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육아휴직 늘리자더니…'대기업 공시제' 내팽겨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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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9.21 15:45 수정2025.09.21 15:45

남성 육아휴직 늘리자더니...'대기업 공시제' 내팽겨친 정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출산율 반전을 위해 도입한 ‘육아휴직 공시제’가 시행 첫해부터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법이 아닌 ‘지침’ 차원에서 설계되면서 강행력이 없고, 공시를 하지 않아도 기업에 어떠한 제재도 가해지지 않으면서다. 특히 관계 부처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제도의 실효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국회예산정책처가 코스피 상장사 848곳을 전수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사업보고서상 육아휴직 사용률을 아예 공시하지 않은 기업이 35.1%(298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육아휴직을 단 한 건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기재한 기업(509곳·60.0%)까지 합치면 사실상 공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육아휴직 공시제는 지난해 금융감독원 공시를 통해 도입한 제도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저출생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의 경우는 2023년부터 근로자 1000명 이상 기업은 육아휴직 사용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제도 시행 이후 남성 근로자들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30.1%로 2년 전(2021년: 14%)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25년 4월부터는 공시 대상을 근로자 300명 이상 기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제대로 시행 전에도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금감원 지침으로 도입돼 공시를 하지 않아도 별다른 법적 제재가 가해지지 않기때문이다. 특히 일·가정양립 정책의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아니라 금융감독원이 공시 업무를 맡으면서 관리 사각지대가 발생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관계 부처들도 '나몰라라'하는 것도 문제다. 김위상 의원실이 관련 통계를 요구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소관 사항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금감원 역시 “각 기업이 알아서 기재하는 사항일 뿐, 실제 육아휴직 활성화 여부는 관리하지 않는다”며 손을 놓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국회 예정처가 코스피 기업만 전수조사했을 뿐, 코스닥은 실태 조차 파악되지 못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부처 간 칸막이와 책임 떠넘기기가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국회 관계자는 “육아휴직 공시제가 저출산 해소라는 국가적 과제를 위해 도입됐지만, 관리·감독이 전무해 기업 자율에 맡겨진 상태”라며 “결국 보여주기식 제도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공시 의무를 법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위상 의원은 최근 “상장사뿐만 아니라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는 육아휴직 사용 현황 공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며 “법적 근거와 부처 간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야 제도가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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