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냉장고를 부탁해야 ‘K-신약’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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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9-18 오전 5:00:03 수정 2026-09-18 오전 5:00:03 가 가 [남진우 K-문샷 AI신약 분야 PD·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재미있다. 대통령을 포함한 명사들이 본인 집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에 옮겨 오면 최고의 셰프들이 그 안에 든 재료만으로 근사한 요리를 완성해 내는 설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관건은 언제나 있는 재료를 어떻게 꺼내 조합하느냐다. 그런데 셰프가 냉장고 앞에 섰는데 문이 모두 잠겨 있다고 상상해 보자. 신선한 재료는 분명 안에 가득한데 열쇠가 기관마다 병원마다 회사마다 제각각이라 아무도 열지 못한다. 심지어 어떠한 재료가 있는지 몰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는 추측으로 진행해야 한다. 지금 우리 인공지능(AI) 신약개발에 필요한 바이오데이터의 처지가 꼭 이렇다. AI는 데이터를 먹고 성장한다. 약이 될 후보물질을 설계하고 사람에게 쓰기 전에 독성과 효과를 예측하려면 방대한 실험·비임상·임상, 인체유래물 데이터가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병원의 임상기록, 인체유래물, 제약사의 ADMET(약물의 흡수·분포·대사·배설·독성) 실험 데이터를 세계적 수준으로 쌓아 왔다. 문제는 이 데이터들이 서로 만나지 못한 채 각자의 사일로(silo·곡물창고)에 갇혀 정작 함께 활용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아쉬운 것은 실패의 기록이다. 어떤 물질이 독성 때문에 실패했는지를 담은 데이터는 신약개발이라는 지도에서 막다른 길 표지판과 같다. 이 표지판을 나누지 않으면 모두가 같은 낭떠러지로 다시 떨어진다. 그런데 지금은 개인정보 보호, 민감정보 이슈, 기업 영업비밀 등 복잡한 심의 절차라는 벽에 막혀 각자의 실패가 각자의 서랍 속에서 잠들어 있다. 게다가 신약개발은 한 번의 도약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잇는 이어달리기다. 유망한 표적을 찾는 발굴 단계에서는 유전체·전사체·단백체를 아우르는 멀티모달 데이터와 정상세포 지도가 후보물질을 다듬는 설계 단계에서는 단백질 구조와 항체·RNA 데이터가 필요하다. 사람에게 쓰기 전 안전성을 가늠하는 비임상 단계에서는 ADMET·독성 데이터가, 마지막 임상 연계 단계에서는 인체유래물과 임상·의료 데이터가 차례로 바통을 넘겨받는다. K-문샷이 그리는 AI 신약개발은 이 바통이 한 번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음 주자에게 이어질 때 비로소 완주할 수 있다. 어느 한 단계에서 데이터의 흐름이 끊기면 앞 단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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