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 오늘도 개발자는 설명하고, 세일즈는 분위기를 띄우고, 실무자는 꼼꼼히 확인하고, 회계는 고개를 저으며 리스크를 말하고, 마케터는 세상을 설득하고, 제조업 리더는 품질을 다지고, 말만 하는 리더는 그 틈에 끼어 책임을 피해 다닌다.
서로 책임을 미루며 말만 오가는 사이, 일은 엉망이 되었고, 시간이 흘렀다. 다들 말을 많이 했지만, 문제는 터졌고, 리더들은 각자 자기의 방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를 해결하는 건, 늘 몇몇 일하는 사람들뿐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싸우는가? 왜 리더들은 서로 말이 안 통하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각자 자기만의 '직업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방식으로 문제를 본다. 개발자 출신 리더는 항상 히스토리를 공유한다. 문제를 일단 설명하고, 과정을 공유하면 자기는 할 일을 다 했다고 느낀다. 그 설명이 충분했으니, 이제 일이 풀릴 거라고 생각한다.
세일즈 출신 리더는 말이 크고 화려하다. 희망을 팔고, 가능성을 판다. “이런 그림이면 투자자가 혹할 거예요.” “고객은 이런 메시지를 좋아해요.” 어떻게든 비전을 만들어 팔고, 분위기를 띄우는 데 능하다.
울트라 실무자형 리더는 모든 걸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건 문서화가 되어 있나요?” “확인해 봤어요?” 실무적으로 맞는가, 절차상 빠진 건 없는가. 눈앞의 일, 손에 잡히는 결과만 본다. 하지만 실무만으로 경영이 풀리지 않는다는 걸 종종 잊는다.
회계·재무형 리더는 리스크부터 본다. '안 될 이유'가 먼저 떠오른다. 지나친 낙관론에는 차가운 물을 끼얹는다. 근거 없는 열정에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마케팅형 리더는 세상 모든 게 팔릴 수 있다고 믿는다. 잘 포장하면, 잘 전하면, 세상은 움직인다고 확신한다.
제조업 출신 리더는 처음에는 마케팅을 존중하지만, 성과가 나면 이런 말을 꺼낸다. “이제 제품이 좋아서 팔리는 거야.” 마케팅은 종종 배신당한다. 제조업형 리더는 좋은 제품이 결국 이긴다고 믿는다. 기술과 품질이 답이다. “진짜 좋은 제품이면 결국 알아서 팔린다.” 현실은 다르지만, 그 믿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 둘(마케팅과 제조업)의 충돌은 많은 창업팀에서 반드시 한 번은 겪는 갈등이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 가지 더 있다. 말만 하고 사람만 이용하려는 리더. 실무는 하지 않는다.
계획도 세밀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을 이용해서 문제를 풀려고 한다. 자기는 방향만 잡는다며, 말로만 일을 진행한다. 최근 인공지능(AI), 영상 편집기, 협업 솔루션 등 실무자의 역량을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도구가 많아졌다. 이제는 직접 뛰는 사람이 진짜 성과를 낸다. 도구와 시스템을 이해하고, 손을 더럽히는 사람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데도 이런 리더들은 여전히 “사람만 잘 써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는다. 처음엔 그럴싸한 말에 현혹된다. “이 사람이 뭔가 있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드러난다. 일은 결국 일하는 사람만 한다. 그리고 일이 잘못되면 책임은 그 일하는 사람에게 전가된다. 말만 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이런 리더는 이제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한다.
문제는 직업병이 아니라, 그걸 조율하지 못하는 것. 개발자의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고, 세일즈의 분위기 띄우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실무자의 꼼꼼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회계의 차가운 현실 감각이 반드시 필요한 때도 있다. 제조의 기술이 없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마케팅의 전달력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알려지지 않는다.
이것을 조율할 줄 아는 사람.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금은 누구의 말이 필요한 순간인지” 구분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창업자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우리는 꿈을 말한다. “이거 잘 돼야 하는데…”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그 꿈이 있어서 싸우면서도, 견디면서도, 오늘 하루를 또 넘긴다.
함성룡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상임이사(C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