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0만 명. 이번 유심 해킹 사태로 인해 잠재적으로 위험에 노출된 SK텔레콤 고객 수다. 뉴스를 접한 순간, 손이 떨렸다. 기술을 믿고 살아온 일상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정보 유출이 아니다. 이름 및 전화번호 수준이 아니라 유심 인증키, 국제이동통신가입자식별번호(IMSI) 같은 개인정보 관련 데이터 유출로 시스템 신뢰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해커가 피싱 문자나 보이스피싱 없이도 통장에 직접 접근할 가능성이 생겼다. 즉 정보 유출의 양상이 바뀌었다. 피해자의 부주의나 클릭 한 번으로 발생하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빈틈을 파고든 구조적 침해다.
더 큰 문제는 사고 이후 드러난 대응 방식이었다. SK텔레콤이 제시한 보안 조치는 ‘유심 보호 설정’. 하지만 T월드 앱 설치부터 여러 단계의 인증, 설정 변경까지 누구에게나 쉬운 방식은 아니었다. 특히 고령층이나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디지털 취약계층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공식 안내보다 언론 보도가 먼저 나왔다. 고객이 처음 접한 건 회사 측 설명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고객은 더 큰 불안을 느꼈고, 불신은 쌓였다.
이 가운데 특히 MZ세대의 반응이 두드러졌다. SK텔레콤 탈퇴 과정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거나, 유튜버들이 사건의 구조와 심각성을 다룬 콘텐츠를 제작해 올렸다. 집단소송 카페가 자발적으로 개설돼 수천 명이 함께 움직이는 모습도 나타났다. 과거엔 기업의 실책 앞에 ‘참고 넘기던’ 분위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다르다. 기술의 빠른 변화를 받아들이는 만큼 그 기술이 내 권리를 어떻게 침해했는지를 감지하는 속도도 빠르다. 브랜드의 말보다 공식 발표 이전에 쏟아지는 댓글, 밈, 콘텐츠 속에서 사건의 진위를 먼저 가늠하고, 필요하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감각. 그들은 기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감시하는’ 세대다. 이번 사건은 기술과 함께 자란 이 세대가 이제는 기술을 만든 구조까지 묻고, 책임을 요구하는 주체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브랜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기술적 완벽함보다 문제를 대하는 태도와 해결 방식에 먼저 주목한다. SK텔레콤은 그 중요한 순간, 진심 어린 설명도, 책임 있는 대응도 놓쳤다. 기술의 진보는 빠르지만, 위기 앞에서 신뢰를 지키는 브랜드의 태도는 여전히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술 감각’은 단지 기술을 빠르게 쓰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고, 누구를 위해 설계됐으며, 어떤 상황에서 위험해질 수 있는지 감지하는 민감함이다. 나아가 기술이 작동하는 방식이 모두에게 공정한가를 묻는 시선이기도 하다. MZ세대는 기술을 가장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세대다. 동시에 가장 빠르게 구조의 균열을 감지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감시자이자 설계자, 변화의 동력이 돼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