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물됨[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51〉

4 days ago 7

나는 절반쯤은 개다. 나는 절반쯤은 풀꽃이고. 나는 절반쯤은 비 올 때 타는 택시. 나는 절반쯤은 소음을 못 막는 창문이다. 나는 절반쯤은 커튼이며. 나는 절반쯤은 아무도 불지 않은 은빛 호각. 나는 절반쯤은 벽. 나는 절반쯤은 휴지다. 절반쯤 쓴 휴지다. 네 눈물을 닦느라 절반을 써버렸다.

―차도하(1999∼2023)

젊은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자의 생몰연대를 볼 때면 막막하다. 열린 괄호와 닫힌 괄호 사이, 그 안에 갇혀버린 기분이 든다. 떠난 시인에게 세상은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문처럼 느껴졌을까. 그에게 세상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틈 같아서, 종일 까치발로 종종거리다 떠났겠구나. 유고 시집이자 첫 시집인 차도하의 ‘미래의 손’에는 힌트가 가득하다. 그가 세상이라는 괄호 안에서 안녕할 수 없었을 거라는 힌트. ‘처치 곤란한 인간’이란 시에서는 자신을 외계인이라 불러주면 세상을 떠나겠다고 고백한다. “나는 절반쯤은 개다” 이런 시작은 읽는 사람을 단박에 휩쓸리게 한다. 화자의 외로움에, 세상을 향한 사랑과 절망에, 사람에 대한 외로움에 젖게 한다. “나는 절반쯤은 아무도 불지 않은 은빛 호각”이라니, 묵음의 휘파람처럼 외롭다. 시를 읽는 동안 우리는 개가 되고 풀꽃이 되고 비 올 때 타는 택시가 된다.

세상에 잘 적응해버린 어른으로서 그에게 부끄럽고, 진심으로 미안하다. 은빛 호각을 입술에 대고 불듯이, 그를 불러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시집에 실린 시들은 천진하고 화창하고, 치장 없이 슬프다. 고작 스무 해 언저리를 살고 “네 눈물을 닦느라 절반을 써버”린 휴지의 기분을 느낀 사람. 자신을 세우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다른 이의 절망을 토닥이다 너덜너덜해지고 지쳤을까. 나는 차도하의 ‘절반됨’이 세상을 향한 다가섬이었음을, 간신히 내보인 사랑이었음을 믿는다. 미래의 손을 잡으며, 잡으려고 애쓰며 빌어본다. 그가 평안하기를.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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