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만들고 수출하던 대기업 영업맨, 바이올린을 깎다[은퇴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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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걱정 직장인 필독 레시피] 현대-기아차 해외 법인장의 변신
伊서 만난 스트라디바리에 감동… 몇년뒤 ‘악기 제작 회사원’ 기사에
무작정 서초동 골목 공방 문 두드려
일주일 6시간씩 작업하고 다듬으며, 7개월 매달려 본체 만드는 데 성공
50대 후반 퇴직후 제작에 뛰어들어… 한국서 제작한 악기로 해외진출 포부

경기 이천에 있는 현악기 제작공방 ‘얀스트링웍스’에서 만난 김용성 씨. 작업대에 현악기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작업도구가 빼곡히 걸려 있고, 김 씨가 만든 백통 상태의 비올라와 칠을 마친 바이올린, 첼로 등이 놓여 있다.

경기 이천에 있는 현악기 제작공방 ‘얀스트링웍스’에서 만난 김용성 씨. 작업대에 현악기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작업도구가 빼곡히 걸려 있고, 김 씨가 만든 백통 상태의 비올라와 칠을 마친 바이올린, 첼로 등이 놓여 있다.
경기도 이천의 야트막한 야산이 마주보이는 상가 건물 2층. ‘얀스트링웍스’라는 팻말이 달린 문을 열자 작업대 위에 조그만 도구들이 빼곡히 걸려 있는 공방이 펼쳐졌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깎아낸 나뭇가루, 벽에 걸려 있는 백통(白桶) 상태의 비올라와 완성을 앞둔 바이올린…. 옆에는 우아한 곡선의 첼로도 한 대 세워져 있었다.

작업용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을 맞이한 제작자는 3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차 해외 수출 일선에서 활약했던 김용성 씨(65). 1985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엔지니어로 입사해 판매영업으로 직분을 바꿔 이탈리아 밀라노, 파리, 인도 법인장을 두루 역임했던 베테랑이었다. 자동차를 만들고 팔던 그는 은퇴 후 원목을 깎고 다듬어 전통방식으로 복원하는 수제 악기 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인생에서 취미가 시작된 것은 2005∼2006년 무렵. 그가 40대 중반이던 울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생산라인에서 벗어나 울산 공장에서 손님을 안내하는 의전실장을 담당했다. 시간적 여유가 그를 취미의 세계로 이끌었다. 사내 동호회를 통해 그림을 배웠고, 데생과 수채화를 하다가 본격적으로 유화를 그렸다. 도자기도 배워 찻잔과 달항아리를 만들고, 통나무집 학교에서 집짓기와 가구를 만드는 목공을 배우기도 했다. 북미, 유럽, 인도 등 해외지사에서 일할 때는 골동품을 수집해 분해해서 닦고, 조립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취미활동이 부산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이었다.

“모든 취미는 작업 공간이나 장비를 필요로 합니다. 또한 작업 후 결과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고민이죠. 저희 집만 해도 유화 캔버스가 40∼50개가 쌓여 있어요. 골동품은 이삿짐 박스로 28개가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도자기로 구운 찻잔과 꽃병, 그릇들, 가구까지…. 처음엔 주위에 선물로 주고, 전시도 하고, 팔아보려고도 하지만 쉽지 않았죠.”

이렇게 쌓여가는 부산물은 그에게 ‘취미의 경제학’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현악기 제작.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방 한구석에 45도로 걸어두면 15∼20대를 걸어두어도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았다. 그는 “악기 제작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부피가 작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또한 팔기 어려운 그림과 달리 악기는 판매나 수리에서 경제성도 확보할 가능성이 있는 취미”라고 말했다.

● 크레모나에서 만난 스트라디바리

2010년 쯤 그는 현대차 밀라노 판매법인장으로 일했다. 신설 법인이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어느 주말 밀라노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 크레모나에 갔다가 박물관에서 운명처럼 스트라디바리 악기를 만나게됐다.

