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성과 영양, 그리고 청송까지. 이번 산불로 가장 깊은 상처를 입은 경북 북부 지역들이다. 하지만 이곳은, 불이 나기 전부터 이미 조용히 꺼져가고 있었다. 인구는 줄고, 출생아 수는 급감했으며, 젊은 세대는 도시로 떠난 지 오래다. 청송은 이미 4개의 교정시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여자교도소 유치를 추가로 추진한 바 있다. 그만큼 '사람의 드나듦' 자체가 귀한 곳이라는 뜻이다. 이번 경북 산불은 단순한 재난이 아니다. 삶의 터전을 무너뜨린 사건이자, 복구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구조적 균열을 앞으로 더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산불 피해지역에 필요한 건 '왜 이곳에 다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되살리는 일이다. 불길이 타오를 땐 중앙 언론의 카메라가 몰려들지만, 불이 꺼진 뒤 마을을 끝까지 비추는 건 바로 케이블TV 지역채널을 비롯한 지역 미디어다.
지난 경북 산불 당시 LG헬로비전 지역채널은 11회의 재난특보와 5차례의 특집 뉴스를 비롯해 유튜브 채널과 지역 별 페이스북 등을 통해 1000건 이상의 디지털 콘텐츠를 쏟아냈다. 산불 발생 이후 즉시 특보 체제로 전환해 열흘간 (뉴스보도총국과 방송운영팀 등) 60여명의 인력이 현장 취재와 편집, 특보 제작에 투입됐다. 산불 진화대의 가슴 먹먹한 식사 장면, 불길 속 죽어간 소를 바라보는 농부의 눈물, 한평생 살아온 집이 폐허가 된 어르신들의 사연까지…. 지역채널이었기에 가능한 피해 주민들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가 전국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LG헬로비전의 재난방송 대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강원 산불 당시에도 가장 빠르게 현장에 진입해 지역 채널을 통해 상황을 알리고, 생중계와 긴급 자막 송출, 이재민 인터뷰 등 재난 특보 체계를 가동한 바 있다. 중앙 미디어가 빠져나간 자리를 지킨 건 늘 지역채널이었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출범과 함께 시작된 케이블TV 지역채널은 단순한 지역 뉴스를 넘어 '주민들의 삶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해 왔다. 지역 농특산물과 연계한 로컬 커머스 방송, 축제·박람회·스포츠 이벤트 중계, 각종 재난방송과 지역 관광지·브랜드를 전국에 알리는 체류형 콘텐츠까지. 이 모든 시도는 '지역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이처럼 공공적 역할을 수행해 온 케이블TV 지역채널은, 정작 제도적 지원에서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 케이블TV 업계는 지역채널에 해마다 1200억원 넘는 제작비를 자체 투입하고 있다. 특히 케이블TV 업계는 매년 막대한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부담하면서도, 콘텐츠 제작에 대한 지원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역 사회를 지키고, 조명하는 지역채널의 운영을 오직 사업자의 '의지'와 '책임감'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TV 지역채널은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들의 대의와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매체다. 삶의 가능성은 이야기에서 피어난다. 경북 산불 발생 한 달. 불은 꺼졌지만, 지역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이야기가 지속될 수 있도록, 이제는 정책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윤종 LG헬로비전 제작국장 zzong2@lghv.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