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르다고? 당연한 거야”…햇살 같은 소녀의 짜릿한 모험 ‘오로르’ 시리즈[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3 days ago 8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어 말하지 못하고 태블릿에 글씨를 써서 소통하는 열한 살 소녀. 사람은 각각 다르며 자기 역시 그렇다고 여기기에 밝고 씩씩하다. 다른 사람의 눈을 보면 생각을 읽는 능력을 지녔다. 이를 활용해 사건을 짜릿하게 해결해 나간다.

‘빅 픽처’, ‘원더풀 랜드’ 등으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더글라스 케네디가 쓴 동화 ‘오로르’ 시리즈의 주인공 오로르다.

더글라스 케네디에겐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은 아들이 있다. 전문가들은 아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했지만 아들은 런던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산다고 한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자폐증을 멋지게 활용할 줄 아는 인물, 일상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오로르. 오로르는 사람들의 눈을 보면 생각을 아는 능력을 지녔다.  ⒸJoann Sfar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오로르. 오로르는 사람들의 눈을 보면 생각을 아는 능력을 지녔다. ⒸJoann Sfar

‘오로르’ 시리즈를 쓴 소설가 더글라스 케네디. 사진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런던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사진가로 활동하는 아들 맥스 케네디가 찍었다.  ⒸMax Kennedy

‘오로르’ 시리즈를 쓴 소설가 더글라스 케네디. 사진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런던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사진가로 활동하는 아들 맥스 케네디가 찍었다. ⒸMax Kennedy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밝은세상)가 2020년 국내 출간된 후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은 오로르’(2021년), ‘뉴욕의 영웅이 된 오로르’(2023년)가 나왔다.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시리즈 3권의 누적 판매량은 5만 권이 넘는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독자들은 “사랑스럽다”, “스릴이 넘친다”, “아이가 다음 책도 궁금해 한다”, “마음이 맑아진다”고 말한다.

오로르 시리즈를 출간한 밝은세상의 김민희 과장(35)을 경기 파주시의 한 카페에서 지난달 30일 만났다. 국내에 나온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은 모두 밝은세상에서 출간됐다. 김 과장은 “더글라스 케네디를 비롯해 기욤 뮈소, 샤를로테 링크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은 쭉 이어 내고 있다. 작품 몇 개가 아니라 ‘작가를 데려와야 한다’는 게 출판사의 철학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과장은 오로르 시리즈의 첫 책을 보고 두 번 놀랐다고 한다. “더글라스 케네디 같은 시니컬한 작가가 동화를 썼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어요. 회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색채가 짙은 글을 쓰니까요. 글을 보고선 더 놀랐어요. 너무나 사랑스럽고 반짝이는 아이가 나오는 거예요! 작가가 자폐 스텍트럼 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웠고, 이혼한 경험도 있기에 이에 대한 깊은 고민도 녹아 있었어요. 장애가 있든 없든 사람은 누구나 다른 게 당연하다는 메시지도 와 닿았고요.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을 꾸준히 번역해 온 조동섭 번역가의 매끄러운 번역도 책의 완성도를 높였죠.” 한데 아동서는 처음이었다. 그는 “아동서는 독자층, 마케팅 방식 등이 완전히 달라 모든 걸 맨땅에서 시작했다”며 웃었다.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에서 오로르가 가정교사인 조지안느 선생님에게 태블릿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Joann Sfar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에서 오로르가 가정교사인 조지안느 선생님에게 태블릿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Joann Sfar

오로르 시리즈의 그림은 프랑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조안 스파르가 그렸다. “그림이 너무 프랑스적이어서 한국 독자들이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한국 작가에게 다시 그림을 의뢰할까 생각했지만 단순히 장면을 묘사하기보다는 조안 스파르의 상상력과 해석이 들어 있어 글과 절묘하게 어우러졌어요.” 독자들이 오로르를 선입견 없이 만날 수 있게 우리말 제목을 지을 때는 물론이고 책을 알릴 때도 장애는 최대한 드러내지 않게 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이나 가족이 혹여 상처받지 않을까 모든 과정이 조심스러웠어요. 판타지 요소가 있기에 너무 꿈같은 얘기로 여겨질 수 있고요. 출간 후 국립장애인도서관 관계자와 통화했는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아주 좋은 책’이라고 하셔서 비로소 안심했습니다. 자신감도 생겼고요.”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에서 형사들은 태블릿에 빠르게 글씨를 쓰는 오로르를 보며 감탄한다.  ⒸJoann Sfar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에서 형사들은 태블릿에 빠르게 글씨를 쓰는 오로르를 보며 감탄한다. ⒸJoann Sfar
책은 성인이 읽어도 재미있기에 독자층은 아이와 성인으로 함께 정했다. 공격적으로 마케팅하는 대신 국공립 도서관 사서를 비롯해 교사, 장애 관련 사회활동가 등에게 책을 보냈다. “책을 보낼 분들은 한 분 한 분 찾았어요. 도서관별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조직도를 보고 어느 분이 적합할지 가늠했죠. 선생님은 독서법에 대한 책을 쓴 분을 비롯해 소셜미디어 활동을 많이 하는 분들을 검색한 다음 의견을 여쭤보고 책을 보냈고요.”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지만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꾸준히 독자가 늘었다. “당시 서점을 운영하던 배우 박정민 씨에게도 책을 보냈는데요, 1년 뒤 서점에서 블라인드 북으로 선정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시리즈지만 순서에 관계없이 볼 수 있기에 책에 번호를 붙이지 않고 제목만 표기했다. 오로르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능력을 지녔고 각종 사건을 해결하는 건 판타지지만 오로르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묘사는현실을 반영했다. 부모가 이혼해 오로르와 언니 에밀리는 엄마랑 살며 아빠는 주말에 만난다. 에밀리는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한다. 오로르는 수업 시간에 별, 동화에 대해 말해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자 아이들에게서 “잘난 척 한다”며 공격받기도 한다. 장애가 있는 형제나 자매를 둔 아이가 느끼는 소외감도 다룬다. 에밀리는 부모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오로르에게 더 많이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 자주 서운함을 느낀다.

