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를 꽃피운 찬란한 문화도시 피렌체. 중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주에 위치한 이 도시는 온갖 매력으로 가득 찬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이다. 건축과 미술 기행은 물론이고, 와인 및 미식을 테마로 한 여행도 가능하며, 그것들 모두가 일주일 이상이 필요할 정도로 보고 듣고, 또 즐길 거리가 넘쳐흐르는 곳이다. 그런데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붐비고 딱히 비수기도 없기 때문에, 머무는 내내 사람들에 치여 피로감만 호소하다 돌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럴 때는 마음을 고쳐먹고 한 박자 쉬어가도록 하자. 우선 피렌체를 휘감아 도는 아르노(Arno) 강가로 나가보자. 사실 이 도시는 오페라의 발상지이며, 이탈리아 최고 수준의 오페라하우스와 오케스트라가 있는 곳이다. 특히나 5월이면 시내 도처에서 만발하는 꽃향기와 함께 한없이 고혹적인 클래식 선율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곤 한다.
토스카나 서부의 작은 도시 루카(Lucca)에서 태어난 자코모 푸치니는 주세페 베르디의 뒤를 잇는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는 피렌체 출신의 대문호 단테의 <신곡>에서 소재를 취한 오페라 <잔니 스키키(Gianni Schicchi)>를 발표한다. 주인공 잔니 스키키는 법과 도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영악하고 대담한 만능 해결사다.
그는 피렌체 어느 부잣집의 유산상속 분쟁에 휘말려 유언장을 조작하는 일에 나서는데, 머뭇거리는 잔니 스키키의 등을 떠미는 것은 오히려 딸 라우레타이다.
“사랑하는 아빠,
남자친구와 빨리 결혼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포르타 로사 거리에 가서 반지도 살래요.
아빠가 이 결혼 허락 안 해 주면
나 베키오 다리 위에서 아르노 강으로 확 뛰어들고 말꺼야!”
이 노래가 바로 그 유명한 소프라노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O mio babbino caro)’이다. 물결치듯 유려하게 펼쳐지는 선율 위로는 지극히 타산적인 내용의 가사가 흘러 나온다. 현실적이지만 아름답고, 영악하지만 사랑스러운 아리아. 이런 복잡한 매력이야말로 우리가 피렌체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이유 아닐까.
[오페라 <잔니 스키키> 中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피렌체 최고의 카페로 이름난 질리(Gilli)에 앉아 앞에 펼쳐진 광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하늘은 높고 살랑이는 봄바람에 실려 온 공기는 너무도 달콤하다. 굳이 오페라하우스를 찾지 않아도 좋다. 꼭 콘서트 홀에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짙은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켜놓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푸치니를 들어도 충분하다.
결국 라우레타는 아버지 잔니 스키키의 맹활약으로 거액의 결혼지참금을 마련한다. 남자친구 리누치오의 손을 붙잡고는 피렌체 교외의 피에졸레 언덕으로 올라간다. 행복에 젖은 두 사람 앞에 황혼녘의 피렌체 풍경이 아른거린다. 리누치오가 연인을 바라보며 노래한다.
“내 사랑 라우레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어.
저길 봐. 피에졸레는 아름답고 피렌체는 황금빛이야!”
푸치니의 음악은 피렌체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꿈’이다. 그 선율에 스며든 황금빛 황홀함과 만나는 순간, 우리의 피렌체 여행은 가장 완벽한 감동에 휩싸이게 된다.
황지원 오페라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