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버젓이 있는데’…日 황실전범, 옛 황족 양자 허용

2 days ago 11

도쿄 왕궁에서 대화 중인 나루히토 일왕, 마사코 왕비(왼쪽), 아이코 공주. [AP=뉴시스]

도쿄 왕궁에서 대화 중인 나루히토 일왕, 마사코 왕비(왼쪽), 아이코 공주. [AP=뉴시스]
일본에서 왕위를 계승할 남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미 왕실에서 분리된 부계(父系) 혈통의 남성을 양자로 들일 수 있도록 한 ‘황실 전범’ 개정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여성 왕족의 왕위 승계 가능성은 논하지 않고 ‘부계 남성’의 전통을 유지하는 게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17일 일본의 왕위 계승을 규정하는 황실 전범 개정안이 일본 참의원(상원)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1947년 황실 축소 정책으로 황적을 이탈한 옛 황족 출신 중 부계(父系) 혈통의 남성을 양자로 받아들여 황실에 복귀시키는 내용이 담겼다.

현 황실 전범은 “황위는 부계의 남자가 계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 나루히토 천황에게는 외동딸 아이코 공주밖에 없어 규정에 따르면 계승자가 없다. 이번 개정 법안은 옛 왕족의 남성 후손을 양자로 들일 수 있게 하고, 그 양자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장차 왕위 계승 자격을 갖는다고 규정했다. 부계 계승 원칙은 유지하되 그 대상을 황실 밖으로 넓힌 것이다.

개정 법안을 적용받는 옛 황실 구성원은 ‘구 궁가(舊宮家)’라고 불리는 11개 가문이다. 이들은 현재 황실과 공통 조상을 찾으려면 약 6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 황실 구성원의 36~38촌에 해당하는 인물이 천황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일본 주요 언론들은 이번 황실 전범 개정이 민의에 맞지 않는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일본 최대 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은 ‘상징적 천황제의 근간에 상처를 입혔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전후 80년에 걸쳐 자라온 국민과 상징적 천황(일왕)의 유대를 무시하는, 너무 많은 결함을 안은 난폭한 제도 변경”이라고 비판했다.

아사히신문은 나루히토 일왕이 최근 내놓은 “국민의 이해를 얻는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는 발언을 인용하며 국민 70%가 여성 왕위 계승을 찬성하는 상황을 정치권이 무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7일(현지시간) 일본 황실전범 개정에 관한 언론 질의에 “모든 나라의 모든 지위와 직업에서 여성의 권리 향상으로 이어지는 포섭적인 정책을 장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실 전범 개정안에서 여성의 왕위 계승이 배제한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발언으로 풀이된다.앞서 2024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왕위 계승권을 남성에게만 인정하는 일본 황실전범이 여성차별철폐조약 이념과 양립하기 어렵다며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왕위에 오르는 자격은 기본적 인권에 포함되지 않아 여성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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