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이리 왜 이리 어려운 건지~"
커다란 링 귀걸이를 착용하고 고글을 머리 위에 얹은 박지현, 칼 단발을 찰랑거리며 춤추는 강동원, 모자를 거꾸로 쓰고 '호통랩'을 내뱉는 엄태구. 영화 '와일드씽' 속 혼성그룹 트라이앵글로 뭉친 세 사람의 시너지는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배경은 2000년대 초반. 극 중 트라이앵글은 '러브 이즈(Love is)' 단 한 곡으로 가요계를 평정한다. '러브 이즈'는 투박하고 정직한 힙합 비트로 시작해 쉽게 귀에 꽂히는 친숙한 멜로디로 진행된다. 후렴은 한 번만 들어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멜로디가 명확하다. 여기에 "컴 온 나우", "왓츠 업", "트라이앵글스 인 더 하우스" 등의 고전 랩, 여성 메인 보컬의 싱잉랩까지 더해져 80~90년대생들의 향수를 제대로 자극했다.
이 곡은 심은지 작곡가가 단독 작사·작곡·편곡해 자연스러운 하나의 흐름을 타고 완성도 있게 만들어졌다.
◆ "극 중 '1위 곡' 설정 납득될 좋은 곡 만들었어야"
심 작곡가는 연세대학교 작곡가 02학번 동기였던 '와일드씽' 이진희 음악감독과의 인연으로 이번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한경닷컴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는 "업계가 달라 그동안은 접점이 없었다. 동기의 반가운 제안이었고, 무엇보다 강동원·엄태구·박지현 세 분이 3인조 혼성 그룹이 된다는 게 너무 '신박'하고 재미있겠다 싶어서 바로 작업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백아연 '이럴 거면 그러지말지', 트와이스 '예스 오어 예스(YES or YES)', 아이유 '에필로그' 등 그간 다수의 곡을 만들어왔지만, 영화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작업은 처음이었다.
심 작곡가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 손재곤 감독님, 이진희 음악감독님과 여러 차례 미팅하면서 곡이 어떤 장면에서 사용되는지, 그 장면이 영화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어떤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이번 곡은 단순한 OST가 아니라 음악영화의 주제곡이기도 했기 때문에 충족해야 할 조건이 분명했다. 감독님은 '한 번만 들어도 꽂히는 곡 이어야 한다', '극 중 1위 곡이라는 설정이 납득될 만큼 좋은 곡 이어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말했다"고 전했다.
강동원, 엄태구의 출연이 확정된 상태에서 미팅을 시작해 배우들의 목소리 톤을 고려하며 곡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배우들이 노래방에서 녹음한 음원도 받아서 들어보며 이들에게 한층 어울리는 맞춤형 곡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이는 곧 폭발적인 호응으로 이어졌다.
구체적인 곡 빌드업 과정에 관해 묻자 심 작곡가는 "최근 K팝은 아이디어 싸움이라면, 2000년대 초반 음악은 멜로디 자체가 직관적이고 그 자체로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번 들어도 그냥 좋은 노래, 그 와중에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련함 한 스푼 정도 추가를 생각하며 썼다"고 답했다.
작업을 하면서는 약 26년 전인 본인의 중학생 시절 감성을 떠올렸다고 했다. 당시 디바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면서 앨범 프로듀서로 활약했던 양창익 작곡가(브라운아이즈 윤건)의 팬이었다고 했다. 심 작곡가는 "특유의 예쁘면서도 아련한 멜로디, 코드 진행, 그리고 세련된 편곡이 정말 좋았다. 또 채리나 님의 앙칼진 랩도 인상적이라 많이 따라 부르곤 했는데, 박지현 배우의 프리코러스 랩이 그런 감각을 참고해서 만든 부분"이라고 밝혔다.
'러브 이즈'의 가사와 관련해서는 "아주 특이한 테마가 필요하다기보다는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범용의 가사가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제목부터 '러브 이즈'로 설정하고 뻔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주제인 사랑으로 잡았다. 영어도 최소화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글 가사를 많이 채워 넣었다"고 설명했다.
심 작곡가는 "평소 앨범이 나올 때보다 훨씬 많은 연락을 받고 있어서 영화의 힘과 음악의 힘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제가 84년생인데 또래분들에게 '곡 너무 좋다'는 연락을 여기저기서 받다 보니까 다들 그 시절 음악에 대한 어떤 갈증 같은 게 있었구나 싶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적인 멜로디와 가사를 좋아해 주신 것 같다. 요즘 K팝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다 보니 영어 가사가 많아질 수밖에 없고, 음악적인 감성도 예전의 '가요'보다는 '팝'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반면 '러브 이즈'는 조금 더 과거 가요가 가지고 있던 코드 기반의 음악에 예쁘고 쉬운 멜로디와 한글 가사로 그 정서를 담으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 "강동원, 인간 복사기 수준·엄태구는 JYP 자주 드나들어"
배우들의 적극적인 태도는 시너지를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심 작곡가는 강동원을 떠올리며 "가이드 버전을 정말 꼼꼼하게 연구해서 연습해 왔다. 거의 인간 복사기처럼 완벽하게 준비해 왔다. 디렉팅 중에도 제가 놓친 부분이 있으면 '가이드에는 이렇게 되어 있어요!'라고 짚어 주실 정도였다"고 전했다.
