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원장요즘 아이들은 흙을 만질 기회가 거의 없다. 손에는 스마트폰이, 눈에는 빠르게 지나가는 자극적인 사진과 영상이 늘 먼저다. 일상이 화면 안으로 좁아지면서, 과학도 덩달아 멀어졌다. '어렵다'는 인식 속에서 연구실 너머의 과학은 여전히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 자원안보, 지진 대응처럼 삶을 직접 흔드는 문제들이 커질수록, 과학을 이해하는 일이 더 이상 전문가만의 영역으로 머물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과학문화 확산의 핵심은 '무엇을 알려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와닿느냐'에 있다. 영국, 호주의 과학 페스티벌은 도시 전체를 축제 무대로 만들고, 프랑스 라빌레트 과학관은 '손으로 하는 과학(Hands-on Science)'으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을 끌어왔다.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방식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과학문화는 아직 박물관과 전시 중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콘텐츠가 다양해졌다고는 하지만,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만 순환되다 팝콘처럼 사라지는 정보가 적지 않다. 지난 4월 3개 권역에서 열린 대한민국 과학축제가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진짜 과학은 화면 밖, 우리가 발 딛고 선 바로 그 현실의 공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 점에서 지질과학은 과학문화 확산의 가장 좋은 출발점이다. 수억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지층, 화산이 만들어낸 기암괴석,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광물 등 지질과학의 연구 대상은 박물관 유리 너머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밟고 서 있는 바로 이 땅이다.
땅을 밟고, 바람을 맞고, 돌을 쥐어보는 경험, 지질과학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발 아래 땅이 곧 연구실이고 교실이다. 별도의 장비나 실험실이 없어도, 누구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과학이다. 이러한 단순한 사실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담 없는 연구원'이다. 출연연구기관 최초로 이 원칙을 표방하며, 10여년 전부터 담벼락을 허물고 산책길을 통해 야외 전시장과 연구 시설을 국민에게 열어왔다.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연구원에서 한 달간 이어진 '제10회 KIGAM 지구사랑 미술대회'와 주중 및 주말 개방 행사 '지오 피크닉 데이(KIGAM Open Day)'에는 1000여명이 다녀갔다. 평소에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지진상황실과 광물 재활용 시설을 직접 둘러보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원과 진로 이야기를 나누며 지구과학을 즐겁게 체험하는 자리였다. 미래 과학자를 키우는 일이자,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사회적 메세나(Mecenat)의 실천이기도 했다.
최근 과학문화 확산에 디지털과 인공지능(AI)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지만, 그것이 이러한 현장 경험을 온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진정한 디지털 리터러시는 화면 안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드론으로 촬영한 지표면, 위성 데이터로 분석한 지각 변동, 증강현실(AR)로 구현한 지층 단면이 먼저 호기심의 불씨를 당기고, 아날로그적인 현장 체험이 그 감동을 완성한다. 디지털은 아이들을 화면 밖 현장으로 이끄는 도구로 쓰일 때, 비로소 그 진짜 가치를 배가한다.
AI가 시대정신이 된 지금, 미래에 어떤 과학기술과 직업이 유망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한 가지, 땅에서 시작하는 지질과학의 연구만큼은 계속되기를, 그 경계가 한반도 지하에서 깊은 바다, 달과 화성까지 끝없이 넓어지기를 소망한다. 그 바람을 위해 우리가 만들어 가는 개방과 소통의 노력은 과학을 일상에 더 가까이 두기 위한, 작지만 멈출 수 없는 걸음이다. 그 걸음 끝에, 흙냄새 나는 지구과학의 현장에서 미래의 달과 우주를 뛰어놀 꿈을 키우는 아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권이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원장 kyk@kiga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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