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프랑스가 국가부채의 부메랑을 맞고 있다. 일본은 금리 인상 여파로 내년에 국채 이자만 120조원 넘게 내야 할 처지가 됐다. 올해보다 국채 이자 부담이 24% 늘어나는 것이다. 프랑스에선 국가부채를 줄이려는 정부와 이에 반발하는 야당이 맞서면서 내각이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 정치 불안으로 프랑스 금융시장도 출렁였다.
일본 정부가 내년 국채 이자 지급비로만 13조엔가량을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보다 24% 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관측과 야당의 소비세 인하 추진 등으로 국채 금리가 상승(국채 가격 하락)하면서다.
2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재무성은 전날 제시한 2026년 예산 요구안에서 국채 이자 지급비로 13조435억엔(약 123조원)을 편성했다. 최근 장기 금리 상승세로 이자 지급비 계산에 사용하는 예상 금리를 올해 연 2.0%에서 내년 연 2.6%로 인상한 영향이다. 원금 상환분까지 더한 전체 국채비는 32조3865억엔으로 올해보다 15% 증가한다. 연간 국채비가 30조엔을 넘는 것은 처음이다.
재무성이 내년 예상 금리를 연 2.6%로 잡은 것은 최근 장기 금리 지표인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일 상승하고 있어서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날 한때 17년 만의 최고치인 연 1.625%를 나타냈다. 20년 만기(연 2.65%), 30년 만기(연 3.235%), 40년 만기(연 3.435%)도 줄줄이 치솟았다.
국채 금리가 치솟은 것은 최근 물가 상승으로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이란 관측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일본은행이 이르면 10월 기준금리를 높일 것으로 본다. 일본은행은 올해 1월 기준금리를 연 0.25%에서 연 0.5%로 올린 이후 7월까지 네 차례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모두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재정 운용과 관련해 ‘완화 정책 잔치’가 끝났다”고 지적했다.
집권 자민당이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에서 모두 ‘소수 여당’으로 전락해 재정 지출 압박이 커진 점도 국채 금리의 상승 원인으로 꼽힌다.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협력이 필요한 야당이 소비세 감세 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일본 정부가 적자 국채를 발행해 재정이 악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시장이 대표 안전자산인 일본 국채를 외면하는 이유기도 하다. 니혼게이자이는 “장기 금리 상승은 재정 부담을 늘리고, 추가 금리 상승을 초래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국채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근본 원인은 정부 부채 급증이다. 일본 국채 발행 잔액은 작년 말 1105조엔에 달했다. 작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36.7%로 세계 최대다.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국채비는 급증한다.
정부 부채는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비 급증으로 갈수록 늘고 있다. 내년 일본 정부의 예산 요구액은 120조엔대에 달해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복지 예산이 필요한 후생노동성이 사상 최대인 34조7929억엔으로 가장 많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5월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 재정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며 “그리스보다도 나쁘다”고 말했다.
나랏빚 경고등…요동치는 시장
프랑스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정부가 국가부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줄이는 정책을 내놓자 야당이 반발하면서다.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긴축 예산안을 걸고 의회에 신임 투표를 요청하겠다고 밝히자 내각 붕괴 위험이 부각되면서 국채시장이 요동친 것이다.
금융정보 사이트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6일(현지시간) 연 3.53%까지 치솟았다. 지난 3월 이후 최고치다. 1년 전보다 0.5%포인트 이상 올랐다. 유럽시장에서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독일 10년 만기 국채(연 2.72%)와의 금리 차이가 0.8%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투자자들이 프랑스 국채에 그만큼 위험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주식시장도 흔들렸다. 프랑스 증시를 대표하는 지수인 CAC40(시가총액 상위 40개로 산정한 지수)은 이날 한때 2%대까지 떨어졌다. 오후 들어 낙폭을 일부 줄이며 1.7% 하락세로 장을 마감했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프랑스 금융시장이 충격받은 배경은 정치 불안이다. 바이루 총리는 전날 긴축 재정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다음달 8일 하원에 내각 신임 투표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를 공격할 명분을 찾던 야당은 일제히 불신임에 찬성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에 프랑스 정치권이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에도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의회 불신임을 받아 붕괴했다. 의회 불신임으로 정부가 무너진 건 1962년 조르주 퐁피두 내각 이후 처음이었다. 작년에도 지출 삭감을 담은 예산안의 합의 실패가 이유였다.
바이루 총리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국가 재정 상태가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며 긴축 재정을 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프랑스 국가부채는 지난해 기준 3조3000억유로(약 5351조원)였다. 프랑스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 수준이다. 독일(63.8%), 네덜란드(43.2%), 핀란드(8.5%) 등 다른 유럽 국가보다 높다. 코로나19 확산과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 대응, 각종 복지지출 확대가 국가부채 증가 요인이다. 지난해 프랑스 정부 지출 규모는 GDP 대비 57.4%에 달했다.
바이루 총리는 프랑스인이 현실의 심각성을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다며 충격 요법으로 ‘정부 신임 투표’ 카드를 꺼내 들었다고 밝혔다. 긴축 재정에 여론 반발이 큰 상황에서 의회 신임을 확보해 정책 추진 동력을 얻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프랑스 매체는 바이루 총리의 의회 신임 투표 요청을 ‘자살 행위’라고 평가했다. 의회 내 중도 세력인 범여권이 절대다수를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좌우 진영이 정부 기조에 강하게 반발해 신임 투표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야당의 정부 불신임 위협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정치 세력이 타협과 안정의 길을 찾아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권이 대통령 사임을 요구하고 있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대통령직은 선출된 목적을 수행하고 국가를 위해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라며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할 일”이라고 일축했다.
의회 다수가 불신임에 표를 던지면 바이루 내각이 붕괴된다. 이 경우 마크롱 대통령은 후임 총리 지명, 의회 해산 등을 선택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해산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회 해산으로 총선을 치르면 극우와 극좌가 더 약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도쿄=김일규 특파원/김주완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