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시장처럼 정신없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진료실이지만, 그 한가운데에 짧은 침묵이 흐를 때가 있다. “검사 결과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암이 이미 전신에 퍼졌습니다.”, “더 치료해도 청력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안면마비로 예전의 얼굴처럼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한 문장이 누군가의 오늘과 내일 사이를 갈라놓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자주 그 말을 꺼내야 한다. 그리고 말을 꺼낸 뒤 찾아오는 침묵 앞에서 나 역시 매번 조금씩 작아진다. 정말 많이 공부하고 연구했지만, 현대 의학으로도 끝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마주할 때가 있다. 눈앞에 앉은 한 사람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 짧은 몇 초가 의사로서 마주하는 가장 두렵고도 무기력한 시간이다.
의사 국가시험 실기에는 ‘나쁜 소식 전하기’라는 항목이 있다. 학생 시절에는 진단도 처방도 아닌 ‘말 한마디’가 왜 시험이 되는지 의아했다. 돌아보면 그것은 꼭 필요한 시험이었다. 그 시험은 면허를 딴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 진료실의 모든 환자가 새로운 시험이 된다. 나쁜 소식을 전하는 일은 의사만의 몫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누군가의 세계를 흔드는 말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미안한 결정을 알려야 했고, 불합격을 통보해야 했으며, 이별의 말을 꺼내야 했다. 그래서 그 말을 하기 전 머뭇거리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안다.
다만 의사는 그 머뭇거림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한다. 외래에서, 병동에서, 수술 직후 보호자 면담실에서. 어떤 환자는 고개를 떨구고, 어떤 환자는 눈물을 쏟고, 어떤 환자는 한참을 멍하니 있는다. 또 어떤 환자는 설명이 끝난 뒤,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자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잠시 평범한 대화 속으로 숨고 싶은 본능일 테다. 그 어떤 반응에도 정답이 없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더 분명하게 깨닫는다.
진료실에서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 힘든 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공감’이다. 나를 포함한 젊은 의사들은 권위적 통보보다 소통과 공감을 먼저 배우며 자랐다. 그러나 그 공감이 때로는 딜레마가 된다. 환자의 슬픔에 너무 깊이 빠지면 정작 그를 위해 해야 할 다음 이야기, 즉 치료와 재활, 향후 계획을 제대로 꺼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함께 흘리는 눈물이 위로처럼 보일지 몰라도 때로는 환자가 다시 일어설 힘을 약하게 만든다. 반대로 너무 담담하면 환자는 자신이 수많은 환자 중 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사이 적절한 거리를 아직도 매번 새로 찾는다.
그 거리에도 정답은 없다. 다만 매번 환자 앞에서 고민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그 고민의 흔적만큼은 환자에게 닿는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았다.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그 말을 건네는 방식 자체가 하나의 처방이다. 결과지에는 적히지 않지만, 환자의 다음 한 걸음을 바꾸는 처방. 그 보이지 않는 처방을 끝까지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매일 다시 치르는 가장 어려운 시험의 답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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