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한국과 미국 대표단이 상호관세 협상 테이블에서 서로 얼굴을 맞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참석할 것인지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 국내 금융시장도 협상장 분위기와 결과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진행된 유럽연합(EU), 일본 사례를 되짚어 보면 미국은 세 가지 원칙으로 상호관세 유예 협상에 임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의지가 확실하게 반영되는 ‘톱다운’ 방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다. 협상 기간을 단축하면서 국익을 최대한 관철할 수 있다.
철저한 ‘패키지 딜(package deal·통합 거래)’이란 점도 특징이다.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레버리지 카드가 있을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무역 적자, 재정 적자, 국가 채무, 경기 부양, 인플레이션 등 과제가 산적한 트럼프 정부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기도 하다.
미국은 상대방이 먼저 최선의 대안을 내놓도록 하는 ‘A-게임’ 방식을 취하고 있다. EU, 일본 사례에서 보듯 협상안과 관련해 미국은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선부과 후협상 원칙을 취하고 있는 트럼프 관세 정책에서 전자가 최선이란 걸 암시하는 자세다.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는 네 가지 안건으로 요약된다. 공통적으로 관세, 비관세 장벽 철폐와 미국 투자 확대가 꼽힌다. 원화 약세 시정 방안도 무역 적자를 개선한다는 차원에서 실무 협상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무역 불균형 해소 측면에서 미국은 원·달러 환율 적정선을 1250원 내외로 보고 있다.
‘주한미군 무임승차’ 보상 문제 역시 많은 시간을 할애할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등 경제성 차원에서 미국이 접근하기 힘든 숙원 과제다. 여기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안건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4대 안건만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힘에 겨울 수밖에 없다. 더 우려되는 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상과 관련해 미국이 기습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안건이다. 트럼프 관세 정책은 중국을 겨냥하면서 달러 위상을 강화하는 데 최종 목표를 두고 있다. 이 목표를 분명히 하면서도 조 바이든 전 정부의 뼈아픈 실수를 명시하고 있다.
5년 전 중국이 보안법을 실시한 뒤 홍콩달러 페그제 폐지가 논란이 됐으나 바이든 정부는 용인했다. 홍콩 예속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중국 위상이 강화됐다는 게 트럼프 정부의 판단이다.
미국 이익만을 중시하는 ‘돈로(DonRoe·트럼프 약칭인 도널드와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주창한 먼로주의를 합친 신조어) 독트린’을 추구하는 여건에서 시장 자율적으로 달러 위상 강화를 기대하는 건 어렵다. 강압적으로 달러 사용권을 확대하는 페그제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달러 가치를 금과 연계(peg)하는 금 본위제를 주장해왔다. 우리에게 기습적으로 달러 페그제를 요구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미국과의 상호관세 유예 협상은 우리 국익을 증대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미국과의 공동 이익에 부합하면 주저 없이 합의하되 충돌하는 안건에 대해선 최대한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 협상을 서두르거나 가급적 미국 요구를 들어주자는 자세는 손정의 사례에서 보듯 다 주고도 뺨 맞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