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잇따라 미국 자본시장 공략에 나섰다. SK하이닉스가 45조원 규모의 미국예탁증서(ADR) 발행을 추진하는 데 이어 일본 낸드플래시 1위 키옥시아도 미국 ADR 발행에 나선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역시 미국 ADR 상장을 검토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가와무라 요시히코 키옥시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25일 주주총회에서 "다음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4~6월께를 목표로 ADR을 발행할 계획"이라며 "미국 시장과 직접 연결되는 매우 의미 있는 프로젝트인 만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시장과 연결되면 주가 안정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미국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ADR은 미국 외 기업이 미국 증시에 직접 상장하지 않고도 미국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 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증권이다. 이번 ADR 추진은 전날 미국 상장 계획을 발표한 SK하이닉스에 이어 글로벌 메모리 업체들이 세계 최대 자본시장인 미국 투자자 확보에 나서는 흐름으로 풀이된다.
키옥시아는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낸드는 인공지능(AI) 연산에 직접 사용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보다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지만 AI 모델 규모가 커질수록 데이터를 저장해야 하는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요가 커지고 있다. HBM 공급 부족으로 데이터센터용 저장장치 수요가 낸드로 확산되는 점도 키옥시아의 실적 개선을 뒷받침하고 있다.
키옥시아는 AI발 메모리 수요 급증에 힘입어 올해 일본 증시를 대표하는 종목으로 떠올랐다. 이날 주가는 장중 최대 15% 급등하며 올해 들어 상승률이 약 800%에 달했다. 회사는 올해 일본 상장사 가운데 도요타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오타 히로오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의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와 장기 공급계약이 늘고 있다"며 "메모리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SK하이닉스가 지분을 투자한 기업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이 주도한 한·미·일 컨소시엄에 참여, 총 3조9100억원을 투자해 키옥시아 지분 약 21%를 간접 확보했다.
키옥시아에 앞서 SK하이닉스가 ADR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미국 자본시장에서 45조원 규모의 자금 조달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4일 이사회를 열어 보통주 최대 1779만 주를 발행하는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1DR당 발행가액은 25만5500원이다. 이는 지난 23일 기준 보통주 종가 255만5000원을 적용해 산정한 원화 금액이다. 전체 예상 조달 금액은 약 45조4534억원이다.
나스닥시장 상장 예정일은 다음달 10일이다. 이번 DR 발행은 제3자 배정 방식으로 발행한 신주(보통주)를 해외 기관에 예탁하고, 예탁된 원주를 기초로 미국 DR을 발행해 해외 기관투자가 등에 배정하는 방식이다. 최종 조달 규모와 공모 가격은 해외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다.
이번에 확보하는 재원은 전액 시설 투자에 쓰인다. 자금 투자처는 차세대 AI 메모리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생산기지에 집중됐다. 주요 투자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건설, 청주 P&T7 어드밴스드 패키징 팹 건설 및 장비, 차세대 공정에 대응하기 위한 극자외선(EUV) 스캐너 확보 등이다.
세부 투자 금액을 보면 용인 클러스터 1기 팹에 31조1960억원, 청주 P&T7 어드밴스드 패키징 팹에 19조원이 투입된다. 차세대 미세공정의 핵심인 EUV 스캐너 확보에도 11조9497억원을 책정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ADR 공모로 조달하는 자금을 이들 총투자금의 핵심 재원으로 쓰고, 부족분은 자체 영업활동 현금흐름과 차입 등을 통해 충당할 방침이다.
한국과 일본의 메모리 회사가 미국 자본 시장을 두드리자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의 ADR 상장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25일 보고서에서 "최근 해외 투자자 미팅에서 삼성전자의 미국 ADR 상장에 대한 관심과 문의가 예상을 크게 상회했다"며 "다수의 해외 투자자들은 ADR 상장 현실화 시 삼성전자 주가 상승의 강력한 촉매 요인이 될 것으로 주목하는 분위기였다"고 소개했다.
김 본부장은 "글로벌 투자자의 접근성 확대 차원에서 미국 ADR 상장이 유력한 자본 정책 옵션으로 평가되며, 향후 관련 논의가 점증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현재의 저평가 상태와 우호적인 시장 여건을 고려할 때 미국 ADR 상장은 배제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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