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나리]낯부끄럽지 않을 공직자의 마무리

1 week ago 7

신나리 정치부 기자

신나리 정치부 기자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7일 페이스북 계정에 “브뤼셀 출장 마지막 날(4.4) 직원들과 함께 그랑 쁠라스를 찾아 따가운 봄햇살을 맞으며 망중한을 즐겼다”고 올렸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외교장관회의 출장에 동행한 본부 및 대사관 직원들과 즐겁게 셀카를 찍고 산책을 거니는 모습, 와인잔이 놓인 식사 장소가 담긴 사진 10장도 함께였다. 조 장관이 망중한을 즐겼다고 한 날은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한 날이었다.

한국의 국가 신뢰도를 지켜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 외교 최일선에 선 장관의 이런 게시글을 한국 정부 동향을 예의 주시하던 각국 외교단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출장을 준비한 외교부 내부 단체대화방에 이 같은 사진이 공유되자 “지금, 이걸? 여기에? 왜?”라는 실무진의 한숨 섞인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계엄 사태 당일, 조 장관은 ‘장관직을 그만둬야 하나’ 하는 고뇌에 전화기를 꺼뒀고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감당하기 어려운 국가적 중대사마다 회피하는 것이 ‘조태열식 외교’냐란 비판도 나온다.

지난달 헌재 탄핵심판 기각 후 돌아온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거듭 ‘마지막 소임(소명)’이라는 비장한 단어를 꺼냈다. 50년 가까운 관록을 발휘한 위기 관리를 기대했지만 느닷없는 대선 차출론 속에도 한 권한대행은 ‘노코멘트’를 이어가며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

한 권한대행을 대선 후보로 추대하자는 이들은 미국·통상 전문가인 그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협상에 대응할 적임자라는 논리를 앞세운다. 출마 명분의 유무와 당선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통상 협상 컨트롤타워를 자임한 한 권한대행이 다음 달 4일 공직자 사퇴 시한일에 맞춰 대선판에 뛰어들면 그 후 협상은 누가 책임지게 될지 의문이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유예기간 90일 중 6월 3일 대선까지의 그 한 달은 트럼프 잔여 임기 한국의 명운을 가를 중요한 협상 국면이다. 한 권한대행의 출마는 요동치는 협상판에서 먼저 손을 놓아버리는 셈이 된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각 부처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아쉬움을 느끼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 비상계엄에 묻혀 발표가 무산된 민생 경제 정책집을 허탈하게 바라보는 이도 있고, 밤을 새워가며 각고의 노력 끝에 성황리에 정상회의를 개최했지만 아무런 포상이나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묵묵히 일상으로 돌아간 직원들도 있다. 다가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차질 없이 준비될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정치권의 압박 속에 어디까지 대미 협상을 진행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이 같은 공직사회의 불안과 좌절감을 덜어내기는커녕 일부 고위 관료들의 무책임한 태도와 메시지가 이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선과 새 정부 출범까지 40일도 남지 않았다. 인사 교체가 예상되더라도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지키는 게 공직자의 본분일 것이다. 본분을 잊은 공직자들의 얕은 처신을 납세자인 국민들이 관대하게 여길 리 없다. 스스로에게도, 지켜보는 국민들에게도 낯부끄럽지 않은 마무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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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리 정치부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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