로공사는 다양한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 기반 행정을 현장에 적용해 성과를 내고 있다. IoT 센서를 활용한 스마트 제설 관리시스템은 제설제 살포를 자동화함으로써 작업시간을 30분 단축했고, AI 기반 CCTV 분석 시스템은 적재 불량 차량의 단속 건수를 4.7배 늘려 낙하물 사고를 30.2% 감소시켰다. 또 도로공사가 타공공기관 및 민간기업과 데이터를 공유·활용해 공동 개발한 졸음사고 예방 애플리케이션(앱)으로 144만회의 휴식을 유도하며 졸음운전을 13% 줄인 성과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대표적 데이터 기반 행정 사례로 꼽힌다.
드론과 라이다(LiDAR) 센서를 활용한 시설물 자동 점검 시스템은 접근이 어려운 교량의 점검 효율을 높였으며, AI 기반 스마트 시설물 관리 시스템은 유지관리 비용을 30% 절감했다. 또 생성형 AI 기술을 통해 점검 결과 보고서 작성을 자동화해 인력 부담을 줄이고 대응 속도를 높였다.
정밀 도로지도를 기반으로 스마트 도로통합 플랫폼도 구축 중이다. 이를 통해 시설물의 좌표 기반 관리와 생애주기별 데이터 통합이 가능해졌고, 연간 약 67억원의 편익이 발생하고 있다. 또 민자 및 재정 고속도로의 통합 요금 정산 시스템을 통해 연간 약 60억원의 사회적 편익을 창출했다.
이와 함께 도로공사는 자율협력주행 인프라 확충, K-MaaS 기반 통합교통서비스 플랫폼 운영, 도심항공교통(UAM) 인프라 구축, 스마트 물류센터와 복합환승센터, 지하 고속도로 등 미래 교통을 위한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과거에는 아날로그 도로망이 국토를 연결했다면 이제는 데이터 하이웨이 위에서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교통 생태계를 구현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 도로공사는 전사적 데이터 거버넌스를 확립하고 AI·클라우드 인프라를 강화하며 개방형 교통 빅데이터 플랫폼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DX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앞으로도 도로공사는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미래 교통의 문을 선도적으로 열어갈 것이다. 그 여정에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함진규 한국도로공사 사장
〈필자〉인하대 부속고를 졸업한 뒤 고려대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6대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대 총선에서 경기 시흥갑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19대∼20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이 기간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이후 한서대 산학 부교수를 역임하며, 초경량비행장치 조정자 자격증(드론자격증)을 보유하고 초경량비행장치 조종자 자격에 대한 지도 및 평가 과정 역시 수료했다. 2023년 2월 한국도로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