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글로벌 무역 증가는 인플레이션 효과
·화학·의약품 호조, 아시아 무역 둔화
·하반기는 미국발 무역 위축 가능성
올 상반기 글로벌 무역 규모가 전년 하반기보다 1.8% 정도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실제 무역량 변화는 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인플레이션 효과(가격 상승효과) 때문에 실제 교역량보다 수치상의 상승 폭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상반기 글로벌 무역량 1% 증가
10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최근 출시한 ‘글로벌 무역 업데이트(2025년 7월)’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무역 규모는 전 반기보다 약 3000억 달러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품 무역과 서비스 무역은 각각 2300억 달러, 700억달러 증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올 상반기 실제 교역 물량 증가율은 작년 하반기 대비 1%에 그친 것으로 분석됐다. 가격 기준 교역 규모의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물가 요인을 제거하면 무역의 실질 흐름이 아직 강하지 않다는 뜻이다.
올해 들어 무역가격지수가 소폭 상승하면서 무역액 증가에 기여했다. 최근 무역 회복의 상당 부분이 가격 상승 덕분이라는 얘기다.
글로벌 수요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에너지·원자재 등의 단가 상승이 무역액을 끌어올린 것이다. 부문별로 무역 실적을 살펴보면 업종마다 명암이 갈렸다.
올 1분기에는 일반 제조업 중에서도 화학제품 및 의약품 분야의 무역은 글로벌 평균을 웃도는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반면 통신장비와 같은 디지털 장비 분야는 무역이 급감해 해당 부문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에너지 제품과 자동차(도로 차량) 부문은 분기 대비와 연간 모두 성장률이 저조해 정체 또는 감소세를 보였다. 2024년 2분기부터 2025년 1분기까지의 최근 1년간 누적 기준으로는 사무용 장비와 의약품 수출이 가장 큰 폭의 증가를 기록했다.
반면 광물자원 및 금속 등 원자재와 섬유류는 상대적으로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올 1분기 무역 증가를 이끈 것은 화학·제약 등 제조업 분야였고, 통신기기 등 일부 디지털 제품은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수입 급증한 이유는
지역별로 보면 올 1분기 미국과 EU의 무역 증가율이 다른 지역을 큰 폭으로 앞질렀다. 미국의 상품 수입은 분기 대비 14% 폭증하며 무역 적자 규모가 커졌다.
이는 미국이 예고한 관세 부과를 앞두고 수입업자들이 재고를 미리 확보에 나선 영향이다. 이런 일시적 수요로 미국의 지난 4분기간(연간) 수입 증가율도 12%에 달했다.
유럽연합(EU)은 같은 기간 수출이 분기 대비 6% 증가했다. 주요 경제권 중 가장 호조를 보였는데 연간 기준으로도 3% 증가의 수출 증가율을 나타냈다.
중국의 경우 1분기 수출은 소폭 증가했지만 수입은 감소해 전반적으로 교역이 둔화했다. 인도와 한국 등 아시아 주요국의 1분기 수출도 전 분기 대비 감소세를 보여 글로벌 남반구의 무역 흐름이 다소 약화한 모습이다.
다만 아프리카 지역은 예외적으로 수출이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역내 교역 및 대중국 수출 호조가 뒷받침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런 지역별 차이는 무역수지 불균형의 확대 추세로도 나타났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확대됐다. 보고서는 “지난 4개 분기 동안 미국의 적자는 확대되고 중국과 EU의 흑자는 커졌다”고 지적했다.
선진국 집단에서도 미국은 과도한 수입으로 적자가 심화했고, 중국과 EU는 수출 호조로 흑자가 늘어나는 글로벌 양극화 현상이 심화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올 하반기 글로벌 교역은 당분간 성장세를 이어가겠지만 정책 불확실성, 지정학적 긴장, 세계 경제 성장 둔화 신호 등이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경기 선행지표는 '빨간불'
실제 올해 들어 일부 선행지표는 둔화를 시사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제조업 PMI가 약세를 보여 글로벌 제조업 수요 위축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추진 중인 기본 관세율 10% 부과 정책과 국가별 추가 관세 검토, 이에 따른 보복 조치 가능성 등이 하반기 무역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요인이다.
보고서는 세계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보조금 확대, 산업정책 강화에 나설 경우 교역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특정 첨단 산업을 둘러싼 분절화와 국가주의적인 조치도 교역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무역 흐름의 역전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정책 변화의 영향을 보여줬다. 최근 수년간 개발도상국(글로벌 남반구)이 상대적으로 높은 무역 증가율을 보이며 세계 무역을 견인해왔다.
올해 들어 미국과 EU 등 선진국이 다시 주도권을 잡는 양상이다. 보고서는 이런 변화의 배경으로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를 지목한다.
미국 정부가 일률적 10% 관세 도입을 발표하고 일부 국가를 겨냥한 추가 관세를 준비하자 미국 수입업체들이 관세 부과 이전에 물량을 앞당겨 들여오는 현상이 나타났다.
해당 재고 확보 효과로 미국의 1분기 수입이 이례적으로 급증하며 세계 무역 통계를 끌어올린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일회성 요인은 2분기 들어 사라지면서 올해 4~5월 미국의 수입은 급감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는 상반기 무역 증가분 중 상당 부분이 정책에 따른 단기 왜곡일 수 있음을 뜻한다. 하반기에는 미국발 수요가 다시 둔화해 글로벌 무역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다.
EU의 수출 호조는 비교적 구조적인 요인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EU는 글로벌 에너지 가격 안정과 역내 경기부양책 등에 힘입어 제조업 수출이 개선되는 추세다.
보고서는 EU가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로 일부 반사이익을 본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 수입이 관세 부과 전 폭증하면서 해당 물량 중 상당 부분이 EU산 상품(자동차, 기계 등)으로 채워져 EU 수출 통계를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통상마찰의 '불씨'
한편 중국의 무역 둔화는 국내 경기 여건 및 대외 환경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중국은 내수 경기 둔화와 부동산 부문의 어려움 등으로 수입 수요가 축소돼 1분기 수입이 감소했다.
수출은 인근 아시아 및 아프리카 신흥국 수요 덕분에 소폭 증가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미·중 기술 갈등 및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으로 대미·대유럽 수출은 정체됐다.
지역별 무역 역조 현상도 눈에 띈다. 미국의 경우 기록적인 수입 급증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됐다. 이는 달러화 공급 증가로 이어져 글로벌 유동성에는 일시적 긍정 효과를 줬다.
반대로 중국과 EU는 흑자 폭 확대에 따라 무역상대국으로부터 자금을 흡수했다. 이런 불균형 확대는 향후 통상마찰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통 대규모 무역적자는 보호무역 압력을 키웠고 과도한 흑자에 대해서는 환율조정 요구 등이 뒤따랐다. 실제 미국은 자국 적자 확대와 중국·EU 흑자에 대한 불만을 무역정책에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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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