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치즈, 요구르트… 발효와 부패의 차이?[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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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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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흔히 우리는 미생물이 자란 음식을 먹어 배탈이 나면 ‘부패’이고, 미생물이 자란 음식이지만 배탈이 나지 않으면 ‘발효’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원리나 작용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기에 같은 미생물이 자라더라도 어떤 때는 먹을 수 있고, 어떤 때는 먹을 수 없는지에 대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 조상들은 미생물의 존재나 부패, 발효를 몰랐기 때문에 그냥 음식이 쉬면(상하면) 못 먹고 삭히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부패는 ‘쉰다’, ‘상한다’로 의도하지 않은 수동적인 표현이고 발효는 ‘삭힌다’로 목적성을 갖는 능동적인 표현이다.

발효와 부패는 우리 몸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미생물이 자라게 하느냐, 아니면 우리 몸에 들어오면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 미생물이 먼저 자라게 하느냐의 단순한 차이다. 과학적으로 부패와 발효는 전적으로 어떤 재료이냐,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 원리를 알 수 없어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지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 식품의 발효는 과학보다 정성과 기다림의 문화 영역이 돼버렸다. 같은 콩이라도 갈아서 콩국물로 만들면 쉽게 쉬어버리지만 콩을 통째로 메주로 만들어 겨울을 나고 봄에 소금물에 담가 삭히면 맛있는 장이 된다. 나물이나 배추, 무도 씻지 않고 놓아두면 바로 물러져서 먹을 수 없지만 잘 씻어서 소금과 고춧가루를 버무려 두면 김치가 된다.

수백 년 전에는 오늘날과 같이 미생물을 죽이거나 거르는 기술이 없어 어떤 음식, 재료이냐에 따라 발효와 부패가 갈라졌다. 즉, 소화가 잘되는 당과 지방, 단백질이 많은 음식과 재료에는 모든 미생물이 쉽게 자라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유해 미생물에 노출되면 부패가 먼저 일어난다. 음식 속에 있는 어떤 유해 미생물은 장에서 급격히 자라서 설사와 곽란을 일으키고 혈액 속으로 파고들어 사망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채소를 보자. 일부 반추동물의 위에 자라는 미생물은 채소를 분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 유해 미생물이라도 풀을 분해하는 셀룰라아제가 없기 때문에 몸속에서 채소를 먹고 자라기가 쉽지 않다. 젖산균은 셀룰라아제는 없지만 음식 속에 조금 들어 있는 양념 속 당을 먹고 천천히 자란다. 또 음식, 재료를 소금에 절이면 삼투압 현상에 의해 유해 미생물은 일찍 자라지 못하며, 특히 고추의 캡사이신은 젖산균을 자라게 하지만 다른 미생물을 자라지 못하게도 한다.

더군다나 젖산균 발효가 진행되면 다른 유해 미생물을 죽일 수 있는 일부 물질(락틴)을 내기도 한다. 젖을 분해하는 락타아제도 젖산균 등 일부 미생물만 갖고 있다. 요구르트와 치즈는 젖산균 발효에 의해 산이 생기면 산성도(pH)가 낮아지다가 등전점(전기적 중성 상태)에 도달 시 카세인 단백질이 응고돼 생기는 발효식품이다. 마치 콩국물의 글리시닌과 같은 콩단백질이 간수에 의해 응고되면서 순두부와 두부가 차례로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음식과 재료에서 발효가 일어나지 않고 김치, 치즈, 요구르트와 같은 채소나 우유로부터 젖산 발효 식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일부 곡류라도 거칠게 해 당의 분해를 더디게 함으로써 유해 미생물의 성장을 일시적으로 막고 술 발효 효모만 잘 자라도록 환경을 만들어 술을 만들어낸 것도 비슷한 원리이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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