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파워 산업 강자 꿈꾸는 中
中 2030, 경기 침체에도 ‘감성 소비’
굿즈 소비 통해 취향 공유 유행
2026 월드컵 개회식 ‘라부부’ 등장
팝마트 등 中기업들 해외 진출 확대
韓 캐릭터 업계도 中 시장 주목
중국 완구 기업 팝마트가 주최한 ‘몰리(MOLLY) 캐릭터 20주년 특별전’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 입구부터 긴 줄을 늘어섰다.
캐릭터 관련 행사임에도 이날 방문객의 10명 중 8명은 20, 30대였다. 방문객들은 초창기 캐릭터를 탄생시키기 위해 그렸던 스케치, 그리고 생산 연도별로 나란히 진열된 피규어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편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장모 씨(32)는 “대학생 시절 틈 나는 대로 몰리 피규어를 하나씩 사 모았다. 그 당시 유행했던 ‘별자리 시리즈’들을 다시 보니 그 시절 추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몰리는 특정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했던 캐릭터가 아니다. 홍콩 출신 아티스트 케니 웡이 2006년 창조한 것으로 초기에는 회회나 조형물 등 예술 작품에 주로 활용됐다. 2016년 팝마트가 몰리의 라이선스(이용권)를 확보한 뒤 본격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알려졌다. 몰리는 상자 안에 어떤 종류의 상품이 들어 있는지 모르게 하는 ‘블라인드 박스’ 형태의 판매 방식을 유행시킨 원조 캐릭터로 여겨진다. 이날 전시장은 아티스트가 탄생시킨 캐릭터가 어떻게 중국을 대표하는 아트토이 지식재산권(IP)으로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행사장 안내 직원은 “몰리의 초창기 드로잉이나 작업 메모 노트 등이 대규모로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감성 소비’에 열광하는 中 젊은층
그 배경에는 중국 청년층의 소비 패턴 변화가 한몫하고 있다. 수년째 이어지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은 중국 젊은이들을 짓누르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이들은 고가의 명품이나 차량을 사느라 돈을 모으는 대신 자신의 취향과 감정을 만족시키는 소비에는 지갑을 열고 있다. 특히 블라인드 박스로 대표되는 소형 굿즈는 개봉하는 순간의 기대감과 한정판을 모으는 재미까지 제공한다. 젊은이들은 자신이 가진 굿즈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인증하고, 같은 취향의 사람들과의 소속감까지 느끼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류성즈(劉勝枝) 베이징유뎬대 교수는 런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소비 관념이 ‘실용적 절약주의’에서 ‘감성 체험주의’로 전환됐다”면서 “젊은 세대는 자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적 경험을 얻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고 말했다.
13일 전시장 안에 마련된 상품 판매 코너에서도 이른바 ‘감성 소비’에 나서는 젊은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매대에는 일반 팝마트 매장에서 판매하는 69위안(약 1만5000원)짜리 블라인드 박스 상품 외에도 다양한 한정판 상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초창기 ‘앵그리 몰리’ 버전의 미니 피규어는 218위안(약 4만9000원), 2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성인 팔뚝만 한 크기의 모형에는 1499위안(약 33만60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이날 피규어 여러 개를 구입한 20대 여성은 “한정판을 살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면서 “책상에 진열해놓고 볼 때마다 흐뭇해할 생각을 하면 돈이 그다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월드컵 개회식까지 등장한 라부부
2025년 팝마트의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291.9% 급증했다. 팝마트의 총매출 가운데 약 44%인 162억7000만 위안(약 3조6000억 원)이 해외에서 이뤄진 것.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보다 미주나 유럽에서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올해 초 팝마트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전 세계에서 팔린 라부부 인형이 1억 개를 돌파했고, 매 초에 3개 이상씩 팔려 나가고 있다.
11일(현지 시간) 멕시코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개회식에 라부부가 등장한 건 라부부의 글로벌 인기를 재확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관영 신화통신은 12일 “라부부는 월드컵 행사에 참여한 최초의 중국 토종 IP”라면서 “단순한 장난감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중국 문화 브랜드 중 하나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2015년 설립된 중국의 오십이토이즈(52TOYS)도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아트토이 브랜드 중 하나다. 현재 전 세계 4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고 동남아시아, 일본, 한국, 북미 등 주요 시장에 지난해 기준 16개 라이선스 브랜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디즈니나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와의 협업도 활발히 하는 52TOYS는 ‘짱구는 못 말려’ 피규어 시리즈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지난해 개봉한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 ‘너자(哪吒)2’도 최근 중국 소프트파워의 역량을 실감케 하는 사례다. 전 세계에서 22억6700만 달러(약 3조4000억 원)를 벌어들이며 역대 전 세계 애니메이션 가운데 흥행 1위에 올랐다. 흥행 수입 대부분이 중국에서 나왔지만, 디즈니와 픽사가 지배해온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중국 콘텐츠가 존재감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로 꼽힌다.
●창의력 갖춘 한국 캐릭터도 기회 살려야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아트토이 시장은 한국 기업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
문랩스튜디오의 ‘몰티즈’ 캐릭터가 성공 사례로 꼽힌다. 중국에선 ‘선으로 그린 강아지’라는 뜻인 ‘셴탸오샤오거우(線條小狗)’로 불린다. 2023년 중국의 SNS인 위챗에 이모티콘을 출시한 지 5개월 만에 누적 전송량이 30억 회를 넘었다. 루이싱커피 등 중국 브랜드와의 협업도 인지도를 높이는 데 효과를 봤다. 몰티즈의 성공 이후 ‘잔망루피’ 역시 중국 젊은층에게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최근 중국은 캐릭터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자체 IP 개발 능력을 키우고 있고, 인공지능(AI)을 통한 콘텐츠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과거 ‘라바’ 캐릭터의 중국 사업을 맡았던 문지애 엠앤미디어 대표는 “한국은 스토리텔링이나 기획력에서 우수한 역량을 갖춘 인력이 많은 만큼 현지화만 잘 이뤄낸다면 여전히 중국 시장에서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IP 사업을 포함한 K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중국에서 매년 ‘코리아콘텐츠위크’를 개최해 콘텐츠 분야에서 우수한 국내 중소기업들을 현지에 소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콘텐츠 산업의 특성상 현지 특성에 맞는 마케팅이 흥행의 핵심인 만큼 현지 관련 업계와의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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