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소정]폐교부지 두고 기싸움하는 지자체-교육청

1 week ago 10

이소정 사회부 기자

이소정 사회부 기자
‘폐교 부지의 태생적 한계.’

전국 교육지원청의 폐교 부지 담당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폐교는 통상 입학생이 부족한 도서 벽지에서 발생한다. 폐교 부지의 매각 입찰이 수차례 유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사업을 하기엔 애초부터 사업성이 낮은 지역인 것이다.

특히 농어촌 지역일수록 학교 부지의 대지 면적은 넓다. 접근성은 떨어지는데 대부나 매각 비용은 높다 보니 선뜻 나서는 이도 없다. 1992년 폐교한 전남 여수시 소라중앙초는 이달 6차 매각 입찰 공고를 냈다. 지난해 7월부터 이달까지 온 문의는 단 두 통뿐이다. 1993년 폐교된 경북 영천시 석계초 역시 활용 희망자를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미활용 폐교는 주로 인구감소지역에 집중돼 있다. 지방교육재정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전국 누적 폐교 3955곳 중 방치된 미활용 폐교는 367곳이다. 이 중 전남 75곳, 경남 72곳, 경북 57곳, 강원 56곳 순으로 많다. 전국의 미활용 폐교 건물 연면적과 대지 등을 합치면 총 410ha(헥타르)로, 대장가만 5조1230억 원에 달한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7일 미활용 폐교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폐교를 공유재산으로 보고, 기존보다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당초 계획보다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행정안전부는 전국 미활용 폐교 367곳 중 인구감소지역에 있는 243곳을 지자체에 무상으로 양여할 수 있도록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상 특례 규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올 3월 통과된 개정안에는 이 내용이 빠져 있다. 교육청 소유인 폐교 부지를 지자체에 무상 양여하는 것에 대한 반발 때문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입법예고 기간 동안 폐교 부지를 일괄적으로 지자체에 무상 양여하는 것은 공적 이익과 관련해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검토 결과 기존 공유재산법상으로도 용도 확대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특례 규정에서 빠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폐교 부지를 둘러싼 지자체와 교육청의 갈등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 수도권 지자체 관계자는 “(우리는) 폐교 부지를 최대한 활용해 주민 이용 시설로 만들고 싶다”며 “하지만 교육청은 자신들 소유 부지에 교육 시설이 아닌 무언가가 들어오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것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교육청의 입장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폐교 부지를 교육 외 목적으로 활용하게 될 경우 향후 학령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부지를 새로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교육계의 우려도 일정 부분 타당하다.

문제는 시간이다. 누구 소유의 부지인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엔 상황이 급박하다. 올해 폐교 예정인 초중고교는 49곳. 여기에 지난해 입학생이 ‘0’명인 초등학교만 해도 112곳에 달한다. 이미 한 해 미활용 폐교 관리비로만 18억 원이 투입되고 있다. 낭비되는 혈세 앞에서 소유권 다툼은 의미가 없다. 지자체와 교육청은 소유권을 둘러싼 알력 다툼보다 ‘장기적인 폐교 활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것이 주민을 위해 일하는 자치 기관으로서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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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 사회부 기자 so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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