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삼세판의 약속
우리는 어릴 때부터 ‘삼세판’이라는 말을 배운다. 가위바위보도 삼세판, 한 번 졌다고 순순히 물러서는 법이 없다. 무슨 일이든 세 번은 해봐야 한다는 정서다. 우리 사법제도에도 이 삼세판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이름하여 3심제. 억울한 일을 당하면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 세 번의 법원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국가의 약속이다. 한 번의 오심이 있더라도 나머지로 바로잡으라는, 꽤 든든한 안전망이다.
그런데 이 약속에 조용히 예외가 있다. 하필이면 걸린 돈이 가장 큰 싸움에서 그렇다.
공정위가 어느 기업에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매겼다고 하자. 이 처분이 억울한 기업은 법원의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이 사건은 지방법원에는 갈 수 없다. 곧장 서울고등법원으로 직행한다. ‘전속관할’이라는 규칙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대법원. 여기서 끝이다.
세어보자. 이 사건이 거치는 법원은 서울고법과 대법원, 딱 두 곳뿐이다. 남들은 세 번 두드리는 법원 문을, 이 기업은 두 번밖에 두드리지 못한다. 그마저도 마지막 대법원은 사실관계는 다시 따지지 않고 법리만 보는 곳이다(법률심). 결국 ‘사실이 어떻게 됐는지’를 두고 제대로 다퉈 볼 법원은 서울고법 한 곳으로 쪼그라든다. 처음이자 마지막. 재수(再修)를 허용하지 않는 시험인 셈이다. 삼세판의 약속이, 여기서는 조용히 두 번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그럼 사라진 한 번은 어디로 갔느냐”고 물을 수 있다. 답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 사라진 첫 칸을, 법원이 아니라 공정위 자신이 채운다. 공정위는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이라 부르며 사실상 1심 법원 노릇을 한다. 문제는 그 1심의 심판대가, 바로 그 사건을 조사해 온 공정위 자신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오래된 그림 하나가 떠오른다. 옛날 고을의 원님 재판이다. 사또는 사건을 캐는 수사관이자, 곤장을 명하는 판관이었다. 고발도 그의 몫, 심문도 그의 몫, 판결도 그의 몫이다. 호통치는 상대와 판결하는 상대가 같은 사람이니, 관아의 마당에 꿇어앉은 자로서는 애초에 대등한 다툼은 성립하기 어렵다. 물론 오늘날의 공정위를 그 시절 사또와 나란히 놓는 것은 과한 비유일 것이다. 공정위는 제도상 심사관과 위원을 분리해 두었고, 나름의 절차적 외양도 갖추고 있다. 다만 ‘조사한 쪽과 판단하는 쪽이 결국 한 지붕 아래에 있다’는 그 구조의 뼈대만큼은, 원님 재판의 오래된 그림자를 어딘가 떠올리게 한다.
홈팀 심판과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유일한 첫 판단, 즉 공정위 심의가 법정만큼 대등한 구조로 이뤄지느냐를 따져 보면 사정은 더 딱해진다. 우리가 아는 법정을 떠올려 보자. 검사와 변호인이 판사 앞에서 좌우로 갈라 앉는다. 양쪽은 대등한 당사자로서 증인을 부르고, 상대 증인을 교차신문하며, 증거 하나하나의 진위를 저울에 단다. 판사는 그 다툼을 지켜보는 제3자다. 이 ‘대등한 당사자들 + 중립적 심판자’라는 삼각 구도야말로 재판을 재판답게 만드는 뼈대다.
공정위 심의에서도 이 삼각형이 온전할까. 물론 심사관과 피심인이 위원들 앞에서 구술로 공방을 벌이기는 한다. 그러나 심사관도, 심판자인 위원들도 같은 기관 소속이다. 원정팀 선수 홀로 남의 홈구장을 찾아와, 홈팀 심판 앞에서 홈팀 선수와 겨루는 그림에 가깝다.
공정위도 이 비대칭을 마냥 방치해 온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피심인의 방어권은 눈에 띄게 두터워졌다. 심사보고서에 대한 의견제출 기간이 늘었고, 위원들 앞에서 직접 설명할 기회도 확대됐으며, 증거자료의 열람·복사 요구권 역시 ‘원칙 비공개’에서 ‘원칙 공개’로 방향을 틀었다. 모두 진일보한 변화이고, 박수받을 만하다. 다만 심판대의 기울기 자체가 바로잡힌 것은 아니다. 여러 비대칭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공정위가 1심 법원 기능을 맡게 되니, 여기서 묘한 역설이 태어난다. 편의점에서 3만 원짜리 환불을 다투는 시민조차, 사실관계를 법원에서 두 번(지방법원과 고등법원) 따져 받는다. 반면 3000억원 과징금 앞에서 회사의 명운을 건 기업은, 정작 법원에서 사실을 단 한 번(서울고법) 따져보는 데 그친다. 걸린 돈에 0이 여럿 더 붙었는데, 다툴 무대는 되레 좁아지는 것이다. 상식과는 정반대다.
공정위도 물론 할 말이 있다. 경쟁법 사건은 시장획정이나 경제분석처럼 고난도 전문성이 요구되기에, 공정위가 1심 기능을 맡을 만하다는 논리다. 전문적인 집행 — 그 취지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다만 ‘전문성’과 ‘심급 한 칸 삭제’가 왜 꼭 한 묶음으로 팔려야 하는지는, 전혀 다른 물음이다. 전문성이 필요하다면 법원 안에 전문재판부를 두면 될 일이다. 커피를 주문했을 뿐인데, 원치 않는 디저트까지 계산서에 얹혀 나올 이유는 없다.
이웃 일본이 보여준 답안지
실제로 이웃 일본이 그 길을 택했다. 일본도 과거에는 우리처럼, 공정취인위원회의 내부 심판을 거친 뒤 고등법원에서 비로소 소송이 시작되는 구조였다. 그러던 것을 2013년 법을 고쳐 내부 심판제도를 폐지하고, 불복의 첫 재판을 도쿄지방법원으로 끌어내렸다. 소송의 출발점을 고등법원에서 지방법원으로 내린 것이다. 두 번뿐이던 법원 심급을 세 번으로 되돌린, 말하자면 잃어버렸던 삼세판을 되찾아 준 개혁이다.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한발 먼저 끝낸 나라의 답안지가, 이미 옆 나라에 펼쳐져 있다. 커닝이 허용되는 시험인데, 우리는 아직 곁눈질만 하고 있다.
오해는 마시길. 공정위가 수십 년 쌓아 온 전문성은 우리 시장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 글은 그 실력을 깎아내리자는 것이 아니라, 그 판단이 더 무겁게 대접받는 길을 찾자는 제안에 가깝다. 공정위 스스로 판단이 정확하다고 자신한다면, 오히려 법원 문을 하나 더 열어두는 편이 그 결론의 권위를 키운다. 대등한 자리에서, 다툴 만큼 다툰 뒤에 내려진 결론일수록 상대는 더 깨끗하게 승복하는 법이다. 승복은 강요가 아니라 절차에서 나온다.
삼세판은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큰 싸움일수록, 기회는 줄일 게 아니라 늘려야 한다.
[이창훈의 경쟁법인사이트]에서는 세종의 경영위원이자 공정거래그룹 팀장을 맡고 있는 이창훈 변호사가 경쟁법을 둘러싼 여러 법적 이슈들을 다룹니다. 국내외 중요 공정거래 사건들을 주도하면서 ‘상어(shark)’ 같은 집요함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한국경쟁법학회와 한국경쟁포럼 이사, 서울대 경쟁법센터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