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이런 우연이 많다. 생명의 역사에도 과학자들조차 기막힐 정도라고 감탄하는 우연이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눈으로 보는 것은 간단하지만, 이를 위한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복잡한 과정이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정교한 연쇄 반응이 필요하다. 최대한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우리 눈에는 간상세포와 원추세포가 있다. 이들 세포막에는 옵신이라는 단백질이 겹겹이 박혀 있는데, 이 옵신들은 레티날이라는 작은 분자를 반지 속의 반지알처럼 품고 있다. 빛을 흡수하기 위해서다. 빛을 흡수한 ‘반지알’은 구부러진 형태에서 곧게 펴지게 되는데, 이 힘의 변화가 반지알을 품고 있는 옵신에게 전달된다. 이런 전달과 증폭 등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뇌로 신호가 간다. 우리가 무언가를 보는 과정이다.
최대한 쉽게 설명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어려운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한다고 해 놓고 어렵게 설명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과정은 과학자들에게도 쉽지 않다.그런데 할로박테리움이라는 한 고대 미생물의 단백질이 이 복잡한 구조와 과정을 똑같이 갖고 있다. 신호를 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빛을 에너지로 만든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같은 종조차 갈라져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면 다른 진화를 만들어 가는데, 우리와는 까마득한 태고에 갈라져 진화적으로 완전히 다른 뿌리를 가진 생명체가 판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같은 과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두 옵신 모두 빛을 효과적으로 감지하기 위해 세포막을 뱀처럼 7번 들락날락하며 원통형의 공간을 만드는 3차원 구조(7TM)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7번이라는 횟수까지 같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우주적인 확률의 우연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이 “자연이 빛을 보는 방법을 두 번 발명했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 우연을 진짜 놀라운 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2021년 프랑스와 스위스 공동연구팀은 단세포 녹조류에서 추출한 옵신 유전자를 40년간 앞을 보지 못한 사람의 눈에 주입했다. 옵신 기능이 망가져 시력을 잃은 사람의 눈에 같은 기능을 가진 유전자를 넣어준 것이다. 어땠을까? 성공이었다. 망막 신경에 자리 잡은 미생물 옵신 덕분에 횡단보도 정도는 보며 건널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상에는 우연이 많다. 우연이 돈을 만나면 대박이 되고, 기회를 만나면 성공이 된다. 하지만 좋지 않은 일을 만나면 불행이 되고 슬픔이 된다. 이런 우연을 우연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무언가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우연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능력인 건 말할 필요도 없다.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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