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의회인 입법원이 원전 운영 기한을 최장 20년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벨기에 의회도 15일(현지시간) 22년 만에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산업을 부활시키는 법안을 처리했다.
대만 입법원은 최근 원전 운영 면허 기간을 최장 40년에서 60년으로 연장하는 ‘핵반응기 시설관리법’ 개정안을 찬성 60표, 반대 51표로 처리했다. 입법원 전체 의석 113석 가운데 51석을 차지한 집권 민주진보당은 소속 의원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야당인 중국국민당(52석)과 대만민중당(8석) 의원이 찬성해 여소야대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됐다.
민진당은 차이잉원 전 총통이 2016년 “2025년까지 원전을 모두 폐쇄하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하면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 왔다. 차이잉원에 이어 집권한 라이칭더 총통도 원전의 안전 문제를 이유로 이런 기조를 유지했다. 이에 따라 대만은 수명이 끝난 기존 원전 허가를 더 연장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제1원전(진샨 원전) 1·2호기와 제2원전(궈셩 원전) 1·2호기, 제3원전(마아샨 원전) 1호기 등 총 6기의 원전 중 5기가 차례로 가동을 멈췄다. 마지막 하나 남은 제3원전 2호기의 운영 면허가 이달 17일 만료되면 대만은 공식적으로 ‘탈원전 국가’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업체인 TSMC를 포함한 반도체 기업의 전력 수요가 급증한 데다 정전 사태가 잦아지자 원전 재가동 요구가 거세졌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이 전략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원전을 계속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국민당은 “대만의 경제·안보를 위해 원전 운영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만 "AI·반도체 전력 수요, 신재생에너지론 감당 안돼"
전력 수요 늘며 원전 부활 목소리…최대 6기까지 재가동될 수도
대만 집권 민진당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이 차례로 가동을 멈추면서 대만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작아졌다. 2019년 13.4%에서 2023년 6.9%로 떨어졌다.
문제는 전력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대만 국가대표 기업 TSMC의 연간 전력 사용량은 2018년 124억4000만㎾h에서 2023년 247억7500만㎾h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전력 수요 증가로 정전 사태가 빈번해졌다. 야권을 중심으로 원전 가동 요구가 커진 배경이다.
대만 입법원에서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기존에 최장 40년이던 원전 가동 기간을 관련 기관의 승인을 받아 최장 60년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운전 면허가 만료된 원전도 연장 신청이 가능하도록 했다. 현재 대만에 있는 6기의 원전이 전부 재가동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다만 원전을 운영하는 타이완전력공사가 연장 허가를 신청해야 하고 민진당 정부의 관련 기관이 이를 허가해야 연장 운영이 가능하다.
야당 의원들은 세계 주요국이 원전 수명을 늘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치카이 민중당 의원은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은 원전 수명을 60년까지 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탈원전에 앞장선 유럽 국가들도 최근 원전으로 복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벨기에 의회는 22년 만에 탈원전 정책을 접기로 했다. 마티유 비헤트 벨기에 에너지 장관은 “연방의회가 20년간의 방해와 머뭇거림을 극복하고 현실적이고 회복력 있는 에너지 모델을 위한 길을 열었다”고 밝혔다. 벨기에는 당초 올해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할 계획이었다.
북유럽의 신재생에너지 강국인 덴마크도 기존 탈원전 정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1990년 마지막 원전을 폐쇄하며 세계 최초 탈원전 국가가 된 이탈리아도 지난 3월 원자력 기술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60%가 넘는 스페인도 향후 10년간 원자력 발전소 7곳을 폐쇄하려던 계획을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 가동을 모두 멈춘 독일도 최근 원전 재가동 논의를 시작했다.
이혜인/김주완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