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사회에 주고 싶다”… 유산 기부, 상속 넘어 나눔 문화로

4 weeks ago 18

[나눔, 다시 희망으로] 밀알복지재단
아파트-토지 등 부동산 유산 환원 관심
기부 받은 주택, 장애인 거주 시설 활용
매각 대금-임대 수익 등 다양한 선택지

밀알복지재단은 기부받은 서울 동작구 아파트를 매각해 마련한 ‘장애인 권익 기금’으로 말라위에 장애 통합 허브를 구축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밀알복지재단은 기부받은 서울 동작구 아파트를 매각해 마련한 ‘장애인 권익 기금’으로 말라위에 장애 통합 허브를 구축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유산 전부를 자녀에게만 남기기엔 아쉽고 그렇다고 알아보자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상속과 증여를 둘러싼 고민도 달라지고 있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데서 나아가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려는 이들이 늘면서 ‘유산 기부’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는 분위기다. 특히 개인 자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집중된 우리나라 특성을 고려할 때 아파트나 주택, 토지 등을 활용한 부동산 유산 기부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최근 비영리단체와 공익법인 등을 중심으로 유산 기부 상담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유산 기부는 자신의 재산 전부 혹은 일부를 생전 또는 사후에 공익적 목적으로 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개인의 자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상속’이라고도 불린다. 유산 기부는 기부 시점에 따라 생전에 재산을 증여하는 방식과 사후에 상속 형태로 기부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기부 대상 역시 현금뿐 아니라 부동산, 주식 등 다양한 비현금성 자산이 포함된다.

유산 기부 상담을 진행하는 밀알복지재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의 고민도 다양하다. “물려주고 싶은 가족이 없다” “자녀 몫은 이미 충분히 마련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산을 의미 있게 사용하고 싶다”는 이유가 대표적이다. 세금 부담을 고려해 기부를 선택하거나 해외에 거주하면서 국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문의도 적지 않다.

기부받은 경기도 광주 주택으로 설립된 밀알복지재단의 ‘베다니동산’.

기부받은 경기도 광주 주택으로 설립된 밀알복지재단의 ‘베다니동산’.

실제 부동산을 활용한 유산 기부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밀알복지재단은 2021년 약 3억5000만 원 상당의 경기도 광주 주택을 기부받았다. 장애인 거주 시설로 활용해 달라는 기부자의 뜻에 따라 해당 주택은 현재 22명의 중증 발달장애인이 생활하는 ‘베다니동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부동산을 매각해 기금을 조성하는 방식도 있다. 2022년 아프리카 장애인을 위한 사업에 사용해 달라는 뜻과 함께 약 13억 원 상당의 서울 동작구 아파트가 기부됐다. 재단은 이 아파트를 매각해 ‘장애인 권익 기금’을 조성해 원금을 보존한 채 운용 수익으로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이 기금은 아프리카 최빈국 말라위에서 장애 통합 허브 구축과 장애인 일자리 창출 사업에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부동산 보유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택을 명의 이전 방식으로 기부하거나 유류분 지분을 부동산 처분 신탁으로 기부하는 사례, 사후에 부동산을 기부하기로 유언 공증을 통해 약정하는 사례 등 다양한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다만 부동산을 활용한 유산 기부는 일반적인 유산 기부보다 절차가 복잡한 편이다. 자산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명의 이전이나 유언장 작성, 신탁 계약, 수익자 지정 등 법적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속 구조나 세무 문제, 가족과의 협의, 사후 집행 방식 등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유산 기부를 ‘설계’한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밀알복지재단은 유산 기부 상담 과정에서 기부자의 자산 상황과 생애 계획을 함께 고려한 설계를 권장한다. 부동산 자체를 이전하는 방식 외에도 매각 대금을 기부하거나 임대 수익을 기부하는 방식, 일정 기간 거주한 뒤 사후에 기부하는 방식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변호사, 세무사, 신탁 전문가 등과 연계해 구체적 절차를 검토하는 방식을 권하기도 한다.

부동산 기부를 고려하는 이들이 하는 질문도 비슷하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 계속 거주하면서 기부할 수 있는지” “자녀와의 협의는 어느 정도 필요한지” “사후에 자신의 뜻대로 사용되는지” 등이다. 김호경 밀알복지재단 특별후원팀장은 “유산 기부는 개인의 가치와 상황에 따라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며 “충분한 상담을 통해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유산 기부가 보편적인 나눔 문화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평균수명 증가와 가족 구조 변화, 부동산 중심의 자산 구조 등이 맞물리면서 상속이나 증여를 넘어 자산의 공익적 활용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을 얼마나 남길 것인가’를 넘어 ‘어떤 의미를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유산 기부는 개인의 삶을 정리하는 방식이자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이어가는 또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다.

부동산은 누구에게는 평생의 성취이자 삶의 터전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통해 일군 자산이 사후에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동산 유산 기부는 상속을 넘어선 또 하나의 사회적 유산이다.

최지수 기자 ji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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