“크레모나는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같은 전설적인 장인들이 활동했던 무대였습니다. 전세계 현악기 제작의 성지로 불리죠. 지금도 수많은 장인들이 공방에서 악기를 만들고 있더군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크레모나에서 구해온 바이올린 포스터를 거실 탁자 유리 밑에 펴두고 생각했다. 나도 배우면 언젠가 악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듬해 곧바로 프랑스 법인으로 발령나면서 크레모나의 기억은 잊혀졌다.

3년간 프랑스 근무를 마치고 2015년 귀국했을 때였다. 신문에서 ‘회사원이 취미로 바이올린 연주를 하다가 악기 제작에 매력을 느껴 배우고 향후 마에스트로를 꿈꾼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다. 눈이 커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잊고 있었던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꿈! 그런데 어디서 배울 수 있는 거지?

그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앞 악기상가 주변을 무작정 걸었다. 골목길 끝에 ‘바이올린 제작 수강’이라고 쓰여진 조그만 팻말을 발견했다. 공방의 문을 두드렸다. 양복을 입은 나이 든 사람이 “악기제작 일을 배우고 싶다”고 하니 주인은 당황한 눈빛이었다. ‘은퇴 후 꼭 하고 싶은 일’이라고 진지하게 매달린 끝에 배움을 허락 받았다.

그의 스승은 김병철 마에스트로였다. 그도 공무원을 하다 뒤늦게 악기제작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인물이다. 안정된 공무원 생활을 접고 크레모나 유학길에 올라 3년 정규 과정을 마친 뒤, 현지 공방에서 6∼7년간 마에스트로(현악기 제작 장인의 호칭)로 밑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고 귀국해 공방을 열었던 것이다.

“회사 다니면서 토요일 오후에 3시간씩 배웠어요. 평일 중 하루에도 퇴근 후 밤 10시까지 수업을 했어요. 1주일에 총 6시간씩 작업했죠. 아내에겐 처음엔 비밀로 했는데요. 아마도 토요일 오전에 사무실 갔다가 오후까지 열심히 일하는 남편을 보고 높이 승진이라도 하려나 하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대패질로 나무를 다듬고, 수평과 직각을 잡고, 맞붙이고, 앞뒷판을 끌과 미니 대패로 파내고, 옆판을 구워 모양을 만드는 바이올린 제작 일은 쉽지 않았다. 각 부분을 하나씩 만들어갈 때마다 마에스트로의 지적은 매서웠다. 회사에서 실적이 나오지 않아 문책을 당할 때보다도 더한 지적을 들을 때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스승은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나무는 한번 잘못 깎아 버리면 다시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지적을 받았던 것은 ‘너무 빨리 하려고 한다’는 말이었어요. 천천히 해야 완벽한 악기가 나오는데, 서두르다 보니 실수가 생깁니다. 아마도 30년 넘은 회사 생활로 몸에 밴 효율성과 빨리빨리 하는 습관이 몸에 배서 그랬을 겁니다.”

그렇게 6개월을 매달린 끝에 본체가 만들어졌다. 한달 동안 바니시(외부 칠) 작업과 튜닝까지 마치고 7개월만에 바이올린을 완성했다. 전문가라면 두세달이 걸리는 작업이다. “아, 그날의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공방에 오셨던 연주자 한 분이 제가 만든 악기를 연주해보시고는, 소리가 괜찮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던 기억이 납니다.”

● 은퇴와 코로나19의 공포를 이겨내다

2016년 그는 기아차 인도 법인 런칭을 위해 다시 해외근무에 나서게 됐다.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상황에서도 작업 노트를 다시 읽고, 바이올린 헤드와 넥을 가끔씩 깎고 다듬으며 손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3년 동안 인도에서 성공적으로 신차 판매 법인을 런칭시킨 뒤 2019년 그는 드디어 은퇴를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다 갑자기 은퇴하니 공허함이 찾아왔다. 서초동 악기 공방 마에스트로에게 다시 찾아갔다. 마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라 갈 곳도 없어 매일 6시간씩 도시락을 먹어가며 악기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이번에는 아들을 위해 첼로를 만들었다. 캐나다 근무시절 아들이 중학교 때부터 첼로를 배웠는데, 당시 낙원상가에서 120만원을 주고 학생용 악기를 사줬다. 고등학교 오케스트라 연주회 때 악기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자 첼로 전공인 지휘 선생님이 자신의 악기를 빌려주곤 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아내에게서 들었다.

