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의 국토교통부 정기감사 과정에서 기획재정부가 유탄을 맞았다. 도로·철도 등 공공공사 입찰 과정에서 유찰이 잇따라 공사 기간이 최대 22개월 지연되고 공사비가 9000여억원을 증가한 사실이 발견돼 감사한 결과 제도 개선을 게을리한 기획재정부가 주범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19일 감사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토교통부 기관정기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토부가 발주한 공공공사 가운데 기술형 입찰의 경우 최근 3년간 47%가 유찰된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가 빠르게 상승하는 가운데 예비타당성조사(예타)·기본계획 단계에서 산정된 ‘추정공사비’ 기준으로 공사를 발주하는 탓에 적자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정부는 1975년부터 창의적 기술 도입과 공기 단축 등의 장점이 있는 기술형 입찰제도를 운영해왔다. 최근 5년 사이 공공공사 가운데 발주 금액 기준으로 51%(48조원)를 차지했다. 그러나 건설업계 등에선 "예타 과정에서 사업성을 높이려고 공사비를 낮게 산정한다"며 "이를 기준으로 산정된 공사비로 수주하면 적자가 날 가능성이 높다"며 입찰을 꺼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이 조사한 결과 업계의 주장은 사실로 드러났다. 남부내륙철도 건설사업의 경우 예타·기본계획 단계 추정 공사비가 유찰 후 새로 산정된 설계 공사비(예타 이후 물가상승분 제외)에 비해 각각 65.1% 및 36.8% 낮았다. 예타 때 나온 공사비를 기준으로 수주하면 비용을 두 배 이상의 쓰게 된다는 얘기다. 제2경춘국도 등 3개 일반도로 건설 사업의 경우에도 비슷하게(평균 각각 39.6%와 30.4%) 낮은 비현실적 입찰가가 제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는 작년 3월 기술형 입찰 사업의 유찰을 막기 위해 입찰제도 합리화·유연화 등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최초 예산(총사업비)이 수립되는 예타 단계와 기본 계획단계에서 적정 공사비 산정을 위한 대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예타 등은 기재부가 관할하기 때문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기재부는 2021년 '예비타당성조사 수행 세부지침' 을 개정하며 일반 철도 노반(토공·교량·터널) 및 일반도로 교량·터널 등 공종의 예타 단가(기준연도 2019년)를 산정할 때 개정된 국가계약법령 사항을 고려하지 않고 2015년 예타 단가(기준연도 2013년)에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에 의한 물가상승분만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철도 노반과 일반도로 배수공 등 공종에 대한 '2019 기준연도 예타 단가'는 2013 기준에 물가상승분 11.6%(6년간)만 반영되었고 개정된 국가계약법령 사항이 반영되지 않았고, 지난해 7월 감사일 현재까지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간접공사비를 산정할 때 적용하는 간접노무비, 건강보험료, 산업안전보건관리비 등 요율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는 2021년 예비타당성조사 수행 세부지침을 개정해 '2021년 예타 단가'(기준연도 2019년)를 산정할 때 일반철도 노반(토공·교량· 터널) 및 일반도로 교량·터널 등 공종의 2015년 예타 단가(기준연도 2013년)에 물가상승분만 적용해 산정함으로써 다양한 간접공사비 요율 변동사항이 반영되지 않았고 2024년 7월 감사일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기재부 장관에게 '국토부와 협의해 도로·철도건설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단계에서 추정하는 공사비가 실제 설계 공사비와 큰 차이가 발생하지 않게 물가상승분 외 개정된 국가계약법령 및 설계기준 등이 추정 공사비에 반영될 수 있도록 단가를 조정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