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곽도영]아메리칸 팩토리의 좌절,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1 week ago 7

곽도영 산업1부 기자

곽도영 산업1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은 결국 그의 집권 기반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향해 있다. 하지만 트럼프도 알면서 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제조업에 적합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호기롭게 자동차 부품 관세를 예고해 놓고는 14일(현지 시간)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생산되던 부품을 이곳에서 만들기 위해 (생산을) 전환하고 있다”며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고 한 수 접은 배경이다.

트럼프는 마치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래 친구든 적이든 미국의 제조업을 쏙쏙 빼가고 물건만 팔아왔다는 듯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다큐멘터리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2019년)에는 미국의 현실이 잘 드러난다. 오하이오주 GM 공장이 철수하고 오랫동안 비어 있던 자리에 중국 유리업체 푸야오 공장이 들어오지만, 다시 취업한 오하이오 노동자들은 높은 업무량과 생산성 요구를 맞추지 못하고 좌절한다.

기업명만 바꾸면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만 TSMC는 애리조나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지었지만 전문 인력의 부족으로 가동을 1년 이상 늦추는 진통을 겪었다. 미국에서 공장을 가동하는 국내 한 배터리 기업 관계자는 “현지 생산직 관리가 정말 어렵다. 퇴근 시간이 돼도 하던 일은 마무리하고 가는 우리와 달리 미국 노동자들은 몰던 지게차조차 그대로 그 자리에 세워 놓고 나가 버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진국이 경제 고도화와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푸야오 공장의 미국인들처럼 노동집약적 일자리를 기피하고 생산을 아웃소싱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시장의 법칙이다. 이 같은 흐름을 강제로 되돌리려 하면 할수록 애꿎은 국내 기업과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그리워하는 공장 일자리는 결국 현실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요한 건 이런 딜레마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미국이 10.5%로 추산된다. 한국은 24.3%, 중국은 26.2% 수준이다. 한국은 아직 주요국 중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에 속하지만 경제 성장에 따라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산업구조 변동을 겪고 있다. 기업들의 늘어나는 해외 직접투자에 비례해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감소하고 있다.

앞으로의 경제구조 변화와 인구 절벽을 고려하면 한국도 머지않은 미래에 제조업 공동화와 공급망 불안 등 미국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우리가 ‘코리안 팩토리’ 다큐멘터리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있다. 핵심 제조업의 첨단화를 통한 노동 생산성 확대다.

이미 기업 현장에선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LG이노텍은 사람이 점검하던 반도체 기판의 양품 여부를 인공지능(AI)에 맡기면서 리드타임(제품 주문부터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을 90%까지 단축했다. SK이노베이션 울산 공장에선 로봇 개가 석유화학 설비를 돌며 가스 누출을 탐지한다. 상승하는 운영비를 감축하고 국내 공급망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첨단 기술을 활용한 ‘제조업의 신(新)르네상스’가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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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도영 산업1부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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