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생태계 조성에 국가적으로 총력을 다해야 할 ‘골든타임’입니다.”
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퀀텀벤처스코리아 대표)은 19일 “한국은 인공지능(AI), 자율주행 같은 혁신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벤처 투자 생태계를 살려야 한국에서도 글로벌에서 경쟁할 혁신 기업이 나올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회장은 LB인베스트먼트와 IDG벤처스코리아, 한화인베스트먼트, 센트럴투자파트너스 등을 거쳐 2017년 퀀텀벤처스코리아를 설립하는 등 25년 이상 벤처 투자시장에 몸담아 온 베테랑이다. 지난 2월 16대 벤처캐피탈협회장으로 취임해 벤처캐피털(VC)업계 주요 현안을 알리고 있다.
그는 “벤처투자 관점에서 지금은 2000년대 인터넷 혁명과 모바일 혁명에 이은 엄청나게 큰 변곡점”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과거엔 유동성 공급이 벤처투자 시장을 견인했다면, 이젠 기술과 생태계 자체가 이끄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대로 AI의 빠른 발전이 이끄는 새로운 산업 사이클에 올라탈 기회를 놓친다면 한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기술 기반 신생기업이 등장하고 성장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벤처 투자 생태계가 탄탄하게 조성돼야 한다. 하지만 한국 벤처투자 생태계는 아직 미국 등 주요국에 비해 갈 길이 멀다. 최근 몇 년 간 주요 출자자(LP)가 지갑을 닫으면서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 유동성이 크게 줄었다.
김 회장은 “과도한 위험출자비중(RWA) 기준으로 금융권에서 출자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며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과도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벤처펀드에 일괄 적용되는 400% 위험가중치 규정이 은행 등 금융권 출자자를 벤처시장에서 이탈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민간 금융기관의 벤처펀드 출자금은 2021년 14조4000억원에서 2024년 8조1000억원으로 43.7% 급감했다.
퇴직연금 등 주요 연기금의 벤처펀드 출자 허용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기금의 벤처투자 허용은 이재명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다. 김 회장은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벤처펀드 출자 허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모험자본이지만 포트폴리오 투자인 만큼 벤처투자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스닥 등 회수시장을 살려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론 ‘코스닥 전용 펀드’를 제안했다. 김 회장은 “코스닥시장의 기관 투자 비중을 늘려야 한다”며 “VC들의 상장주식 투자를 제한하고 있는 규제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을 장기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VC 등 기관 투자가 꾸준히 이뤄져야 코스닥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게 김 회장 주장이다.
국내 VC들도 글로벌 시각을 갖추고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VC들이 한국 시장만 보고 투자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며 “해외 기술과 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글로벌 관점에서 투자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고은이/최영총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