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무역의 규칙은 자살 협정이 될 수 없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도널드 트럼프 관세 정책 이전의 무역 체제를 이같이 비판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체제가 세계 각국의 대미 관세를 정당화하지만, 미국은 낮은 관세로 받아들여 제조 경쟁력을 손상시켰다는 논리다. 이를 개혁하기 위해 WTO 중심의 자유무역 체제에서 벗어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새로운 무역 질서를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가 발효되는 날에 맞춰 이 기고를 실었다.
◇“미국의 부와 안보 저해”
그리어 대표는 트럼프 관세 정책 이전의 무역 체제를 ‘자살 협정’이라고 표현하면서 다양한 근거를 들었다. 그는 “WTO 중심 자유무역 체제로 미국은 산업 일자리와 경제 안보의 상실로 시스템에 대한 대가를 치렀고, 다른 국가들은 필요한 개혁을 할 수 없었고, 가장 큰 승자는 중국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 경제는 취약해졌다면서 “관세나 유사한 보호 조치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미국이) 금융과 컨설팅 수수료에 의존하는 경제를 창출했으며, 물건을 만드는 것에서 오는 지속 가능한 부와 안보를 저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최근 무역 협정을 꼽았다. 미국과 EU는 스코틀랜드 턴버리 리조트에서 EU에 대한 15% 상호관세 부과에 합의했다. 그리어 대표는 이를 “역사적인 합의”라고 지칭하며 “미국은 새로운 글로벌 무역 질서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무기화도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소비자 시장에 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특권이 강력한 (투자) 유인책임을 유일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관세는 강력한 제재 수단”이라고 밝혔다.
◇“美가 무역합의·분쟁 제재”
그는 다른 여러 국가도 미국과의 경제 관계를 더 지속 가능하게 재조정할 필요를 인식하고 있다면서 EU 외에도 영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필리핀, 한국, 태국, 베트남 등과 체결한 무역 합의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한국은 15% (상호) 관세와 함께 미국의 자동차 기준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이 3500억달러를 미국 제조업에 투자하기로 했다면서 “한국은 비시장 경쟁 앞에서 쇠퇴한 미국 조선 산업의 재활성화를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다른 나라가 무역 협상에서 한 약속을 지키도록 강제하겠다면서 미국은 시간을 오래 끄는 WTO 분쟁 해결 절차를 활용하는 대신 “합의 이행을 긴밀히 감시하고 이행하지 않는 경우 필요하면 더 높은 관세율을 신속하게 재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양자 간 무역협정으로 재편
통상 전문가들은 글로벌 무역 질서가 WTO 중심의 다자무역에서 벗어나, 양자 및 복수국 간 협정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될 것으로 전망한다. 유사한 입장을 가진 중견국들이 이합집산한 형태의 다자 플랫폼이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정 국제통상학회장은 “미국발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복수 무역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이 조기에 추진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또 “복수 무역체제는 지역 블록화 경향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며, 각 블록이 내부 개방을 확대해 상호 피해를 흡수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중국이 포함된 다자 협정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되, CPTPP와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해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뉴욕=박신영 특파원/하지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