박지현이 소화한 파트와 관련해서는 "옛날 스타일 랩이 자칫하면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어서 랩과 내레이션의 중간을 잘 타야 했다"면서 "제가 말하는 느낌이 뭔지 바로 이해해서 정말 자연스럽게 소화해 줬다. 가지고 계신 목소리 자체가 너무 상큼해 노래 파트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잘 표현해 줬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엄태구는 '모범생 그 자체'였다. 심 작곡가는 "JYP에 자주 드나들었고, 제 바로 옆방에서 레슨도 자주 받아서 녹음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고 했다. 녹음 당일 부스 밖에서 많이 걱정하던 그는 이내 준비해 온 걸 200% 다 쏟아냈다고. 심 작곡가는 "콘서트 버전 마지막 삑사리 아이디어도 직접 주더라. 라임을 치는 녹음은 처음이라 어렵다고 했는데, 막상 녹음 버튼이 눌리니까 원테이크로 끝내버려서 녹음실 밖에서도 다들 놀랐다"고 전했다.
덧붙여 심 작곡가는 멤버별 캐릭터 부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서 "강동원은 세 사람 중 가장 안정적으로 노래를 소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라는 점을 크게 의식해서 멜로디를 짜기보다는, 그 시절 남성 보컬 특유의 꾸밈없고 정직하고 청량한 청년의 느낌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지현은 극 중 캐릭터처럼 통통 튀고 발랄한 매력을 살리고 싶었다. 메인 보컬인만큼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았다. 프리코러스에서는 디바 스타일의 랩핑을, 코러스에서는 상큼한 보컬 파트를 배치해 두 가지 매력을 모두 담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엄태구에 대해서는 "작곡가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톤을 가진 목소리"라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호통랩'이 특히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런 방향의 트레이닝을 받아 보면 어떨지 제안했고, 실제 랩 파트도 그 매력이 잘 살아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극 중 캐릭터를 고려해 파트는 최소화했다"며 웃었다.
◆ "감이 다할 때까지 오래오래 곡 쓰고 싶어요"
심 작곡가는 어린 시절 당시 연세대 작곡과에 다니던 사촌오빠가 조성모의 '투 헤븐(To Heaven)'을 전혀 다른 코드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바꾼 코드가 어떻게 더 좋을 수 있지?"라는 생각은 피아노과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던 그에게 방향 전환을 일으켜 작곡과로 이끌었다.
심 작곡가는 JYP엔터테인먼트의 음악 프로듀싱 분야를 담당하는 JYP퍼블리싱 대표이기도 하다. 최근 역주행 인기를 얻은 있지 '댓츠 어 노노(THAT'S A NO NO)'도 심 작곡가의 작품이다. 작곡가이자 JYP퍼블리싱의 대표로 여러 작사·작곡가를 발굴하며 창작 일선에서 산업의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다.
심 작곡가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송캠프(작가진들이 한 곳에 모여 장기간 창작 작업에만 몰두하는 방식)를 위해 해외로 직접 나가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오히려 해외 작가들이 한국을 찾아오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제는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해외 유명 작가들이 한국에서 함께 작업할 만큼 K팝 시장 자체가 그들에게도 매력적인 시장이 됐다는 걸 가장 가까이에서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와 국내 작가들 간의 교류도 훨씬 활발해졌고, 그 과정에서 퍼블리싱이 조율해야 할 영역도 더 많아졌다. 단순히 곡을 연결해주는 수준을 넘어서, 늘어나는 포트폴리오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다양한 협업 구조 속에서 작가들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역할이 중요해졌다. 송캠프나 레이블, 기획사들과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처럼 작가 개인이 직접 처리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대신 조율해주는 역할도 커졌다. 지금의 퍼블리싱은 과거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고 부연했다.
심 작곡가는 "음악 산업은 음악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첫 페이지를 담당한다는 게 작곡가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변함없이 지키려는 원칙은 "좋은 멜로디는 살아남는다", "좋은 음악의 중심에는 결국 좋은 멜로디가 있다"라고 했다. 심 작곡가는 "2008년에 입봉했다. 그사이 정말 많은 장르와 트렌드가 바뀌었지만, 결국 핵심은 하나"라면서 "좋은 멜로디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고 포장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반응하는 음악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작가로서의 가장 큰 목표요? 제 감이 다할 때까지 오래오래 곡을 쓰는 거예요. 사실 작곡가라는 직업은 늘 불안과 함께하는 것 같아요. 매년 '올해가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이제는 더 이상 곡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실에 앉게 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제 음악을 찾아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늘 감사한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퍼블리싱도 지금보다 더 깊이 있고 넓게 성장시켜 나가고 싶어요.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고 함께 성장하는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처음에는 가능성만 보이던 친구들이 점점 자신의 색을 찾아가고,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뿌듯하거든요. 앞으로도 좋은 작가들을 더 많이 발굴하고 육성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싶습니다."
K컬처의 화려함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땀방울이 있습니다. 작은 글씨로 알알이 박힌 크레딧 속 이름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스포트라이트 밖의 이야기들. '크레딧&'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크레딧 너머의 세상을 연결(&)해 봅니다.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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