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자 1997년 외환위기의 기억이 다시 소환됐다. 지금 한국 경제는 정말 그때만큼 위험한가. '경제실]록' 첫 회는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과장으로 위기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썼던 변양호 VIG파트너스 고문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관료로서 위기의 한복판에 있었고, 이후 보고펀드를 세워 민간의 눈으로 한국 경제를 다시 관찰했다. 2003년 외환은행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매각할 때 금융정책국장으로서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훗날 '헐값 매각' 논란에 휘말려 구속과 장기간의 재판을 겪었고 2010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 이 사건 이후 공무원들이 사후 책임을 우려해 민감한 결정을 피하는 현상을 일컫는 '변양호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1997년 위기의 구조와 2026년 한국 경제의 위험을 살펴본다.
"1997년을 생각하면 내가 썼던 보고서가 먼저 떠오른다."
변 고문은 자신이 과장 시절 썼던 보고서 얘기부터 꺼냈다. 그가 1997년에 썼던 보고서는 총 3편. 첫 번째 보고서 제목은 'Baht貨와 기아: 상이한 문제인가?'였다. 바트화는 태국의 통화다. 기아는 1990년대 당시 '국민기업'으로 불리던 자동차 제조 회사였다.
1997년 우리 경제 충격은 바트화에서부터 왔다. 태국은 당시 바트화를 달러에 묶어두는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태국 경제는 부동산 거품, 과도한 단기 외채, 금융기관 부실, 경상수지 적자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러자 외국 투자자들은 "태국 정부가 더 이상 바트화 가치를 방어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바트화를 공격적으로 팔기 시작했다. 태국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을 써서 바트화를 방어했지만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1997년 7월 2일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전환한다. 이후 바트화 가치는 폭락했고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달러 부채를 갚기 어려워지면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 폭풍전야에 美연준 보고서 입수
1997년 7월 한국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1997년 초부터 한보·삼미·진로·대농 등 대기업들이 잇달아 무너졌고 급기야 국민기업으로 불리던 기아까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그때 골드만삭스 홍콩지점에서 근무하는 김 모 애널리스트를 만났다. 그가 준 보고서가 충격적이었다."
변 고문은 김 애널리스트로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에서 나온 보고서를 받았다. 당시 미국 연준에서 근무하던 그라시엘라 L 카민스키와 카르멘 M 라인하트 박사가 쓴 '쌍둥이 위기: 은행 위기와 국제수지 위기의 원인'이라는 제목의 논문이었다. 변 고문은 "그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한국의 상황이 오버랩됐다"고 말했다.
연준 보고서의 내용은 직관적이면서도 명확했다.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금융 자유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나라가 금융위기와 외환위기를 겪었다. 통화 위기는 한 나라의 환율이 갑자기 폭등하거나 외환보유액이 바닥나는 걸 말하고, 금융위기는 한 국가 내에서 부실채권이 많이 쌓여 금융 시스템이 악영향을 받는 것을 얘기한다. 연준 보고서의 핵심은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는 비교적 강한 반면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이 금융위기를 설명하는 인과관계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이다. 은행 문제가 먼저 나타나고, 통화 위기가 터지면 다시 은행 위기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당시 대기업 부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금융 시스템의 문제가 심화하고 있을 시기였다. 연준의 결론을 적용하면 한국의 금융위기가 외환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얘기다. 변 고문은 "하루빨리 보고서를 써서 이 내용을 정부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보고서가 완성된 시점은 7월 22일. 연준 보고서를 받은 지 보름도 안돼서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적시한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 외환위기를 경고한 3편의 변양호 보고서
변 고문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대기업들의 잇단 부도로 사실상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봤다. 태국은 외환위기가 발생했는데 우리나라와 상황이 같은지 다른 건지를 살펴보는 것이 핵심이었다. 결론은 한국의 경우 현재의 금융위기가 통화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훗날 여러 사람이 외환위기를 사전에 예고했다고 말하지만 실물이 있는 공식 보고서는 매우 드물다. 변 고문의 보고서가 그중 하나다.
금융위기가 통화 위기로 번지는 메커니즘은 이렇다. 기업들의 부도로 은행 등 금융회사 부실채권이 많아지면 금융권은 신뢰를 잃게 된다. 그리고 경제 시스템 전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면 외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돈을 빼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금융위기는 통화 위기로 이어진다. 지금 보면 단순한 메커니즘 같아 보인다. 그런데 1997년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당시 연구기관이나 정부 보고서들은 '태국 바트화 문제가 생겼더라도 우리나라는 태국하고 경제 펀더멘털이 달라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연준 보고서는 이런 단순 논리와는 달랐다.
1997년 기아그룹이 무너진 이후에도 우리 경제는 계속 수렁으로 굴러 들어갔다. 변 고문은 1997년 9월 "강도 높은 금융개혁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두 번째 보고서를 냈다. 또 1997년 9월 15일부터 22일까지 뉴욕·워싱턴 출장을 다녀온 뒤에는 세 번째 보고서를 냈다.
