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주4일제 근무, 모두가 행복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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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은' 주4일제 근무, 모두가 행복해질까

최근 정치권에서는 조기 대선을 앞두고 주4일제가 거론되고 있다. 논의의 추이를 살펴 보면 노동계의 주장을 반영한 대세론 내지 낙관론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주로 근로시간 감소를 통해 근로자의 ‘워라밸’ 보장을 통해 육아의 어려움이나 저출산 문제 해결이 가능할 뿐 아니라 심지어 생산성 향상 및 이를 통한 국민경제적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주4일제는 정말 이처럼 만병통치약일까? 주4일제가 그리는 미래는 실제로는 ‘장밋빛’이지 않을 수 있으며, 충분한 고민 없이 시행할 경우 심지어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찬성론자들은 보통 아이슬란드 등 외국에서 실행된 주4일제 실험 결과 생산성이 더 향상되었다면서 도입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설혹 외국에서 이루어진 제한적인 ‘실험’에서 생산성 향상이 관찰되었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국가 산업 전반에도 그러한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가마다 경제상황, 산업 및 노동시장의 구조, 기업 및 직장 문화 등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제한적으로 실시된 실험을 성급하게 성공모델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특히 우리나라 산업의 대부분은 서비스업 및 제조업으로 구성되는데(2023년 기준 우리나라 산업별 GDP구성을 보면 서비스업이 64%, 제조업이 27%이고 이 비율은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소비자의 요구에 적시 대응해야 하는 서비스업이나 계속공정을 수행해야 하는 제조업에서 근로시간 감소는 생산성 감소 내지 서비스 수준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결국 기업들은 추가 채용을 해야 하는데, 이로 인한 인건비 상승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인건비 등 산업비용의 증가는 상품의 가격상승 및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요컨대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에서 단순히 근로시간을 줄여 워라밸을 확대하면서도 기업의 생산성을 유지 내지 향상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너무 부족하다.

또한 주4일제 찬성론의 다수는 ‘급여수준’은 그대로 유지하고 노동시간만 줄이는 방식으로 생산성 향상 및 국민경제적 선순환이 모두 가능하다는 논지를 편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임금체계를 유지하는 한,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 등 고정비용 증가를 고려하여 불가피하게 임금삭감을 적용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우리나라의 고용유연성이 타국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주4일제가 시행될 경우 기업들은 양질의 일자리는 줄이고 그 대신 비정규직·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주4일제 도입이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지지 않고 비정규직·시간제 일자리의 확대에만 그치게 된다면 노동시장에서 여성·청년 등 취약집단의 지위가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줄어든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여가시간’에 여러 개의 부업을 하게 되어 ‘N잡러’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주4일제는 주로 대기업 사무직이나 공공부문 종사자, IT 산업 종사자 등 유연근무가 가능한 업종에만 혜택이 집중되어 제조업 내지 교대근무 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기타 육체노동 직군이나 자영업자의 박탈감과 사회적 갈등, 나아가서는 노동시장 불평등을 더욱 심각하게 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생산성의 유지 또는 향상을 전제로 하여 주4일제를 도입할 경우, 결국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같은 업무량을 더 짧은 시간에 처리하도록 요구할 수밖에 없다. 주4일제를 시행할 경우 근무일의 생산성은 기존에 비해 평균 25% 이상 높아져야 하므로 당연히 노동강도는 증가하게 되며, 업무성과에 대한 압박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단순한 근태관리 강화의 차원을 넘어 생산성 향상을 위한 집중적 인사관리 내지 모니터링도 강화될 것이다. 여전히 ‘업무상 필요에 의한 업무지시’와 ‘괴롭힘’의 경계가 모호한 채로 적용되고 있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제도’의 혼란과 맞물리게 될 경우 전반적인 기업문화는 경색되고 기업 내 갈등은 더욱 악화될 공산이 크다. 업무시간에 개인용무를 보거나 자리에 앉아서도 사적인 용무를 보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의 직장문화를 생각해 보면 생산성 유지 및 업무효율성을 실현하는 데에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하여 AI 관련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므로 근로시간을 줄여도 기업의 생산성이나 국가경쟁력이 악화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앞서 언급된 막연한 낙관론이 가깝다. 물론 AI 관련 기술이 생산성 향상에 획기적으로 기여하는 일부 업종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렇지 않은 직종이 더 많다. 또한 무한경쟁시대에 AI 관련 기술로 기업 생산성이 늘어날 수 있다고 해서 그만큼 근로시간이 당위적으로 감소되어야 한다고 볼 근거도 없다.

또한, 주4일제 도입을 논의하기 앞서 근로시간제도의 유연화를 통해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살피는 것이 먼저다. 주4일제 도입의 논거로 거론되는 워라밸 확보나 육아·출산율 문제 해결 가능성도 사실 주4일제의 일률적인 시행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근로시간에 관한 규율이 유연화됨으로써 달성되는 측면이 더 크다. 근로시간이 지금보다 길었던 과거 44시간제 때가 지금보다 출산율이 더 높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근로시간 감축 자체가 출산율 증가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미약하다.

나아가 근로시간제도 개혁을 반드시 국가산업 전반에 전면적, 일률적으로 적용하려는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 업종 및 담당업무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성격에 따라서는 주4일제나 기타 근로시간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따라서 동일한 제도를 전면적, 일률적으로 시행하는데 집착하기 보다는 업종별, 직종별 특수성을 반영해 각 업종 및 기업의 사정에 맞는 근로시간제도를 고안해야 할 것이다.

주4일제 도입시 워라밸 강화 등 일부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지만,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의 현실 등을 고려할 때 깊은 고민 없이 이를 시행한다면 단점이 장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주4일제 도입은 구체적인 고민 없이 ‘대세론’이나 여론 등에 편승해서 도입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일률적인 근로시간 감축을 법률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근로시간을 더 유연하게 규율하고 기업이 각 사업장의 사정에 맞는 제도를 스스로 실험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구체적 타당성과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김종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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