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2세라고요? 공장에 가보세요”… 양복 대신 작업복 입은 남매의 승부수 [한국의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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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제조기업 이어가는 이자원 대표·이성현 이사 이자원 ㈜화인디펜스·우방전선 대표와 이성현 ㈜화인 전략기획실 이사. 세간의 시선은 늘 차갑다. ‘2세 경영인’이라는 수식어에는 ‘금수저’와 ‘편안한 승계’라는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제조업 현장에서 만난 2세 경영인의 일상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직원보다 적은 월급을 받으며 작업복을 입고 공장을 누빈다. 이들에게 가업승계는 회사를 물려받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수십 년간 쌓아온 기술과 일자리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야 하는 과제다.이자원 ㈜화인디펜스·우방전선 대표(38)는 가업승계에 대한 세상의 시선에 고개를 젓는다. “실제로는 정반대예요. 1세들은 자식에게 그 고생을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고, 자식들도 선뜻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생길이 열리는 거니까요. 수많은 가족의 생계가 달렸다는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이 대표와 동생인 이성현 ㈜화인 전략기획실 이사는 아버지가 평생 일군 회사를 이어가기 위해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들에게 회사를 이어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릴 것인가”의 문제다. 창업자인 이상준 회장(70)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대충하고 넘어가면 하자되어 돌아온다”는 회사의 슬로건이 공장 벽에 걸려있다. 남매가 지키려는 화인의 역사는 1989년 부산 사하구 구평동의 한 슬레이트 지붕 양계장에서 시작됐다.아버지 이상준 회장(70)은 기아중공업 기술연구소 연구원이었다. 그는 프라이드 엔진공장이 지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씁쓸한 현실과 마주했다. 한국은 자동차를 생산하면서도 정작 자동차를 만드는 핵심 설비는 일본과 유럽에서 전량 수입해 오고 있었다.“우리 차를 만드는 기계는 왜 우리 기술로 만들지 못하는가.”유학을 꿈꾸던 청년 엔지니어는 방향을 틀었다. 자동차 생산설비를 국산화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대형서점을 뒤져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구평동의 슬레이트 지붕 양계장 축사를 빌렸다. 그렇게 ‘화인실업’이 출발했다.처음에는 국내 대기업에서 문전박대 당했다. 화인을 먼저 인정한 곳은 역설적이게도 일본이었다. 일본 설비회사의 주문을 받아 수출을 시작했는데, 그 장비가 다시 한국 자동차회사로 역수출됐다. 그렇게 화인의 기술력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이후 화인은 국내 완성차 엔진 세척설비 시장에서 점유율 80%를 기록했고, GM을 비롯한 해외 완성차 업체로도 시장을 넓혔다. 전 세계 1500여 건의 납품 실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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