변 고문은 "세 번째 보고서를 쓰고 나서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한층 강해졌다"고 말했다. 세 번에 걸쳐 외환위기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냈고 이를 재경원 보고라인을 통해 올렸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
◆ 외국 투자회사가 한국에서 돈 빼내는 방법
외국 투자회사들은 우리나라 경제위기 국면에서 어떻게 움직였을까. 변 고문은 1997년 9월 미국에 가서 투자자들을 만났을 때 들었던 얘기도 들려줬다. 외국인들은 당시 "너희 나라는 단기 외채가 너무 많다"며 "우리는 한국에서 돈을 빼기로 결정했다. 내부적으로 이사회 결의까지 한 곳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부적으로는 이런 결정을 내렸지만 외국 투자기관들은 한꺼번에 돈을 빼지 않는다. 당시 미국 모건스탠리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한꺼번에 돈을 뺄 수는 없다. 한국은 달러가 없지 않냐"고 말했다. 달러가 없으니 한꺼번에 돈을 빼면 한국은 줄 달러가 없고 결국 부도가 날 텐데 그럼 자기네들도 손해라는 얘기다.
그럼 그들은 어떻게 돈을 빼갈까. 방식은 이랬다. 예를 들어 모건스탠리가 100억달러를 1년 만기로 한국에 빌려주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들은 만기가 돌아오면 50억달러는 상환을 요구하고 나머지 50억달러는 연장해주되 그 만기를 6개월로 제한한다. 그리고 6개월 후 만기가 돌아오면 50억달러 중 25억달러는 상환받고 나머지 25억달러의 만기는 3개월로 줄인다. 돈을 빼기로 결정한 이후에도 투자회사들은 이행을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그들은 신흥국에 투자한 경험이 많아 어떻게 돈을 빼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있었다.
변 고문은 "그때 우리나라에서 달러가 시간을 두고 다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조만간 달러 부족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 경제위기를 부른 두 가지 요인
1997년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위기 요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기업들이 경영을 잘못해서 부채가 너무 많아진 것, 즉 차입 경영의 문제다. 두 번째는 정부가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해외 차입을 과도하게 허용해줬다는 점이다. 특히 단기 자금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인가를 내준 단자사들에 종합금융업을 할 수 있도록 면허를 준 것이 금융시장을 혼탁하게 만들었다. 단자사는 단기 어음 및 채무 증서의 발행, 어음의 할인과 매매, 보증 등의 일을 하는 회사를 말한다. 종금사로 전환한 단자사들은 단기로 외채를 많이 유치하고 그걸 장기로 기업에 빌려줬다. 하지만 부실기업들이 돈을 갚지 못하자 금융 시스템 위기로까지 번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외환까지 흔들릴 가능성이 컸던 이유가 있었다. 금융 시스템이 부실한 데다 단기 외채까지 많았다. 단기 외채에 미스매치(만기 불일치)가 생기니까 외환위기가 안 생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97년 12월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선거를 앞둔 정부의 관심은 온통 선거에 집중된다. 강경식 당시 재정경제원 장관(부총리)은 전국을 돌며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튼튼하다"는 강연을 하고 다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위기 징후를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선거를 앞둔 정부는 위기를 인정하기보다 성과를 강조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1997년에도 그런 정치적 시간표가 정책 대응을 늦춘 요인 중 하나였다.
◆ 1997년과 2026년 얼마나 다를까
2026년 상황도 과거를 통해 반추해볼 수 있다. 1500원이 넘는 원·달러 환율 수준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일종의 외환위기 국면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연준 보고서 주장처럼 통상 외환위기가 금융위기로 발전할 인과성은 낮다. 실제로 2026년 한국 금융권은 1997년처럼 당장 외화부채 만기 불일치와 금융회사 부실이 동시에 폭발하는 구조는 아니다. 국내 은행의 자본 비율은 규제 수준을 크게 웃돌고, 부실채권 비율도 시스템 위기로 직결될 수준은 아니다. 2026년 한국은 고환율이라는 부담은 크지만, 1997년처럼 금융권 부실과 단기 외채 만기 불일치가 동시에 폭발하던 상황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한국 경제가 안전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금융 시스템 붕괴를 이끌 만큼의 상황은 아니지만 고환율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 이를 막기 위한 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경기 위축 등의 악순환 경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금융권 부실채권 비율이 최근 상승하고 있고, 고환율이 물가·금리·취약차주 부담을 키우는 경로는 진행 중이다.
변양호 고문은… △1954년 서울생 △1976년 행정고시 합격 △1977년 서울대 무역학 과 △1985년 노던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 △1995~1998년 재정경제원 과장 △1999~2004년 재정경제부 국장 △2004년 재경부 금융정보분석원장 △2005년 보고인베스트먼트 설립 △2016년 VIG파트너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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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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