“좀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좋은 첼로를 하나 사줬으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들은 음악을 포기했지만, 취미로 연주를 계속하도록 수제 첼로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그는 스트라디바리와 같은 시대에 베니스에서 활동했던 장인이 만든 ‘몬타냐나’ 첼로를 만들었다. 매일 6시간씩 10개월간 매달린 끝에 첼로가 완성됐다. 은퇴 첫해의 공허함과 코비드 공포를 이겨낸 것이다. 이후로도 몇 해 동안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등 현악기 6대를 만들었다. 7∼8대를 만들면 제작학교도 졸업한다는데 엄청난 집중의 시간이었다.

● 현악기의 경제학

김 씨가 조각칼로 바이올린 헤드를 깎고 있는 모습.

김 씨가 조각칼로 바이올린 헤드를 깎고 있는 모습.
“바이올린의 뒷판과 옆판은 알프스산 단풍나무로 단단하게 받쳐줍니다. 앞판(윗판)은 울림을 전달해 F홀로 소리가 나오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진동을 잘 전달하는 알프스산 가문비나무를 씁니다.”

국내에서 현악기를 제작할 때도 나무는 주로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입한다. 수입 나무는 10년, 20년, 30년 등 말린 햇수에 따라 값도 천차만별이다. 그는 “오래 말린 나무를 쓰게되면 새 악기라도 소리가 더욱 풍성하게 난다”고 말했다.

나무와 부품값 등 바이올린 제작에 필요한 순수 재료비는 100만원 정도, 첼로는 200만원 이상이 든다. 그가 만든 1·2호 바이올린은 재료비만 150만원 가량이 들었다. 이렇게 만든 악기의 가격은 300∼500만원 대에 팔린다. 2∼3개월 제작기간에 들어간 수공 인건비가 최저임금으로만 따져도 300만원 대 이상이니 경제성을 따지긴 어렵다.

현재 공장에서 찍어내는 바이올린은 10만원 이하, 여러명이 부위별로 나눠 만드는 분업제 생산악기는 20∼40만원 가량에 살 수 있다. 그러나 마에스트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드는 100% 수제악기는 1000만원대 이상 가격으로 팔리기도 한다.

아파트 방 한칸을 작업실로 이용해왔던 그는 올해 초 경기도 이천으로 이사해 월세 50만원짜리 작업실을 구했다.

“1년에 바이올린 2∼3대나 첼로 한대만 만든다고 생각하면 크게 비용이 들어가지는 않아요. 처음 배우고 도구를 사는 비용을 제하면, 한달에 재료비 평균 20만원 쓰는 취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손을 움직이고, 나무의 촉감을 느끼는 것은 정서적으로도, 치매예방을 위한 뇌건강에도 좋은 활동입니다.”

그러나 국내 악기 제작자들에게 시장 비즈니스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학생부터 연주자까지 대체로 유럽 악기를 찾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미국, 대만에서는 자국 제작자 악기도 잘 사용하는데, 한국에서는 유럽산 악기만 선호한다.

“실제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우리 제작자들이 만든 악기들이 음색이 좋게 나오는 경우가 많대요. 한국의 학생들이나 직장인 연주자들이 국내 수제악기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하고, 한국의 제작자들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는 소식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는 계속 꿈을 꾼다. 이탈리아·프랑스·폴란드·독일·미국 등에서 열리는 여러 악기 콩쿠르에 출품할 계획이다. 또한 기회가 되면 1년 정도 이탈리아 크레모나에 유학해 복원수리를 배워서 고악기도 살려보고자 하는 생각도 있다. 그는 “수제악기는 연주를 통해 숙성시키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만든 악기를 대여하는 길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은퇴 후에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에 대한 안내서 ‘은퇴, 이제 나답게 놀자!‘(생각나눔)’를 펴냈다. “은퇴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취미활동도 직장 다닐 때 일찍 준비하는 게 좋죠. 60살에 은퇴해 20∼30년 동안 계속할 취미를 위해 2∼3년 정도 배움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아깝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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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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