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혁신방안 주제로 토론회 열려
김형준 교수 “당 혁신, 국민 삶 개선으로 연결돼야”
비대한 중앙당 조직, 당 대표 무소불위 권한 후진적
“60년대 JP가 만든 당 구조 변화 없이 지속돼”
박원호 교수 “박근혜 이후 보수 일부가 등 돌려”
반공·권위주의 아닌 작은정부·자유주의 지향해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계엄과 탄핵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당 혁신을 위한 논의기구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이 교수들로부터 쓴 소리를 들었다.
국민의힘 ‘당의 혁신을 바라는 의원모임’은 19일 오전 국회에서 ‘대선 패배 후 민심과 국민의힘 혁신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부터 당 개혁 방안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권영진 의원이 주도한 이 모임에는 당 재선 의원을 주축으로 22명이 참여했다.
김 교수는 “보여주기식 갈라치기식 개혁만 반복하고 정작 혁신해야 할 것은 안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정당은 1961년 JP(김종필)가 비대한 중앙당 조직과 당 대표의 권한이라는 시스템 그대로”라고 비판했다. 당내 민주주의가 중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정당은 다양성과 균형, 그리고 포용성을 갖춰야 한다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단순히 젊은이로 세대교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당 대표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공천권을 휘두르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김 교수는 “당권을 가진 주류 세력이 당을 장악하는, 이런 것들을 변화시키자고 해봤는가”라며 “미국에 무슨 당대표가 있고, 공천권이라는 게 있는가. 미국도 1903년 위스콘신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기 전까진 당내 민주주의가 취약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중도 연합을 복원시킬 수 있는 계파소속이 없는 사람이 1년 동안 당 대표를 하고 깨끗이 물러나야 한다”며 “김문수·한동훈이 전당대회에 출마해선 안 된다”고 했다.
영국 노동당과 보수당의 사례를 들며 당 개혁이 ‘국민의 삶 개선’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1997년 영국 노동당이 18년 만에 정권을 찾아올 때도 그간 노동당의 극좌 노선을 버리고 실용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내세웠다”면서 “보수당도 이후 38세였던 데이비드 캐머런을 당수로 내세워 무조건적 기업 옹호를 버리는 등 진보의 가치를 보수의 시각으로 녹여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이어 국민의힘에는 실제 오세훈 서울시장이 말하는 ‘약자와의 동행’이나 한동훈 전 대표가 내세운 ‘격차해소’라는 보수의 제3의길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보수의 분화에 주목했다. 한국에서 보수는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에 기댄 일부와 자유주의·개인주의·작은정부 등을 추구하는 리버럴 보수가 따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박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탄생한 것은 한국 보수정당이 내세울 수 있는 리버럴한 대안이 있었다는 얘기”라면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리버럴 보수가 보수 블록에서 계속 이탈했고, 그 결과로 2016년 총선에서의 패배와 탄핵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은 극단적인 사례였다. 박 교수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시장주의를 선호하는 사람들한테 자유주의의 반댓말이 바로 계엄”이라면서 “중도로 이탈한 리버럴 보수들이 계엄을 한 정당을 다시 찍을 수 있었겠는가”라고 물었다.
보수의 위기에 대해선 비단 이번 대선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원래부터 계속 보수의 위기였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20대 21대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는 연이어 패배했다”고 진단했다. 실제 작년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수도권에서 19석 밖에 얻지 못해 102석을 가져간 민주당에 참패를 당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몇 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다르다. 18대 총선을 보면 서울에서 40대 7, 경기도에서 32대 17로 한나라당이 압승을 했다”면서 “어떻게 하면 이때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이어 당 내에서 대선후보를 내지 못하고 있는 당 상황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박 교수는 “대선후보도 당 내에서 찾질 못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 한동훈 전 대표 김문수 전 경기도지수,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외부에서 데려오는 일을 벌였다”며 “당내 비주류들이 대선후보가 되면서 후보 보다 당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도가 오히려 높은 상황이 펼쳐졌고, 이는 실제 윤 대통령이 낮은 지지율로 임기를 시작하게 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기소했던 사람인 윤 전 대통령은 정당 내 자산을 갖고 시작한 대통령이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정치보복과 진영투쟁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거듭했다”면서 “이는 당내 전투적인 소수 인사들의 입지가 강화되고 국민의힘이 가진 정당자산을 파괴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대선전략의 실패도 언급했다. 박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에 표를 준 유권자의 61%가 좋아하는 이 대통령이 당선되길 바랐다고 답한 반면, 김문수 후보에 투표한 유권자의 65%는 싫어하는 후보의 당선을 막고 싶어서 투표했다고 답했다”며 “선거 자체를 안티테제로 치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제각기 소감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박정하 의원은 “더 이상 말뿐인 혁신은 통하지 않는다. 익숙한 방식과 안일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진짜 변화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했다.
서범수 의원도 “김용태 비대위원장이 내놓은 5대 혁신안은 혁신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며 “약자와 동행하고, 격차를 해소하며, 중도층까지 아우르는 더 담대한 개혁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