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국회도서관 내부 첫 공개 현장
도서관 개방, 시민에 다가가는 정치… “감춰졌던 공간 보자” 방문객 만원
400m² 천장에 고풍스러운 벽화… 장자크 루소 등 佛 고전 가득
빅토르 위고 친필 편지도 보관… 루브르 박물관도 엘리트주의 허물기
17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국회의사당의 도서관. 이곳에서 만난 10대 소녀 악셀 양은 가족들과 도서관 내부를 둘러본 뒤 천장 벽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의 동생 콤 군도 “천장에 그림이 정말 많았다”고 거들었다.
이 도서관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7년 후인 1796년 완공됐다. 역사가 229년에 달한다. 그간 입법이나 국가 행정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찾는 프랑스 정치인과 관료들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지만 오랜 역사로 많은 책과 시설이 낡은 상태였다.》
원래 국회의원, 정부 고위 공직자 등만 출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최근 1년간의 보수 공사 끝에 ‘정치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준다’는 상징적인 취지를 담아 일반에도 개방을 결정했다. ‘세계 문화유산의 날’ 등 특별한 날 이벤트성으로 신청자들에 한해 공개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일반인에게 문을 연 건 처음이다. 현장에서 만난 팡세 샤포토 국회 부행정관은 개방 취지에 대해 “국회가 프랑스 국민을 위한 장소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정치를 국민의 품으로”
돔 중앙은 천장이 하늘로 열려 있는 듯 푸른색으로 가득 채워졌다. 천장 한쪽 끝에는 무기를 휘두르며 야만적인 모습을 보이는 남성이 그려진 전쟁 장면이 담겨 있었다. 다른 한쪽 끝에는 신들이 하늘을 날며 노래하는 평화가 표현돼 있었다. 이곳은 역시 천장에 벽화가 많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시스티나 예배당’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두 작품 사이로 천장의 돔 5개가 이어졌다. 각 돔은 시, 신학, 역사와 철학, 과학 등을 각각 주제로 삼은 그림들을 품고 있었다. 돔 아래 서고엔 각 분야의 책이 가득 꽂혔다. 각종 전쟁을 야기하는 인간의 잔인함과 야만성이 이런 다양한 책을 통해 터득한 교양으로 순화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평화를 추구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일간지 르파리지앵에 따르면 도서관을 일반에도 공개하자는 주장을 주도적으로 펼친 인물은 집권 르네상스당 소속의 국회의장이자 유명 여성 정치인 야엘 브론피베 의원(55)이다. 그는 현대 프랑스 정치 체계의 근간인 1958년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첫 여성 국회의장이다.시민들은 정치 엘리트의 상징이던 국회도서관의 공개에 반가움을 표했다. 딸과 함께 도서관 투어를 신청한 백발의 도나토 드니 씨는 “국회도서관을 우리나라의 지식인이나 정치 엘리트를 위한 장소로만 한정하지 않고 모든 국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볼 수 있도록 허용한 건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프랑스 정계의 혼란과 갈등이 심해져 지난해에만 총리가 여러 차례 바뀌었던 터라 정치권에서 모처럼 좋은 일을 했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기득권의 공간으로 오랫동안 감춰졌던 도서관이 개방된다는 소식에 방문 예약 또한 일찌감치 마감됐다. 이날 투어를 예약한 이들은 일찍부터 긴 줄을 섰다.
이날 방문객들의 주목을 받은 건 책이나 유물뿐만이 아니다. 보수 공사를 통해 도서관 내부에 재미있는 요소 또한 여럿 가미됐다. 길고 빽빽한 책장 중엔 ‘가짜 책꽂이’도 숨어 있었다. 책이 꽂혀 있는 듯한 외양으로 디자인된 문이다. 이 문을 밀면 도서관 내부의 행정 사무실로 연결된다.
●佛 대표하는 루소-위고 작품도
국회도서관 개방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이유 중 하나는 이곳에 프랑스 현대 정치와 사회의 근간이 된 문학 작품이나 법률 문서 등이 보관돼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2개 층에 걸친 지상 공간과 지하에 품고 있는 도서는 약 70만 권. 이 외에 명저의 사본 약 1900권도 있다.대혁명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장자크 루소가 1760년대에 쓴 ‘고백록’, 대혁명 당시 ‘공포 정치’를 주도한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주석을 단 헌법 초본도 존재한다. 중세 백년전쟁의 영웅 잔 다르크의 재판 관련 문서, 9세기에 쓰여진 성경, 대혁명의 시작을 알린 ‘테니스 코트의 선서’도 있다.
도서관에는 진귀한 유물 또한 상당하다. 마침 도서관 직원이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직접 쓴 편지를 보여줬다. 편지 말미엔 위고의 프랑스어 서명이 선명했다. 작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위고가 친필로 쓴 편지 중엔 대혁명 당시 한 여성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도 있다. 당시 위고는 억울하게 처형된 아들에 대한 슬픔을 털어놓은 이 여성을 다독이고 위로하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1700년대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형 책 모양의 ‘화장실 휴대품’도 눈길을 끌었다. 오래된 탓에 급하게 열면 부서질 듯한 책 안엔 인형 장난감 같은 작은 향수병과 거울 등이 들어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서도 의류 전시
엘리트주의를 허물겠다는 움직임은 다른 도서관이나 박물관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BNF)도 이미 대중에게 일부 열람실을 개방해 파리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간 주로 박사 과정생이나 교수에게만 출입을 허용했지만 일부 공간을 대중에게 개방했다.
이날 방문한 도서관 내 ‘리슐리외’관에는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조각과 창문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도서관 속엔 일반인들이 긴 책상에 빽빽이 들어앉아 노트북을 켜거나 책을 펼친 채 열독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이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도서관은 박제된 교양인 책부터 독서로 살아있는 교양을 보여주는 시민들까지 생생한 관광 상품이 된 셈이다.
이집트의 미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 세계적인 유물이나 회화 작품만 전시하는 공간으로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도 최근 달라지고 있다. 루브르는 올 1∼7월 사상 최초로 명품 패션 브랜드의 의류 전시를 허용했다.
현재 루브르 내 특별전시관에서는 샤넬, 돌체앤드가바나, 지방시, 발렌시아가, 루이뷔통 등이 제작한 의상을 볼 수 있다. 의상은 65벌, 액세서리는 30점이다. 현지 매체들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 중 한 곳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다른 나라의 유명 박물관들은 일찌감치 의류 전시를 허용해 왔다.
‘문화 엘리트’를 상징하는 극장 ‘코메디 프랑세즈’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선 올해 1∼3월 매주 목요일마다 극단 예술가들이 모여 연극 의상 약 10벌씩을 중고로 판매했다. 자수 드레스, 가죽 외투, 연미복 등 프랑스의 옛 시절 만들어진 의상들을 내놨다. 극장 측이 일반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으로 주목받았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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