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넘어가기 한 달 전에도 '전세 계약'…피해자는 발만 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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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방이동 디벨라지오 21가구, 50억 전세 사기
임대인 엘케이비건축, 수협은행에 이자 못 갚아
세입자들, 엘케이비건축 관계자 '사기죄'로 고소
일부 임차인만 '전세 사기 피해자'로 구제 받아

  • 등록 2025-05-15 오전 5:00:00

    수정 2025-05-15 오전 5:00:00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40대 김 모 씨는 작년 11월 초, 서울 송파구 방이동 나홀로 아파트 ‘디벨라지오’를 보증금 3억원, 월세 70만원에 임차하는 조건으로 시행사 엘케이비건축과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당초 잔금을 12월 말 치를 예정이었으나 엘케이비건축에서 11월 말 잔금을 치르고 입주하면 월세를 일부 면제해주겠다고 제안해 11월 말 잔금을 내고 입주했다. 그런데 김 씨가 입주한 지 한 달도 안 된 12월 18일, 김 씨 아파트를 비롯해 디벨라지오 21가구가 한꺼번에 경매로 넘어갔다. 디벨라지오는 엘케이비건축이 2023년 9월 준공한 아파트로 7층, 24가구로 구성돼 있다. 이중 3가구만 분양됐고 나머지는 미분양 상태로 엘케이비건축을 임대인으로 임대차 계약이 체결됐다. 세입자들은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일부는 국토교통부의 전세 사기 피해자로 구제됐으나 일부는 구제되지 못하면서 피해자 구제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건은 엘케이비건축이 전세 사기로 볼 만큼 세입자를 기만할 의도가 있었는지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디벨라지오(출처: 네이버부동산 거리뷰)
◇ “월세 일부 안 받을 테니 한 달 만 일찍 잔금 치르세요”

디벨라지오 21가구 중 6가구 세입자는 3월 엘케이비건축 관계자들을 사기죄 혐의로 고소했다. 21가구가 총 47억 9000만원의 보증금 사기 피해를 봤다는 게 세입자들의 주장이다.

엘케이비건축은 디벨라지오 건설 사업을 시행하면서 수협은행에 277억 2000만원의 빚을 졌는데 작년 12월 만기 때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갚지 못했고, 해당 부실채권이 키움F&I로 매각됐다. 키움F&I는 즉각 디벨라지오를 경매로 넘겼다.

세입자들은 엘케이비건축이 디벨라지오가 경매로 나오기 한 달 전인 작년 11월에도 임대차 계약을 맺었는데 경매 사실을 알고도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한다. 이뿐 아니라 엘케이비건축이 2023년 12월부터 작년 11월까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1~2개 가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구가 분양됐다는 가짜 서류를 세입자에게 제시했고, 공동담보를 해지하겠다는 거짓 약속을 했다는 게 세입자들의 설명이다.

김 씨는 “엘케이비건축에선 이미 분양된 다른 가구의 등기부등본을 보여주면서 공동담보 근저당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며 “선순위 근저당권(수협은행 채권)을 전액 상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마치 있는 것처럼 기만했다”고 밝혔다. 이어 “작년 12월 18일 임의 경매가 결정됐음에도 이를 고지하지 않아 올 1월 중순에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당시 엘케이비건축은 디벨라지오의 분양 성과에 따라 회사 존폐가 결정될 만큼 위기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엘케이비건축의 2023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감사인인 대교회계법인은 “엘케이비건축의 계속기업으로서 존속 여부는 자금 조달·운영 등 자구 계획 및 방이동 211-7 공동주택(디벨라지오), 썬힐랜드 추모공원 사업의 분양 성패에 따라 좌우되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며 ‘한정’ 감사의견을 냈다. 2024년 감사보고서는 재무제표도 미공시하는 등 감사 ‘의견 거절’을 받았다. 엘케이비건축은 2022년부터 자본잠식 상태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비슷한 시기 임대차 계약인데도 피해 구제는 제각각

세입자들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임에도 국토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여부에 대한 판단은 제각각이다. 세입자들에 따르면 일부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결정됐으나 일부는 ‘임대인이 임대차보증금 반환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일부 세입자는 이의신청을 한 상태다.

국토부 관계자는 “같은 건물, 같은 임대인, 비슷한 시기의 계약이라도 세입자별 계약 내용에 따라 피해자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며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30일 이내 이의신청, 재신청 등을 제한 없이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세 사기는 형법상 사기보다 넓은 범위에서 세입자를 기만한 의도가 있었는지를 살펴본다”고 덧붙였다.

세입자들은 전세보증보험에도 가입하기 어려웠던 상황이다. 전세보증금과 선순위 채권을 합한 금액이 주택 가격의 90% 이내여야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데 디벨라지오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았다. 신축으로 시가가 없는 상황인데 24가구의 합산 공시가격은 165만 3600만원(2024년 기준)으로 시가가 공시가격보다 20% 더 비싸다고 해도 200억원 수준으로 선순위 채권(277억 2000만원)보다 적다. 또 다른 세입자는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안 될 경우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특약에 넣었지만 해당 특약이 전세보증금을 지켜주진 못했다.

엘케이비건축은 디벨라지오가 경매로 넘어갈 줄은 몰랐기 때문에 전세 사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엘케이비건축 관계자는 “(임대차 계약 당시) 경매로 넘어갈 것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며 “12월 만기때 세입자들에게 받을 보증금 잔금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일부 빚 상환이 안 됐는데 어떤 협의도 없이 바로 경매로 넘어가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세입자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한다”며 “1가구라도 채권자가 원하는 가격에 매매가 이뤄진다면 이를 경매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등 채권자와 협의해 정상화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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