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에 제조 데이터 몰아주는 中…美 'AI 경계령'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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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 순위에서 가장 극적인 상승 곡선을 그린 국가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의 세계제조업경쟁력지수(CIP)에서 중국은 1990년 32위에서 2018년 2위로 올라선 이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쌓인 제조 데이터가 중국 내 여러 인공지능(AI) 기업의 학습 자산으로 쓰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딥시크라는 중국의 ‘소버린 AI’와 화웨이, BYD, 샤오미 같은 제조기업의 결합이 미국이 진짜 두려워하는 ‘레드테크’라고 말했다. 희토류에 일격 당한 미국이 한국 대만 일본 등 동맹국의 첨단 제조공장을 자국으로 불러들이려는 것도 ‘AI의 희토류’로 불리는 제조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中 딥시크가 키우는 ‘비장의 무기’

딥시크에 제조 데이터 몰아주는 中…美 'AI 경계령' 내렸다

19일 테크업계와 외교가에 따르면 최근 미국 싱크탱크 사이에선 ‘딥시크 탄생지’ 중국 저장성의 제조 생태계 연구가 한창이다. 중국에서도 제조업 동향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저장성이 각 분야 제조 데이터를 쏟아내며 딥시크의 학습모델 훈련에 동원됐을 것이란 얘기가 들려서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저장성 내 수많은 공장에는 센서와 사물인터넷(IoT)이 설치돼 온도와 진동, 습도, 압력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터는 알리바바 등 중국 빅테크가 자체 구축한 클라우드로 전송돼 AI의 학습 자료로 활용된다. 설비 고장이나 품질 이상을 조기 감지하는 예지보전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 저장성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생산량, 납기 일정, 재고 계산 등의 프로세스도 AI가 최적화해 결정한다. 이렇게 축적한 데이터는 중국 빅테크와 AI 스타트업의 유용한 학습 자산으로 사용된다.

중국은 저장성을 제조 데이터 순환 구조의 테스트베드로 낙점하고 국가 차원에서 ‘데이터 경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저장성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5.5% 증가한 9조위안을 넘어서며 중국 34개 성 중 4위를 차지했다. 성도인 항저우와 제2 도시 닝보는 각각 전년 대비 4.7%, 5.7% 증가한 2조1860억위안과 1조8140억위안으로 GDP 1조위안을 훌쩍 뛰어넘었다.

◇“지리차 닝보 공장에 주목해야”

미국 싱크탱크가 주목하는 건 저장성의 첨단 제조산업 역량이다. 지난해 AI 분야 성장률이 전년 대비 11.6%, 로봇은 93.8%에 달했다. 컴퓨터 49.5%, 전기자동차 47.8%, 스마트폰 36.9%, 집적회로 28.8% 등 정보기술(IT) 분야도 전년 대비 8.3% 성장했다. 화학섬유 64.6%, 고무·플라스틱 44.4%, 섬유40.9% 등 전통적인 제조 분야 또한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다.

미·중 무역 및 관세 전쟁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저장성의 신규 외국인투자법인은 4794개로 전년 대비 7.7% 증가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 덴마크 국적 글로벌 2위 해운기업 머스크, 독일 대표 자동차 부품사 ZF프리드리히스하펜AG 등 글로벌 기업이 항저우에 공장을 설립하고 제조 데이터를 쏟아내고 있다.

저장성 정부도 올해를 ‘글로벌 제조 데이터 허브’ 도약의 원년으로 정하고 ‘AI 발전 행동계획’(2025~2027)과 ‘415X 선진제조업 클러스터’ 등의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과학, 제조, 소비, 교통 등 전 산업의 AI 융합을 꾀하겠다는 ‘데이터 굴기’를 천명한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중국 자동차 제조사 가운데 처음으로 글로벌 자동차 판매 순위 10위에 진입한 지리자동차는 닝보 공장에서 800대의 로봇과 고해상도 카메라, 라이다, 온도·진동·모터 센서를 활용해 매일 30테라바이트 규모 제조 데이터를 생성하고 이를 AI에 학습시킨다. 제조 현장이 곧바로 AI 훈련장인 셈이다.

◇세계 최고인 韓의 제조AI 잠재력

미국은 AI산업에서 알고리즘 개발과 반도체 설계 등 소프트웨어에서 중국에 앞섰지만 생산 기반을 베트남 인도 멕시코 등 해외로 이전하면서 ‘제조 데이터’ 자산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미국 GDP에서 제조업 비중은 11%에 불과할 정도로 제조 기반이 약하다. 미국의 제조 데이터 열세는 공장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미국 사회 전반에 깔린 제조업 기피 정서가 주요 원인이다.

워싱턴DC에 있는 자유시장 연구 싱크탱크인 카토인스티튜트가 지난해 발표한 ‘2024년 무역·세계화 미국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80%는 “미국이 더 많은 제조업 일자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제조업에서 일하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22%에 불과했다. 미국이 제조업 패권을 되찾기 위해 고도의 제조 역량을 보유한 한국에 ‘AI 협력’ ‘컨설팅’이란 명목으로 접근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이 발표한 ‘2024 세계 로봇공학 보고서’에서 한국의 ‘로봇 밀도’는 직원 1만 명당 로봇 1012대로 세계 1위에 올랐다. 세계 평균의 여섯 배를 웃도는 수치다. 로봇 밀도가 1000대를 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770대로 2위에 오른 싱가포르와도 차이가 크다. 이 지수에서 한국은 2020년 이후 줄곧 3, 4위권을 오갔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인프라를 바탕으로 양질의 제조 데이터를 축적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지난 18일 발표한 ‘경제2분과 국정기획위 업무보고’ 자료에는 데이터센터 구축, ‘AI 고속도로’ 조성 등의 총론만 정리돼 있을 뿐 제조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가공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책 공백이 지속되면 국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고부가가치 창출 기회가 미국 등의 빅테크에 이전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제조 데이터를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고 무분별한 외부 이전을 방지하는 가이드라인 마련이 요구된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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