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원전 안 짓겠다면 없던 일로"… 美에 '배수의 진'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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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9·11테러가 벌어진 지 25주년이 되는 날, 사고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서 멀지 않은 캔터 피츠제럴드 사무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30년 넘게 최고경영자(CEO)로 있었던 회사다. 9·11이면 운명을 달리한 그의 가족과 동료들을 위해 자선행사를 벌이는 곳에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마주했다. 이날 아침 공식 추모식에 참석한 김 장관은 행사 직후 러트닉 장관 승용차에 동승해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 두 사람 모두 10개월 이상을 끌어온 협상을 끝낼 때가 됐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날 직접 대면 이후에도 피 말리는 협상이 화상으로 몇 차례 이뤄지긴 했지만 큰 골격은 뉴욕 회동에서 다 맞춰졌다. 여러 가지 매듭지을 일이 있었다. 열거하자면 사업 아이템별로는 세 꼭지. 대미투자 1호라고 알려진 텍사스주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그리고 미국 내 원자력발전소 8기 건설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참여였다. 그리고 소위 '상업적 합리성'이라고 하는 이 프로젝트들의 수익성을 담보하는 게 몇 꼭지 있었다. △투자 손익을 어떻게 정산할지 △최초의 송금은 얼마 언제 할 것인지 △자금 투입은 어떤 방식으로 할지 △우리의 안전장치는 어떻게 확보할지 △한국 기업의 참여는 어느 정도 폭으로 할지 등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미세 조정의 이슈였지 협상의 결정적 문제는 아니었다. 핵심은 단 한 가지. 바로 한국형 원전의 건설이었다. 경주 APEC에서의 폭탄주 회식 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의 샅바싸움은 작년 10월 말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이보다 3개월 앞선 7월 30일 한미 양국은 관세 협상의 큰 틀에서 대미투자 2000억달러, 조선협력 1500억달러라는 큰 그림에 합의를 했다. 그 후 10월 29일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 직후 결과물이 나왔다. 그리고 2주 후인 11월 14일 소위 공동팩트시트(Joint Fact Sheet)를 서울과 워싱턴에서 동시에 발표하게 된다. 당시 이 협상을 막후에서 주도한 김용범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자들에게 농담처럼 "이 정도면 프로의 향기가 나지 않나"라고 자랑한 문서였다. 관세 협상 초창기 때부터 한미 간 무역 이슈는 모두 "나에게 말하라(Talk to Me)"고 자신하던 러트닉 장관. 그는 정상회담 결과를 브리핑한 직후 저녁 경주 시내 고깃집에서 기자들의 눈을 피해 김 실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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