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희토류 수출 6개월만 허용…美와 전략 자원 기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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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로벌 제조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희토류였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해 글로벌 시장이 전방위 충격에 직면하면서다.

중국이 미국과 런던 협상을 벌인 뒤 희토류 수출을 재개했지만, 허가 기간을 6개월로 한정했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 중국이 언제든 희토류 공급을 차단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美·EU “車공장 멈출라”경고

지난 4월부터 두 달 간 중국은 희토류 7종과 희토류 자석의 수출에 대해 사전 정부 승인을 의무화했다. 승인 절차에 45일 이상 소요돼 사실상 수출 중단 상태에 가까운 상황이 됐다.

중국 희토류 수출량은 4월 4785t으로 전월대비 15.6% 급감했다. 5월에도 큰 폭의 반등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희토류의 절반가량이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네이멍구자치구의 바이윈어보 광산. 한경DB

세계 희토류의 절반가량이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네이멍구자치구의 바이윈어보 광산. 한경DB

공급 차질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자동차 업체들의 비축 물량도 바닥을 드러냈다. 독일 자동차산업연합(VDA)은 이달 초 성명을 통해 “희토류 수출 허가 지연으로 독일 내 생산일정 전반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 최대 전기차 제조사 바자즈오토는 “공장 가동률을 조정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고, 일본 스즈키는 스위프트 하이브리드 모델의 일부 조립라인을 일시 중단했다.

미국 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미국 자동차혁신연합(AAI)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전달한 비공개 서한에서 “희토류 부족으로 미국 내 완성차 공장 가동이 멈출 수 있다”고 밝혔다. 자동변속기, 모터, 안전띠, 조명, 카메라 등 핵심 부품 생산에 이미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포드, 도요타, 스텔란티스, BMW, 현대차 등이 AAI 회원사다.

이같은 상황에서 반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미국과 중국의 고위급 대표단이 지난 9~10일 런던에서 2차 무역 협상에 나서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SNS에 “중국이 필요한 모든 희토류를 먼저 공급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 기업에 대한 희토류 수출 허가 기간을 6개월로 제한했다. 미·중 협의에 관여한 소식통은 “중국이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희토류 통제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레이슬린 바스커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중요광물 안보 프로그램 디렉터는 “중국이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어한다”며 “어떤 협정도 언제든 파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기업은 여전히 직접적인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고 평가했다.

◇ 첨단산업 전반에 희토류 리스크

희토류 공급 충격은 자동차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中, 희토류 수출 6개월만 허용…美와 전략 자원 기싸움

테슬라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는 구동 모터용 영구자석에만 2㎏ 이상의 희토류가 들어간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1분기 실적 발표에서 “희토류 자석 조달 문제로 휴머노이드 생산계획이 지연됐다”고 밝혔다.

방산업계는 더욱 민감하다. 전투기용 고출력 레이더, 미사일 유도장치, 소형 위성 구동계 등에 필수적인 희토류를 대부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달 희토류 비축 확대 계획을 발표했고, 일본 방위성도 민감 장비에 중국산 희토류 사용을 줄이기 위한 대체 소재 개발 예산을 긴급 편성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희토류 수급 불안은 사실상 전력공백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희토류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고체 레이저 제조에 쓰이는 이트륨은 6월 초 기준 ㎏당 8550달러로 4월 초보다 22.1% 상승했고, 고온용 모터자석 제조에 필요한 디스프로슘은 4월 초 대비 17.2% 오른 272.5달러를 기록 중이다.

희토류 통제는 단순한 ‘물량 통제’가 아니라 ‘정보 통제’로 확대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여러 기업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 당국이 희토류 및 자석 수출 승인 과정에서 생산 세부 사항, 고객사 목록, 과거 거래 내용 등 민감한 정보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스피커 제조사 B&C스피커스의 안드레아 프라테시 공급망 담당 이사는 “생산라인 사진, 동영상, 시장 정보, 고객사 리스트와 일부 주문서까지 제출했다”며 “요청 자료를 내지 않으면 서류 자체를 접수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중국 측의 정보 요구가 사실상 거래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공급망 다변화 시급”

글로벌 산업계는 ‘탈(脫)중국’을 선언하며 희토류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미국 MP머티리얼스는 네바다주 마운틴패스 광산의 정제 설비를 확충 중이며, 사우디 아람코와 손잡고 중동 내 가공시설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중국 정부에 수출 절차 간소화와 ‘화이트리스트’ 도입을 요구하며 공식 협상을 시도하고 있지만, 중국 측은 ‘전략 자원의 주권적 관리’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희토류가 단순한 채굴 광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광석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정제 과정은 고비용·고오염 공정이 요구돼 민간 기업의 진입 장벽이 높다.

일본 스미토모금속광산, 프랑스 이메리스 등 일부 기업이 희토류 리사이클링 기술을 상용화했지만, 아직은 공급량의 극히 일부를 대체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희토류를 둘러싼 이번 갈등이 단순한 무역 이슈가 아니라 새로운 자원 지정학의 신호탄이라고 지적했다.

김주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AI, 전기차, 방산 산업이 동시에 성장하면서 희토류는 리튬보다 더 전략 자원이 됐다”며 “국가 차원의 중장기 공급망 전략이 없으면 산업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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