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40년의 기록은 더 엽기적이다. “사람이 사람의 쓸개를 빼낸다는 일은 천하 고금에 듣지 못했다. (중략) 일찍이 우리나라의 간세한 무리들이 사람의 쓸개를 몰래 중국에 판다는 말을 듣고는 모골이 송연했다.”
쓸개즙은 위장에서 내려온 다양한 색깔의 음식물을 소장에서 삭여 노란색으로 만든다. 한의학에선 쓸개즙이 이처럼 음식, 어혈 등 유형의 물질을 삭일 뿐 아니라 무형인 마음의 번뇌도 녹여 버린다고 본다. 쓸개를 마음의 균형을 잡아주는 신체 장기로 여긴 것이다. 실제 동물의 쓸개는 종종 심성과 연결됐다. ‘쓸개가 크면 클수록 용감하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쓸개가 없는 말이나 사슴은 그 덩치에 비해 유난히 겁이 많은 반면, 웅담으로 유명한 곰은 침착하고 용감하다.
한의학에선 ‘담(膽·쓸개)에 문제가 생기면 쉬 잠들지 못하고, 밥맛이 없고, 잘 놀란다’고 진단한다. 현대인이 많이 앓는 불면증이나 스트레스성 질환 등의 증상과 비슷하다. 이런 이들에게 처방하는 한의학적 치료제가 ‘담을 따뜻하게 한다’는 뜻의 ‘온담탕(溫膽湯)’이다.동물성 쓸개의 효능과 맛을 쏙 빼닮은 아주 쓴 식물 약재도 있다. 바로 ‘초용담(草龍膽·용담의 다른 이름)’이다. 얼마나 쓰면 그냥 담도 아니고 용(龍)의 담이라고 했을까. 중국 청나라 때 약물학서인 ‘본경소증’은 초용담의 효능에 대해 ‘마음의 화를 내리고 피부의 열을 내린다’고 설명했다. 이 약재는 쓰고 찬 성질 때문에 피부병과 이명(耳鳴) 치료에 많이 쓰인다.
뜨거운 것을 만져 놀란 손이 반사적으로 귀로 향하는 이유는 귀가 인체에서 가장 차가운 곳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차가워야 할 귀가 열이 받는 일이 생기면 귀 안의 신경이 과민해지면서 이명이 생긴다. 한의학에선 이명 치료의 본질을 ‘귀에 오른 화를 내리는 것’으로 본다.
반정으로 왕의 자리에 오른 인조는 누군가 역모를 꾸며 자신을 끌어내릴 것이라는 의심이 아주 심했다. 인조는 결국 죽은 소현세자의 정실이자 자신의 며느리인 강빈을 곤장으로 때려죽인 후 극심한 이명증에 시달렸다. “귓속에서 매미소리가 나더니 어느 때부터는 홀연 종치는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인조가 앓은 이명은 극심한 불안증 등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화병이었다. 이런 인조의 이명을 치료하기 위해 어의가 내놓은 약재가 바로 초용담이었다. 열을 내려 이명을 치료하려 한 것이다. 인조는 초용담이 든 이명 탕약을 무려 일곱 번이나 복용했다. 박지원은 ‘연암일기’에서 “코골이는 남만 알고 나는 모르는 병이고 이명은 남은 모르고 나만 아는 질병”이라고 했다. 만약 귓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면 일단 자신의 귀를 열 받게 하는 스트레스의 원인부터 찾아서 없애는 노력을 해야 한다.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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