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예의 이심전심] 장벽이 아니라 다리가 필요할 때

2 weeks ago 9

[권지예의 이심전심] 장벽이 아니라 다리가 필요할 때

얼마 전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두 교황’을 감명 깊게 시청했는데, 마침 집 근처 개봉관에서 상영하는 ‘콘클라베’를 관람했다. ‘두 교황’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그 후임 교황 프란치스코의 실화에 바탕을 둔 스토리다. ‘콘클라베’는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콘클라베’는 교황이 서거한 뒤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각국의 추기경들이 밀폐된 공간에 모여 비밀리에 진행하는 회의다.

공통점을 찾자면 두 영화 모두 교황의 후임을 정하는 이야기다. 영화 속 두 교황과 추기경들은 서로 다른 면에서 너무도 인간적이다. ‘두 교황’은 용서와 포용, 인간의 선한 면을 보여줬고, ‘콘클라베’의 추기경들은 대부분 음모와 탐욕을 지닌 인간이다. 또한 두 교황뿐 아니라 추기경들은 하느님을 믿는 종교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진보와 보수, 전통과 개혁이라는 정치적 신념과 가치관으로 나뉘어 있다.

추기경들의 갈등 속에서 콘클라베 선거 관리 임무를 떠맡은 로멜리 추기경은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어려움과 혼란을 겪는다. 반전이 이어지는 진실 공방과 하나씩 벗겨지는 스캔들은 이 영화가 종교물이 아니라 심리 스릴러, 선거판을 연상하게 하는 정치 스릴러임을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러 번의 투표로도 교황 선출이 명확하지 않자 로멜리 추기경은 말한다.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게 된 죄는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의심하는 태도로 진실을 검증하며 나아간다. 그러다가 상상하지 못한 반전의 결말에 이른다. 교황으로 선출된 이는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펴온 아프가니스탄의 추기경이었다. 그는 놀라운 정체성의 비밀을 가진 인물이었는데, 하느님이 창조한 순수 그 자체의 온전한 창조물로 교황의 임무를 임명받는다. 이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좀 혼란스러웠다. 그것도 하느님의 큰 뜻인 통합과 화합의 상징으로 봐야 하는 걸까.

‘두 교황’에서 보수와 진보 성향인 두 교황은 대립에서 대화로 우정과 인류애를 공유하며 인간적으로 서로를 포용한다. 오로지 가톨릭교회를 위한 공동의 목표를 향해 결국 둘이 한마음으로 화합한다. 바로 이 지점, 두 교황이 자신의 죄를 서로에게 고백성사하며 용서하는 의식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다. 신부님들은 고백성사를 하실까, 어떻게 하실까 늘 궁금했다. 고령의 두 노인이 서로에게 무릎 꿇고 부끄럽고 내밀한 죄를 진솔하게 고백하는 영상은 눈물겹게 아름다웠다.

이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콘클라베’ 뺨치는 전쟁판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래도 두 교황처럼 오로지 나라와 국민을 위한 하나의 목표로, 대립에서 진정성 있는 대화로 화합의 열쇠를 여는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우리는 장벽이 아니라 다리가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을 맡은 배우 조너선 프라이스의 대사가 귓전을 맴돈다.

지하철 출구를 나오는데 청년들이 예쁜 스티커를 붙인 달걀을 나눠준다. 아 부활절 달걀이구나. 그러고 보니 20일 일요일이 부활절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가 3일 만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축일이다. <가톨릭대사전>은 부활절 달걀은 그리스도가 새로운 생명으로 나타나신 돌무덤의 상징이라고 기록했다. 요컨대, 예수님께서 단단한 돌무덤에서 나와 부활하신 것을 병아리가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나온 ‘달걀’에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부활절을 맞이해 우리도 확신의 다른 이름인 아집과 불통에 갇힌 껍데기를 깨고 나와 눈을 떠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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