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감무소식 미술품 물납제…'이 것' 있어야 '이건희 컬렉션' 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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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술품 물납 제도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반입된 쩡판즈의 작품 '초상'. 문체부 제공

지난해 미술품 물납 제도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반입된 쩡판즈의 작품 '초상'. 문체부 제공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납하는 미술품 물납제도 활성화를 위해 납부가능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건희 컬렉션’처럼 예술적 가치가 큰 작품을 대중이 향유할 수 있도록 돕고, 징세를 통해 단순히 국가재정 확보뿐 아니라 문화예술 발전까지 도모하는 제도 취지를 살리려면 과감하게 규제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품 경매사 서울옥션 법무팀장인 황원정 변호사는 지난 3일 서울 중학동 아트코리아랩에서 열린 ‘미술품 물납 및 기증 활성화 방안’ 세미나에서 “물납제 취지를 고려해 그 범위를 적어도 전체 상속세액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상속세뿐 아니라 기타 세액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상속 재산 중 미술품에 부과된 상속세에 한해서만 미술품 물납이 가능하다. 또 물납 의사가 있어도 현금이나 주식 등 금융재산으로 상속세를 우선 납부해야 한다. 황 변호사는 “영국이나 네덜란드는 상속세 전반에, 프랑스는 상속세가 아닌 다른 세금도 미술품으로 대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간 미술계와 세무 전문가 사이에선 까다로운 물납 조건이 제도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로 2023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으로 미술품 물납제가 도입되면서 지난해 1호 물납 사례가 나왔지만, 1년 넘게 추가 신청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날 세미나를 연 것도 물납제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이런 정부의 규제에는 미술품으로 세금을 갈음하는 게 일종의 ‘부자 감세’라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또 금전납부가 원칙인 조세 성격을 고려하면 미술품 물납제 확대가 국가재정 확보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현행 ‘국유재산법’에 따르면 미술품은 부동산이나 유가증권과 달리 ‘국유재산’이 아닌 ‘물품’으로 관리되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공익적 가치가 큰 미술품 물납제를 부자 감세로만 볼 수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담세 능력이 부족한 미술품 상속자가 제도 실수요층이라 단순히 조세 회피나 감세로 볼 수 없다는 것. 무엇보다 대표적인 국립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연간 소장품 구입 예산이 50억 원 수준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이건희 컬렉션’처럼 적게는 수 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십 억원짜리 작품이 국가에 귀속되는 물납제는 수집 예산 확대 없이도 공공 미술 컬렉션을 확보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평가된다.

이날 세미나에선 물납 조건 완화 외에도 미술품 물납제 활성화에 필요한 대안이 제시됐다. 김선규 한미회계법인 부회장은 “상속 개시가 되면 미술품 가치를 산정해야 하는데,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같은 작품들은 단시간 내에 제대로 감정하기 어렵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미술품 물납 관련 컨설팅 비용을 마련해주면 어느정도 얼개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황 변호사도 “거래 기록이 없는 작품은 감정가를 모르고, 세금이 얼마나 부과될지 예측이 어렵다 보니 상속세 부담으로 작품을 폐기하는 상황도 발생한다”면서 “소장자가 생전에 물납 의사를 밝히고 희망 작품 리스트를 제출하면 감정가 등 물납 여부를 안내받을 수 있는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황승흠 국민대 교수는 물납제 활성화와 국가 관리체계 효율성 제고를 위한 ‘국가미술품등록제’를 제안했다. 황 교수는 “현재로선 법적으로 국가가 미술품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없어 물납제가 활성화돼도 문제”라며 미술품을 물품으로 규정하는 ‘국유재산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프랑스처럼 미술품을 국유재산으로 관리하고, ‘미술진흥법’ 개정을 통해 문체부가 위원회를 운영해 국가등록미술품 감정 등 심사를 맡으면 책임소재가 명확해지고, 미술품 활용 계획도 일목요연하게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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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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