“다른 책에 비해 독자들의 피드백을 3~4배 이상 받았어요. 성인 독자도 많습니다. ‘언젠가 아이가 태어나면 읽게 해주고 싶다’, ‘어린 시절 이불을 끌어안고 울었던 나 자신이 생각났다’는 리뷰가 기억에 남습니다.”

‘오로르’ 시리즈 첫 책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양장본 표지.            밝은세상 제공

‘오로르’ 시리즈 첫 책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양장본 표지. 밝은세상 제공

‘오로르’ 시리즈 두번 째 책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은 오로르’ 표지.           밝은세상 제공

‘오로르’ 시리즈 두번 째 책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은 오로르’ 표지. 밝은세상 제공

‘오로르’ 시리즈 세 번째 책 ‘뉴욕의 영웅이 된 오로르’ 표지.             밝은세상 제공

‘오로르’ 시리즈 세 번째 책 ‘뉴욕의 영웅이 된 오로르’ 표지. 밝은세상 제공

표지는 원서 표지에 책 순서대로 각각 쨍한 보라색, 초록색, 꽃분홍색 커버를 씌우고 오로르가 돋보이게 달 모양, 원 모양으로 구멍을 냈다.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는 올해 양장본으로 바꾸고 갖고 다니기 수월하게 판형을 줄였다.

“오로르 시리즈가 누구에게나 망설임 없이 건넬 수 있고 위로를 주는 책이면 좋겠어요. 책을 만드는 동안 저 역시 위로받았어요. 살다보면 차별, 외로움은 어떤 형태로든 겪게 되잖아요. 많은 분들이 읽게 만들고 싶어요. 이처럼 강한 확신이 드는 책을 만나긴 쉽지 않거든요. 장르물 작가로 유명한 더글라스 케네디의 새로운 면도 보여줄 수 있고요.”

그는 독자에게 뿌듯함을 선사하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책을 잘 보지 않던 분이 손에 쥐었다가 너무 재미있고 완독했다는 성취감을 느껴 다른 책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잖아요. 그 시작점이 되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오로르’ 시리즈(밝은세상·2020년부터)는….

프랑스에 사는 열한 살 소녀 오로르는 말을 못 한다. 사람들은 ‘자폐’라고 하지만 오로르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거라고 여긴다. 가정 교사인 조지안느 선생님으로부터 태블릿에 글씨를 써서 소통하는 법을 배웠기에 대화하는 데도 문제없다. 오로르에겐 사람의 눈을 보면 생각을 읽는 능력이 있다. 오로르는 이 능력을 이용해 각종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에선 놀이동산에서 사라진 언니 친구 루시를 찾아 나선다. 평소 루시가 뚱뚱하다며 괴롭히던 아이들이 놀이동산에서 마주친 루시를 ‘코끼리’라고 놀리고, 이에 루시가 울면서 뛰어간 후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은 오로르’에선 사건의 강도가 세진다. 오로르의 특별한 능력을 알게 된 주베 형사가 오로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절도, 살인 혐의를 받는 여성에 대해 수사를 하게 된 것. 학교에서 오로르를 괴롭히던 아이도 사건 관계자들과 얽혀 있었다. 알고 보니 말 못할 어려움도 겪고 있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도 오로르가 기지를 발휘해 난관을 헤쳐 나가는 과정이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뉴욕의 영웅이 된 오로르’에선 뉴욕에서 펼쳐지는 모험을 그렸다. 유명 사업가의 아들이 새어머니로 인해 큰 위험에 처한다. 낯선데다 언어조차 다른 뉴욕에서 오로르가 위기를 돌파해 내는 과정이 숨 가쁘게 이어진다. 사건 규모는 더 커지고 강도 역시 한층 높아진다.

외모 혹은 행동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이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아이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겪는 복잡한 상황 등 현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도 사실적으로 녹였다. 돈에 대한 인간의 탐욕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그럼에도 늘 당차고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오로르는 맑고 따뜻하다. 모르는 단어를 접할 때면 물어보거나 사전을 찾아보며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하는 모습도 귀엽다. “내 아이도 이렇게 단단하고 밝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독자의 리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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